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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의 어린 시절, 그 아픔의 결과

<채식주의자>를 읽고서

by newhoneymind




몇 주 전 주말 책을 좋아하시는 남편 어머님께로부터 노벨상으로 화제가 된 한강 소설책들을 건네받았다. 바로 다음날 <채식주의자>를 집어 들었고,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일요일 오후 나는 그녀의 필체에 몸을 맡긴 채 하루 만에 이 책을 완독해버렸다.


나는 많은 이들이 <채식주의자>를 읽고서 '도통 전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무 억지스럽고 기괴하다'라며 표현하는 글과 리뷰들을 종종 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가 결코 그리 억지스럽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직업상 힘겹고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 슬프게도 회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새로운 가정을 꾸려도 그대로 반복하고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아서였을까. '저런 부모 아래 사랑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당연히 아플 수 도 있지. 아니, 안 아플 수 없지'라는 생각만 들뿐.


채식을 한다는 딸에게 강제로 고기를 입에 넣는 것도 모자라 가족 모두가 보는 앞 뺨을 때린 영혜의 아빠. 자신의 불편한 느낌을 정당화하려, 자신의 지위를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메시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가스라이팅 속 그가 주는 정서적 폭력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정신이 아픈 이유를 알 수 있다. 딸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찾아오지 않은 그녀의 부모를 보니 적절한 조율이 담긴 보살핌이 없던 그녀의 유년시절이 눈에 그려진다. 책에 마지막 쪽 알려주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받은 신체학대까지 보아하면, 이런 경험 속 자라난 영혜의 정신은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책 초반 그녀는 별반 특색 없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말이 없고 전체적으로 에너지 레벨이 다운되어 있는 그녀, 표현과 표정 모두 많지 않은 듯 묘사되는 그녀에게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빠 밑 자라나며 버릇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억누르며 살아온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의 도구처럼 대하며 식모 부리듯 대하는 남편, 그녀가 꾼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 남편을 통해 그녀의 결혼 생활 또한 원가정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채식주의자라는 단어로 그녀의 진짜 진단명이 덮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중에 병원에 들어가 거의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그녀는 사실 '거식증'을 겪고 있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거나, 온전한 사랑을 받은 지 못한 채 자라난 사람들이 후에 섭식장애(거식증/폭식증 등)를 겪는 것을 보는 것 또한 꽤나 흔한 일이다. 부모가 자신을 학대했듯 자신의 몸을 학대한다. 부모가 사랑을 제대로 주지 않았기에, 영혜는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돌보는지 알 수 없다.


영혜의 조현병 증상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해지는 것도 볼 수 있다. 조현병의 증상은 환각과 망상, 잘못된 믿음, 와해된 행동과 언어, 비정상적인 사고 등을 포함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환청과 망상 등이 주요한 증상이다. 그녀는 단순히 채식을 지향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자신이 꾸었던 '꿈'에 꽂혀, 여러 상황에서 기괴한 반응과 행동을 보인다. 결정적으로 갑자기 병원 밖으로 나와 공원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우두커니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정상적인 판단 능력, 현실검증력 모두 매우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뜻한 어린 시절을 겪은 영혜, 정상적인 사고처리가 됐던 영혜라면 과연 자신의 친언니 남편의 작품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와 상식밖의 관계를 가졌을까? 조현병도 조현병이지만, 어쩌면 존재감 없이 미미한 인생을 살던 그녀가 처음으로 받는 카메라 앞 주목과 찬사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홀로 주인공이 돼 예술로 자신이 표현되는 순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처음으로 의미있게 느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그와의 에피소드는, 자신보다 예쁘고 사회성도 좋았던, 부모님에게 덜 무시당했던 언니라는 대상에 대한 잠재적인 감정, 질투 또한 담겨있는게 아닐까?' 나는 과감히 생각해 본다.


조현병의 원인은 뇌 손상, 유전적 요소, 어린 시절 심각했던 트라우마, 혹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 등이 있다. 특히 트라우마적인 상황 속 그것을 쉬쉬하고 무시했던 어른들 손아래 자라나며 계속되는 억압을 경험한 사례에서 많이 발견됨을 본다. 나는 용감하게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 가며 회복의 여정에 계신 분들도 많이 마주하는데, 그들에게는 전자와는 다르게 어린 시절 속 끊임없이 사랑과 보살핌으로 주는,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단 한 명 정도는 존재했다. 혹은 자신의 아픔이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안전한 돌팔구를 잘 찾아, 그것을 통해 적절히 분출할 수 있는 곳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렇지 못했던 영혜의 삶.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자신의 자아를 억압하며 살아갔던 그녀의 삶 속 누군가 나타나 힘이 돼주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그때 너 정말 힘들었겠다" 라며 다독여주는 한마디를 건내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녀를 공감해 주고 지지해주는 그 한명이 존재했다면, 과연 <채식자주의자>의 엔딩은, 그리고 영혜의 삶은 달라져 있을까.



점으로부터, 이우환.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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