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삼 남매의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어떤 상황이든지 자꾸 개그를 치고 웃는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게 어떤 상황이든지.
아무래도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무섭거나 혹은 무거워지는 상황이 생기면 빠르게 웃음으로 무마시켜 버리던 반사적 행동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엄마는 2018년에 다발골수종을 진단받고 항암을 시작해 2019년 초에 항암을 마치고 자가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했다.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이란 조혈기관 · 림프조직 종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채취하여 종양세포를 제거하고 선택적으로 보관해 두었다가 그것을 환자 자신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본인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다 보니 크게 위험한 수술은 아닌데 수술을 마치고 무균실에서 회복하는 과정이 상당히 힘들다. 구토와 설사, 고열을 동반하고 입과 목이 다 헐어버려 물도 잘 마시지 못하며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손발이 저리기도 하다. 엄마는 항암 때도 많이 빠지지 않았던 머리가 이때 한 움큼씩 빠졌다.
당시는 코로나 상황이 아니라 무균실에 보호자 한 명이 있을 수 있었고 보호자 이외의 가족들은 창문 밖에서얼굴을 보며 인터폰으로 면회를 했다.
대체로 내가 엄마 옆을 지켰는데 엄마의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참혹했다. 기력이 없어 옆으로 누워 쓰레기통을 받치고 눈을 감은 채로 토하고 밤새 설사를 하는데 바로 옆 변기에 걸어갈 힘이 없어 부축을 받으며 기어서 갔다. 구토를 하면서 온몸에 강하게 힘이 들어가 허벅지 정맥이 터져간호사들이 밤새 돌아가며 짓눌러 지혈을 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물에 빨대를 꽂아 먹여주는 것뿐이었다.
엄마와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매번 뜨거운 눈물 한가득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그런 날에도 우리 삼 남매는 엄마한테 장난을 치고 웃었다. 엄마를 한 번 웃게 해 주려고. 엄마의 웃는 모습을 봐야만 안심이 되어서.
불행이, 죽음이 엄마 가까이에 왔다가도 우리가 이렇게 웃고 있으면 번지수 잘못 찾은 우체부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설 것 같아서.
하루는 면회를 갔더니 전날에 비해 엄마 머리카락이 잔뜩 빠져있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누가 쥐어뜯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엄마 골룸 아냐? 미용실에서 골룸 스타일로 해달라고 했어?"
엄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몇 없는 엄마 머리를 빗어주며 말했다.
"퇴원하면 머리 빡빡 밀자. 그럼 새머리가 예쁘게 날 거야."
그때 마침 면회 온 동생이 창문 밖에 서서 인터폰을 들고 받아보라고 가리켰다. 급히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엄마가 힘없이 인터폰을 받아 들자 동생이 말했다.
"엄마 골룸 아냐??"
엄마가 머리를 빡빡 밀던 날도, 가발을 맞추던 날도, 췌장염 수술을 하러 들어가던 날도, 망가진 무릎 관절을 줄기세포 치료하고 그게 또 괴사가 오고 그래서 한동안 걷지 못하고 그리하여 다시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고, 그러다 혈액암이 재발하고, 항암에 수차례 실패하고, 엄마가 점점 죽어가던 그런 날들에도 우리는 농담을 하며 웃어댔고 엄마도 그런 우리가 귀엽다는 듯 따라 웃어줬다.
그게 우리가 이 믿기 힘든 현실을 견뎌내는 방법이었다.
그런 우리였으니 엄마 장례식에서 웃음 참으려 서로의 눈을 피하고 코를 막는 일이 얼마나 많았든가.
시작은 언니네 회사 동료 한 분이 절을 하시다가 보인 빨간 팬티 때문이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참아보려 했지만 입이 근질거려 결국 언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말았다.
"와우~ 쫌 열정 있으시다. 역시 저 정도 열정은 있어야 대기업 다니는군."
언니는 웃음을 참으려 괜히 두리번거리면서 갑자기 뭘 찾는 척했다.
장례식장에서는 향을 피우거나 도자기에 있는 국화꽃을 제단에 올려야 하는데 엄마 친구 한 분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천천히 엄마 사진 옆에 놓여있는 꽃을 가져다 도자기에 꽂으셨다. 언니가 나에게 귓속말했다.
"야 엄마 이럴 것 같지 않냐? '내 꽃 내놔. 이년아.'"
나는 뒤돌아서서 가만히 코를 막고 웃음을 참았다.
그런가 하면 남편 친구 한 명은 급하게 들어와서 절을 하다가 향을 피우지 않은 것이 불현듯 생각났는지 그대로 한 다리로만 무릎을 꿇은 채 멈춰서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아! 향을 피워야 하나?"
내가 동생에게 귓속말을 했다.
"다짜고짜 우리 엄마한테 프러포즈 자세?"
동생은 이를 꽉 깨물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 친구가 프러포즈 자세를 멈추고 일어나 향을 피우다가 손을 데어 "아 뜨거 따쉬!!"하고 제단에다 향을 냅다 던졌을 때 우린 그냥 웃음 참기를 포기하고 큰소리로 웃어버렸다.
그 뒤로도 줄지어 이어진 열정의 빨간 팬티와 구멍 난 양말과 조문객들이 절할 때 관절에서 나는 우두둑 소리들이 우리를 슬픔에 잠기지 못하게 했다.
한동안 웃을만한 일이 없으면 괜히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그러다 영정사진 속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더 웃겨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미안해 엄마. 근데 웃기긴 하잖아. 그치?'
사진 속 엄마는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얼굴이다. 생전에 영정사진 하나 준비해 두지 못 한 나는 내 첫아이의 돌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 중 하나를 확대해서 영정사진으로 썼다.
엄마가 온 맘 다해 사랑한 첫 손녀의 돌잔치 날.
손녀가 판사봉을 잡아서 엄마가 기대에 부풀었던 그날.
엄마는 꽤나 행복해 보인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의 장례식을 상상하면 땅을 치고 통곡하거나 눈물을 흘리다 지쳐서 쓰러지는 모습 같은 게 그려졌다. 그간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장례를 치러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봤을 때는 반갑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눈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도 했지만.
좋은 상주와 상제의 자세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술에 취하든 갑자기 오열을 하든 뜬금없이 웃음을 짓든 사람들은 이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 같다.
'그래. 니 속이 속이겠냐. 네가 제정신이겠냐.'
얼마 전에 SNS에서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손녀들이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신나는 노래에 춤을 추는 영상을 봤다.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손녀딸들이 그 춤을 추면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의 댓글은 ‘괜찮다’와 ‘관종이다’로 반반 나뉘었다.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이 슬프고 괴로워해야만 한다는 법이 어디 있을까? 물론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도 많이 와 있고 옆에 다른 빈소도 있으니 조심스럽긴 하다. 앞 뒤 상황을 모르는 조문객들은 유족들의 진정성을 폄하하게 될 수도 있고 옆 빈소가 있다면 소음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의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손녀들의 재롱을 마지막으로 한 번 부려드리고 싶은 마음.
긴 시간 행복하게 살다 떠나신 분을 보내는 우리 가족들만의 작별인사.
지나치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우리답게, 최대한 덜 아프게 그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을까.
엄마라면 우리가 엄마 장례식에서 낄낄대고 웃어도 좋아할 거다. 엄마가 낳아준 이후로 우리는 늘 이래왔으니까.
나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꼭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웃음을 참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