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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 할아버지

by newhoneymind




콜로라도에서 여행을 하는 며칠 동안 새롭게 발견한 점은, 이곳의 우버 드라이버 분들 대부분이 은퇴하신 70대 할아버지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 중 많은 분들이 군 출신이셨는데,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미국 공군학교(Unites Staes Air Force Academy), 노라드(NORAD), 포트 카슨(Fort Carson) 등 미국 최고의 군 관련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심심할 법한 노후를 좀 더 알차게 보내시기 위해, 혹은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버 드라이버가 되셨다고 했다. 그들의 차량은 젊은 시절 얼마나 성실하게, 규칙적인 삶을 살아오셨는지를 보여주듯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40살까지 스키를 타본 적이 없다가 세 번째 아내를 만나 러시아로 여행을 가게 되어 처음 스키를 배우셨다는 할아버지, 또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을 활용해 미시간까지 25시간을 거의 핸들에 손도 안 대고 다녀오셨다는 기술에 능한 할아버지도 계셨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새벽,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호출한 우버에서도 나를 반겨준 분은 역시나 할아버지셨다. 프랭키라는 이름의 그분은, 앞서 만난 할아버지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셨다. 오버사이즈 회색 후디에 야구 모자, 그리고 에메랄드색 뿔테 안경을 쓰신 그분은, 젊은 시절 햇빛을 많이 받으셨을 것처럼 피부가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그의 차 안에는 진한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불쾌하지는 않았다.


프랭키 할아버지께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셨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35년 전, 뉴멕시코를 떠나 콜로라도로 오셨다고 했다. 손에 단 300달러를 쥔 채,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아내와 함께 이곳으로 무작정 이주해 왔단다. 본인이 자라난 동네도 좋았지만, 그곳에서는 가장으로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반면 콜로라도 스프링스에는 군 관련 기관이 많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고, 더 다양한 기회와 일거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도착한 후, 한 가지 직업을 계속 이어오시다가 몇 년 전 은퇴하셨는데, 무려 33년간 고등학교 야구팀의 코치로 일하셨다고 했다. 자신은 코치로서의 삶을 정말 즐겁게 살았고, 학생들이 여러 방면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기뻤다고 하셨다. 특히, 대학 졸업식에 초대장을 보내오거나, 결혼한 후에도 안부를 묻는 학생들의 전화를 받을 때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하셨다. 신난 듯 한 톤으로 말씀하시는 목소리에서 그의 진심을 느껴졌다.


또 3년 전 간암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이야기도 해주셨다. 수술 비용이 너무 비싸 막막해하던 중, 한 제자가 미국의 펀드레이징 웹사이트인 *GoFundMe*에 ‘코치 프랭키의 암치료를 위한 모금’ 링크를 만들어 올렸다고 했다. 그 링크는 바로 수많은 제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약 40명 정도의 제자들이 힘을 모아 2천만 원가량의 수술비를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수술은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으셨다.


프랭키 할아버지께서는 당당하고도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내 삶에는 분명한 Purpose가 있다고 믿어요. 콜로라도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고등학교 야구팀 코치를 할 수 있었을까요? 나의 생명을 구해준 그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아내와 함께 많은 자녀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하나님은 딱 하나의 아들만 허락하셨다고 했다. 당시엔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명의 자녀 덕분에 더 많은 학생제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다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제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살려주었으니, ‘콜로라도’ 땅에 온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 믿는다 말씀하셨다.


신나는 목소리로 올해는 30년짜리 주택 담보 대출도 모두 갚았다고 하셨다. 당시 그에게 큰 마음을 먹고 샀던 1. 7억 짜리 하우스는 지금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고 말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보이셨다. 기회가 된다면 이 집을 팔고 새로운 도시로 떠나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미래에 대한 꿈을 말씀하셨다.


나는 프랭키 할아버지께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학생들의 삶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셨기에, 이렇게 다시 다 돌려받고 계신 거예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말투에서는 겸손과 긍정이 공존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는 늘 감사한 것들을 찾아내고, 하루하루의 기쁨에 집중하며, 여전히 미래를 꿈꾸는 분이었다.


아직 한 번도 뉴욕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는 프랭키 할아버지는 언젠가 타임스퀘어와 센트럴 파크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공항에 도착하여 나의 러기지 꺼내는 것을 도와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언젠가 뉴욕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그레이스를 찾겠어요! “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는 우리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란 걸 알지만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마음을 나누었다. 나도 모르게 악수를 하며 덧붙였다. ”할아버지가 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되길 바랄게요. 꼭 건강하세요! “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간암이 다시 재발할 수도 있어요—“ 라며 담담하게 말하던 프랭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속 발견한 그의 진실한 영혼은 나에게 큰 영감이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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