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고슴도치 May 09. 2020

네 마음은 어떤데?

어떤 말들은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상처 받을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럼 네 마음은?”  
        



이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내가 제일 먼저 내 마음에 물어봐주었어야 할 말이었다. 친구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듣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눈물샘을 비집고 눈물이 뛰쳐나왔다. 그제야 내 마음을 물어주는 일이 간절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받은 상처는 뒤로 미루고, 나의 상처를 꺼냄으로써 생겨날지도 모르는 타인의 또 다른 상처를 먼저 생각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일을 왜 그렇게 극도로 피했는가 물으면 결국 나를 위해서,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타인과의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원만하게 해결해본 경험도 별로 없었고 그러한 상황이 닥치면 나의 감정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어 피곤했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상처까지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특히 나로 인해 상처 받은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내 쪽에서 참고 마는 일이 다반사였다. 상처 받은 나를 대하는 방법조차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착해서가 아니라 내가 별다른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편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습관처럼 그리 해왔던 것을 인정한다. 그렇게 들장미 소녀 캔디도 아니면서 참고 참고 또 참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이 망가지고 있던 거다. 이는 살아남아야 했기에 억지로 누군가를 이해해야만 했던 어린 날들의 잔해이기도 하다. 제 한 몸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되었기에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알았으니 하지 않으면 되지만 악습관을 잊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


그리고 솔직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나인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누군가의 마음에서 쫓겨나는 것, 상처 주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단절되는 마음 등등. 주로 이런 것들이 두려워서 사소한 분란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솔직한 마음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차피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도 이해하는 사람이 이번 생에는 없을 것이라 단정 짓고 차곡차곡 마음의 벽을 쌓았었다.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나는 넓은 아량을 가진 척 ‘뭐, 그 정도쯤이야 내가 이해한다.’며 대강 넘겨버렸다. 솔직해지기 위해 필요한 당장의 분란을 회피한 것이다. 사실 회피도 잘 사용하면 나름 괜찮은 생존 방식이다. 내게 독이 되거나 솔직하고 싶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 척하며 회피하였기에 결과는 엉망이었다. 불편한 것을 괜찮다 하니 똑같은 불편함이 계속 반복되는 꼴이었다. (그러니 어설프게 회피를 할 바엔 아니다 싶으면 그냥 처음부터 도망치는 것을 추천.) 글을 적다 보니 새삼 느낀다. 내 마음은 내게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주인 닮아서 오래도록 참고 있었겠지...


그러던 중 남의 마음 챙길 시간에 내 마음이나 먼저 좀 챙기라는 친구의 돌직구에 나의 견고했던 방어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친구 앞에서 울었던 적은 처음이라 다 울고 나니 머쓱하기도 했지만 속이 다 시원했다. 들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자리 잡아서 어설픈 회피를 습관처럼 시도하려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 말해주고 있어서 참 고맙다.


나는 부처님, 예수님이 아니고 어떠한 득도의 경지에도 오른 사람도 아니다. 나도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 헤아릴 능력도 안 되면서 그런 시늉을 하며 정신 승리하는 것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내 입장에서는 분명 피해를 받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만의 방식이니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헤아리고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내려놓기로 한다. 동시에 스스로를 괴롭혀온 지난날의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용서한다. 이 지난한 받아들임의 시간을 거치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자연스레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은 꽤 괜찮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속도보다 타인의 마음을 알아채는 속도가 빠를 때가 잦긴 하다. 이 두 마음의 사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니까 괜찮다. 


이런 나를 이해하며 무엇보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큰 능력이라는 걸 알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갈고 닦인 이 귀한 능력을 이왕이면 아무 곳에나 남발하지 말고 내가 정말 쓰고 싶을 때 쓰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 헤아리며 살아갈 준비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니 기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운함을 말하는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