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들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나와 친구였던 윤은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초등교사의 길을 안정적으로 걷고 있다. 안정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내가 볼 때 분명 부러운 부분이 있다. 이리저리 돈벌이를 옮겨 다니고 집을 이사하고 작업도 잘 안 되어 고단할 때면 윤이 가진 직업적 안정감이 더욱더 부러워진다.
어느 날 내가 가고 있는 길, 그 길 위에서의 선택이 맞는지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나를 윤은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윤은 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살아보지 않은 서로의 삶이 좋아 보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자유의 이면에는 불안이 있다. 동시에 인생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내게 따른다. 내가 좀 더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에 완전히 발붙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조금 슬플 때도 있다. 두 개의 삶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윤에게 너의 선택과 삶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물었다. 안정적이고도 지루한 그 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물었다. 윤은 말했다.
‘그냥 내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노트에 언젠가 적어두었던 말인데 윤의 목소리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윤의 말은 내게 큰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었다. 겉에서 보았을 때 안정적인 수입, 긴 방학이자 휴가 등의 이면에는 수직적인 조직 안에서의 지루함, 사회화가 막 시작된 어린이들과 온종일 함께하는 것이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이 수업 준비하며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이는 것이 재밌어 보인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떤 삶을 살던지 간에 그 안에서 얼마든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선택과 속도와 비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인걸 알면서도 내가 내린 선택이 버거워질 때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 자꾸만 내가 하지 않았던 선택을 뒤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마 다시 돌아가도 비슷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어쩌면 선택지의 좋은 면만 보고 뛰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순진한 방향으로 살아오다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요즘 실감하는 중이다. 지금의 나는 자유롭고 싶은 만큼 안정을 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정 중에서도 경제적 안정감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작년에는 프리랜서로 일을 받아서 하다가 올 한 해는 다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부지런히 모아서 적어도 2년간의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것이 목표다. 집을 구하고 나서의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한다. (아마 다시 프리랜서의 길로...)
고용되겠다고 마음먹을 때 일 할 기회가 찾아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 또한 과거의 내가 이것저것 자유롭게 일 해본 덕분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며 얻은 경제적 안정감을 원동력으로 하여 부지런히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답은 없다. 그저 윤의 말처럼 내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 최선을 다하고 아니다 싶으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선택지 중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하며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