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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고슴도치 May 30. 2020

투정 부리는 거예요

어떤 말들은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돈 버는 일이라 생각하며 꾸역꾸역해오던 일들이 넘치고 넘쳐서 내 인내심의 한계에 맞닥트린 것이다. 심신에 여유가 없으니 작은 일에도 모난 감정들이 일어난다. 엊그제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서 엄마의 말이 괜히 거슬리게 들려서 트집을 잡았다. 처음에는 엄마의 말이 내 감정을 상하게했다고 느꼈지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데없는 불평으로 내가 엄마를 속상하게 한 것이다. 내가 부리는 투정에 속이 상해진 엄마와 얼마간 말다툼을 하다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과 더욱 일어나는 화에 못 이겨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는 유치한 멘트를 날려버렸다. (부끄러워..) 그러고 나서 뭘 잘했다고 눈물이 막 나는데, 그 눈물 덕분에 그때의 내 마음이 엉망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냥 투정 부리는 거예요.’    


다음날 회의 때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말해버렸다. 공식적으로는 처음 투정을 부린 것이다. 그런다고 일의 양이 줄어들거나 시간이 더 주어질 확률도 거의 없다는 걸 안다. 프로답지 못하다고, 자기 이미지만 깎는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다. 참으면 쌓인다. 쌓인 건 어떤 방식으로든 터져 나온다. 그때 터져 나오는 것들은 훨씬 많은 걸 망가뜨린다. 그러기 전에 얼른 표현하고 털어내고 싶다. 나는 이렇게 사회생활 부적격자가 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일하면서도 투정을 좀 부리면 어떠한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것보다는 낫다. 운이 좋다면 상대가 투정을 받아주는 천사일지 누가 아는가. 스트레스를 받을 땐 원인을 제공한 곳에 고스란히 돌려주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그렇게 나의 투정이 원래 가야 할 곳에 돌아가고 나니 감정의 자리가 명확해졌다. 이는 감정을 잘 분리하거나 참아내어 일 잘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나의 기준이다. 힘듦을 말해서 얻는 손해보다 힘듦을 참아서 얻는 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하여 선택한 방식이다. 상대방이 나의 능력 탓이라고 하면 그냥 인정해버리고 만다. 능력치의 기준은 대체로 모호하며 내 능력이 상대의 기준에 못 미치는 걸 어찌하겠는가.


투정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일하기가 힘들었던 진짜 이유를 몇 가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게 된 것은 나의 정신적 힘듦을 덜어주는 큰 소득이되었다. 일터에서 투정 부리고 난 그날 저녁, 엄마에게 내가 일이 힘들어서 괜히 투정 부린 것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포옹하는데 또 눈물이 고였다. 엄마는 나를 힘들게 하다니 나쁜 놈들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푸흐흐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나의 감정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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