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조그맣게 사는 굴뚝새처럼
예약 스케줄이 있으면 몸 신경을 바짝 쓰게 된다. 아프지 않아야 약속을 잘 지켜내기 때문이다. 콧물 훌찌럭 대는 이들 자주 왔는데 이틀 전부터 눈이 붓고 머리가 띵하다. 예전에 남은 처방약으로 베기다 결국 가정의학과에 선두로 가서 주사 한 방 맞고 나왔다.
눈은 무겁지만 서현씨랑 청람 평론가님을 뵈러 약속 장소인 송도의 밥상편지로 출발했다.
일산에 차를 놔두고 오시는 바람에 인천 1호선까지 환승을 3번 하셨으며 인천대 입구에서 책을 보고 계신 중절모 아저씨를 뵀다. 평론가님을 아저씨로 모신 것은 예상외로 아주 편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중엔 우리가 청람 또는 청람 평론가님이라고 호칭해 드릴 때 발음이 꼬인다고 했더니 “그러면 ‘왕쌤’이라고 불러요.” 하셨다.
송도 센트럴파크역의 경복궁을 지나 상호가 예쁜 ‘밥상 편지’라는 한식집에서 편히 식사했다. 이곳은 저번 주에 서현씨의 둘째 아이 상견례를 했던 바로 그 좌석이다.
점심 피크 시간이 지난 14시가 다 되어 가는 무렵이라서 우리가 거의 밥을 먹을 때는 우리만 덜렁 남았다. 4인분을 주문했는데 왕쌤은 2인분을 흡족하게 드셨다. 2주 정도의 전화 통화상에선 참 어려운 분이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한 수저 들을 때는 웃음의 여유가 있으신 편안한 이웃분이셨다. 문화 대통령급인 대작가님과 한 밥상을 하다니 살다 보면 요런 일이 생기는구나 했는데 평론가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인 안최호 아저씨를 호명하셨다.
“최호야, 노래 하나 해줄래.”
딱 이 한마디에 자연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화물차를 운전하시면서 각설이 타령을 구성지게 빼셨다. 옆에 있던 서현씨가 “얼쑤” 추임새 장단을 넣으며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의리란 “해줄래?” 한마디와 바로 튀어나온 두 곡의 노래다. 멋지고 쿨하게 아메리칸 스타일로 사시는 두 분 앞에 서현씨는 오늘 메인 무대의 진행자 같았다. 배꼽이 들락날락했다. 청자만 해도 귀가 너무 즐거웠다.
노래를 매일 읊던 서현씨가 ‘오르막길’ 노래를 선두로 하고 이어서 영종도의 커피숍으로 2차 자리를 가졌다. 탁트인 바다를 보고 우린 섬집아이등 동요 몇곡을 같이하고 왕쌤은 글을 쓰셨다. 대번에 확 스칠 때 후딱 서현씨를 위한 시를 만들어 주셨다. 이어서 AI를 시켜 이 시에 맞는 작곡을 한 시간 정도 후 받았다. 신기루다.
기뻐하는 서현씨는 뮤지컬 배우로 전향, 어려워하는 대작가님과 나의 자리 우리 셋 관계를 편하게 유도하는 재주는 숨어있다가 몰아 쉰 숨처럼 툭 튀어나왔다.
은빛 물결 윤슬로 빛나는 바닷물 앞의 모래사장에서 버스킹하는 청년과 듀엣으로 서현씨가 한 곡조 뽑을 동안 왕쌤은 글을 지으시고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셨다.
만남이란 어느 누굴 만나는 자리이건 간에 편해야 하며 유쾌하고 행복해야 한다.
거리낌 없이 각자의 끼를 재현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멋지지 않겠는가.
* 음악도 없는데 혼자서 신나게 노는 서현씨 쇼 - 청람 김왕식 유튜브 영상에 올렸는데 조회수 급상승 중 *
동요도 부르며 왕쌤의 문화 이야기도 새겨듣고 저녁이 되는 무렵까지 우리는 아주 많이 웃었다. 일산이 댁이셔서 근방까지 서현씨가 배웅해 드리는데 느닷없이 “왕쌤, 오늘 너무 즐겁고 보람됐어요. 그런데 제 차가 기름충전 해달라고 해요. 만땅 넣어 주시겠어요.”
숫기도 좋다. 그리고 나는 화들짝 놀랬는데 왕쌤께선 허허허 웃으시며 자동 세차와 주유를 5만원 정도 만땅 채워 주셨다. 굉장히 호탕하시고 매너가 멋지신 따뜻한 분이셨다.
훌륭한 분 앞이었는데 많이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왕쌤께서도 정말 웃기다. 이런 거 처음 겪는다고 하셨다. 다음에 작가분들 모이게 되면 가수를 꿈꾸며 붙임성이 좋은 서현씨를 대동하여 실컷 웃는 자리를 갖게 할 것이다.
시샘이나 억센 질투 모가나면 안된다. 그러면 만남이 껄끄러워지고 좋은 글감도 갖지 못한다. 서현씨의 기발한 끼에 배꼽 잡을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 을왕리 해수욕장에 해가 저무니 꽤 운치가 있다. 이곳 앞에서 실컷 웃어서 좋았다. 합창이 된 동요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웠으며 유쾌한 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