당신이 가진 삶의 자세에 후회는 없는가
누구에게 어떤 과업을 맡기고, 목표로 한 것을 이루고자 할 때, 대행자를 선택하는 기준 중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세'다. 자세(姿勢)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할 때 몸의 모양'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조금 아래 이 단어의 뜻이 하나 더 있다. 본래 가진 의미였을 테지만 두 번째 뜻을 발견하고, 난 저절로 고개 끄덕여진다. '사물을 대할 때 가지는 마음가짐'이라, 맞다. 내가 어리석게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자세'란 내가 갖춰야 할 '몸의 모양' 뿐이 아닌 '사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던 것이다.
내가 혹시 끔찍하게도 아낀다는 내 것이란 삶을 살면서 몸과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그저 몸의 모양이나 흉내 내고 바른 자세로 진지하게 살고 있다 거짓부렁을 하진 않았는지 반성한다. 모름지기 '자세(姿勢)'란 말 안에는 몸이 향하는 곳으로 돌려세워줘야 할 '마음가짐'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스스로 부인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도끼다'와 '여덟 단어'를 쓴 박웅현 작가는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20대는 무엇을 보여주는 시기가 아니라 입력해야 할 시기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입력해야 한다. 30대는 입력된 자료를 기초로 실행해야 하고, 비로소 40대가 되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모름지기 20대라면 다채로운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맞다."
작가의 강연 내용에 '자세'란 단어는 없다. 하지만 각 세대별로 어떤 자세를 갖춰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20대엔 가만히 있지 말고, 다채로운 경험을 해라! 30대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얻게 된 깨달음으로 실행해라! 그럼 40대 때가 되어 뭔가 거시적으로 보여줄 것이 생길 것이다. 중용 23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작은 일에도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겉으로 배어 나오는 법이다.
유명한 호라티우스의 라틴어로 된 시 한 구절이 있다. Carpe diem, quam minumum credula postero.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명언으로 알려진 바로 그 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사랑하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명작 '죽은 시인의 사회'에 출연해 남겨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 대사다.
나는 이 어마 무시하게 소중한 말의 가치를 최근에야 알았다. 50대 초반이 되어 깨닫게 된 것도 그나마 천만다행이라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만 상기할 때마다 매번 먼저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제 저 길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예기치 않은 나의 마지막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이 당연한 만큼, 불현듯 찾아오는 예기치 않은 죽음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치 무슨 죽음의 방탄 옷이라도 입은 양 하루를 헛되이 살지 마라. 오늘 같은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그리고, 지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살아라. 사랑해야 할 것들을 사랑하고,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라.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매일을 곱씹듯 반드시 지금을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
자기계발 강의를 듣다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게 바로 집중과 다중 업무처리 능력(multi-tasking)에 관한 이야기다. 성공하기 위해 누군 하나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 보다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멀티태스킹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뭐가 맞는 것일까?
내 경험상으로는 둘 다 맞다. 작금의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변화된 사실들이 빠르게 알려지는 시대다. 일반인은 그 빠른 변화에 보조를 맞추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그래서 한때 그 빠름에서 떨어져 나와 정신없이 살아온 자신을 좀 돌아보자는 힐링 트렌드가 유행하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앞뒤 재보지도 않고 혹사하면, 과부하가 걸릴 확률은 분명히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힐링을 할 만큼 시간적으로 남은 삶의 여유가 있느냔 거다. 나는 이쯤에서 또 한 번 마른 입에 고구마 먹은 듯 콱 막힌 답답함을 느낀다. 애석하게도 사실은 없다. 저 길모퉁이를 돌면 서 있을지 모를 죽음이란 존재 앞에 남은 시간이란 곧 금이고 다이아몬드이며, 무엇과 바꿔선 안되는 진짜 삶의 보석이다. 그런 처지의 사람에게 힐링이란 그저 사치가 아닐까.
태생적으로 보폭이 작은 나 같은 일반인은 괜히 보폭 욕심내다가 가랑이 찢지 말고, 좀 더 부지런히 그가 한 걸음 갈 때 난 두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실현 가능성은 그게 훨씬 높다. 이때 멀티태스킹 능력은 삶의 무기가 된다. 멀티태스킹을 하면 집중이 안 된다? 글쎄 내 경험으론 의구심이 든다. 과연 그럴까? 경험해 본 바, 내가 전할 수 있는 해답은 다음과 같다.
"신이 사람에게 준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경이롭고 위대하다."
우리 사는 인생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 없다. 해답은 있을지 모른다. 정답이란 정해진 답이니 이렇게 살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살아본 바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 인생이란 문제를 푼 답은 오히려 해답에 가까웠다.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풀어 답을 만들어간다.
정답(正答)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 만고 진리의 옳은 답'이라 쓰였다. 그래서 난 인생의 문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결론'을 뜻하는 '해답(解答)'으로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 인생에 정해진 부자, 정해진 가난뱅이, 정해진 중산층이란 없다. 앞으로 내 인생의 문제는 내가 풀어가면서 해결을 하고, 결론을 내려 정할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난 후 나는 책에서 인생의 답을 찾지 않는다. 책에 나온 답을 토대로 참고해서 나만의 해답을 만들어간다. 끌려가지 말지어다. 갇혀 있지 말지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니 당신이 만들고, 당신이 해결하면서 당신이 결론내라. 사랑해 마지않는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다.
네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를 존중하라. 세상에 영원한 '갑', 영원한 '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은 지금까지도 조금만 방심하면 그대로 흐트러지는 안타까운 삶의 자세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하고, 매일 틈만 나면 읽는다.
"'갑'을 대할 때는 '을'에게 하듯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을'을 대할 때는 '갑'에게 하듯 겸손해져야 한다. 너도 언제든지 '갑'이었다가 '을'이 될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해라."
내가 아는 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인생 크게 바꿨을 '처세술' 중 단연 으뜸이 이거다. 어떤 일을 하면서 행하는 족족 적을 만드는 사람은 하수고,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은 중수다. 모름지기 고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적이었던 사람조차 자신을 맹신하게 하고 때가 되어 편까지 들게 만든다. 기억하라. 갑은 을처럼, 을은 갑처럼!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