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이 안에
인생 첫 불면증 3일 차.
가끔 잠이 안 온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누워서 세네 시간씩 깨어있는 건 처음이다.
심지어 오늘은 정말 단 한순간도 못 잔 채
오전 5시 56분 강릉행 열차를 타러 나왔다.
이 글은 강릉에 가면서 입력하고 있지만,
사실은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머릿속으로 거의 다 썼다.
잠이 안 와서 생각이 많아지는 건지,
생각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 건지 조차도 모르겠다.
첫날은 오후 12시가 다 돼서 일어났었고,
밤 9시에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기에
잠이 안 오는 거라 생각했다.
다음날 마라톤대회를 위해 밤 10시 반에 누웠는데,
세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잠에 들었다.
다음 주 공연 곡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둘째 날은 마라톤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났고,
디카페인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마라톤에서 무리했는지 온몸에 열이 났고,
낮에 고기를 과하게 먹었는지 체기와 두통이 있었다.
거기에 남편과 작은 다툼까지…
남편이 내민 화해의 까스활명수와 각종 약을 먹고,
쿨팩을 이마에 한참을 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강릉에 가기 위해 어젯밤 11시 반에 누웠다.
그런데 오늘 낮에 처음 듣고 반해 반복해서 들은
‘우아한 유령‘(윌리엄 볼콤 작곡, 앙드레 아믈랭 연주)이 계속 맴돌았다.
노래 반복 재생도 잠이 안 오는 주요 원인 같았다.
그밖에 잠이 안 오는 모든 원인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잘못 먹은 탓에 속이 부글부글했다.
낮에 밖에 한 번도 안 나가서 햇빛을 못 보았다.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고,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생각도 거의 안 한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거의 안 쓴 것이다.
그래서 이 새벽에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나 싶다.
무수히 넘쳐흐르는 생각과 음악 속에서
중간중간 잠을 자려는 노력은 꾸준히 했다.
시험 시간에 집중하려는 수험생처럼,
‘무생각, 무음악’ 상태를 향해 끝없이 집중했다.
러닝 하다 고통스러워지면 나쁜 자세가 나오는 것처럼,
잠잘 때 안 좋은(나에겐 편한) 모든 자세를 취해보았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고,
문득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엄마도 떠올랐다.
어쩌면 불면증이 유전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3시 40분,
낮에 마신 ‘초코젤라또 말차라떼’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말차 때문인 것 같아 카페인 함량을 찾아보니
243.5mg이었다. 아메리카노보다 많은 양이었다.
카페인이 맞지 않아 거의 디카페인으로만 마시는데,
뭔 바람이 들었는지 고카페인 음료를 마신 것이다.
드디어 범인이 밝혀졌다.
범인이 밝혀졌다고 잠이 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마 불면증은 유전이 아닐 것이고,
오늘은 다시 잠에 들 수 있으리라.
오늘은 어찌 됐든 일찍 일어났고,
운동량도 많을 것이며,
여행 중이라도 흥분하지 않고 음식을 먹을 것이다.
디카페인이라도 오후 2시 이후엔 No!
음악 반복재생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강릉에 가면서 눈 좀 붙이려 했는데,
어느덧 도착 시간이다.
오늘은 부디 나와 엄마, 그리고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히 잠에 들기를(그리고 다시 상쾌하게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커버사진은 ChatGPT로 만든 이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