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라도 괜찮아
베이킹은 물론이고 요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빵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글루텐불내증인 것을 알게 된 후
글루텐프리를 찾아 먹게 되면서 빵도 많이 먹게 되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글루텐프리 빵이 비싸게 느껴져
빵 대신 재료를 사서 만들어보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퇴사 후 본격적으로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쌀베이킹을 배우게 되었다.
10일 동안 매일 오전 4시간씩 진행되는 클래스였다.
수업 첫날, 오랜만에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러 갔다.
출근할 때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교대행을 탔었는데,
반대 방향의, 사람이 거의 없는 대화행을 타니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인생을 반대로 가는듯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최근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가 떠올랐다.
삼십 대 중반의 작가였던 본인의 과거를 '젊은 작가'로 표현했는데, 내가 바로 그 젊은 나이가 아닌가.
뭐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십 대 중반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
나이가 엄청 많다고 느끼며 망설였던 적이 참 많은데,
지금 내가 또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이 젊음을 후회 없이 잘 살아내야겠다는 갑작스러운 각오를 하며 학원에 도착했다.
실습실에는 쌀가루를 포함한 각종 가루들과
오븐, 반죽기 등 장비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수강생은 9명이었는데,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아일랜드 유학생, 이직 준비생, 주부, 제빵사 등
하는 일도 제각각이었다.
다만 나 같은 초짜는 없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제과제빵 경험이 있고
요리에도 능숙하신 분들이라 긴장이 많이 되었다.
9명이 세 조로 나뉘었고 난 3조였는데,
다행히 조원들과 속도가 맞아 편했다.
한 분은 꼼꼼하게 하시느라,
다른 한 분은 느긋하신 편이라,
그리고 나는 실력이 부족해서
우리 3조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모든 것을 가장 천천히, 느리게 완성하였다.
난 그중에서도 가장 느려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주변의 자존감 지킴이분들이 옆에서
처음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것이라며
엄청난 격려를 해주셔서
생애 첫 베이킹 클래스를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태국에서도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긴 했는데,
세팅을 너무 잘해주셔서
사실상 내가 요리를 했다고 하기 애매했다.
준비된 재료를 대충 썰고 붓기만 하면 요리가 되는...
그런데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스스로 해야 했기에 내가 만든 빵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만든 빵은 수업 중 먹는 것이 아니고 싸가는 것이었다.
양도 꽤 많아 가족, 지인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 좋았다.
1~6일 차는 제과(휘낭시에/마들렌/스콘/케이크 등),
7~10일 차는 제빵(소금빵/베이글 등)을 배웠는데,
모든 빵들이 밀가루빵보다 맛있다며 반응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마들렌과 소금빵이 제일 맛있었는데,
소금빵(제빵) 같은 경우 반죽기도 필요하고
모양 잡는 것도 어려워,
마들렌이나 케이크 같은 제과 쪽에 관심이 더 생겼다.
10일 과정이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렸다.
수업 끝난 것을 주변에서 더 아쉬워하였다.
이번에 배운 베이킹 수업을 시작으로
더 부지런히 배워서 카페를 차리게 될지,
하나의 소중한 취미가 될지,
추억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퇴사 후 처음으로 생긴 루틴이 소중히 여겨졌다.
앞으로도 나만의 루틴을 지키며 부지런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다양한 빵과 음식 만들기에도 도전하여
주변에 나누고 싶다.
1일 차. 사브레쿠키&로미아스쿠키
2일 차. 휘낭시에
3일 차. 마들렌
4일 차. 스콘&허니카스테라
5일 차. 단호박크림치즈컵케이크&바스크치즈케이크
6일 차. 인절미쑥케이크
7일 차. 소금빵
8일 차. 베이글
9일 차. 단팥크림빵&무화과깜빠뉴
10일 차. 먹물치즈식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