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른도 아이가 된다
8개월 만에 ‘나를 찾는 여행 필사’ 정모를 가졌다. 총 16명 중 9명이 모여서 필사한 것을 가지고 감정 이입을 토론하며 피드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봉종근쌤은 여성분이며 하순연쌤은 거구의 체격인데 여동생 그리고 따님과 항상 책을 읽고 토론한다고 했다. 순연쌤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 흐르는 강물처럼, 새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날’을 도서 목록에 추천하셨다. 추천 도서는 도서관에서 장시간 책을 골라야 하는 불편함을 없앤다. 나도 꼭 읽어봐야 한다는 강한 의욕을 준다.
순연쌤이 책 목록을 대는데 송지영 작가님이 생각났다. 많은 책을 곁에 끼고 계신 분 아니던가.
다들 글과 책에 빠져서 문학과 삶의 연결을 고무(남을 격려하며 더욱 힘을 내도록 함)했다.
이런 식으로 문학 토론만 하자고 하며 나만 먹는 그릇에 비유했다. 친구한테서 선물 받은 그릇에 나만 음식을 담아 먹었는데 그 그릇이 어느 날 갑자기 깨져버리자 선반에 잘 놓여있기만 했던 새 그릇이지만 묵혔던 것을 끄집어내어 쓴다는 묘함이 인다고 했다.
글쓰기와 책을 가까이하는 문학에 빠진 이들이어서 연령대와 상관없이 우린 소녀였다.
행복을 가질 수 있는 용기는 마음도 가질 수 있는 용기가 된다. 불안해도 살 용기. 나이를 먹으면 추억이 하나씩 소멸해 가니 책과는 거리두기 하지 말자고들 뜻이 통했다.
사소한 얘기는 필사했던 부분의 보충 주입이 된다. 영어학원장인 수진쌤은 중학생이 된 아들이 방학 때는 내의 바람으로 뒹굴뒹굴 잘도 구르고 알아서 일어났는데 입학식을 하자 부담이 됐는지 교복 넥타이를 목에 칭칭 두르고 잔다고 했다.
처음이란 것에 엄두가 안 나고 새로움이란 것에 느끼게 되는 억압 같은 부담일 것이다.
만수역에서 지근거리인 들꽃차반에 들러 시골 밥상 한 상을 대접받는 기분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우리는 문학 이야길 그치지 않았다.
우린 언제 행복하나? 질문이 던져졌다.
아이 등원시키고 난 후라고 두 아이의 엄마인 수진쌤과 통찰지도자인 행복향쌤이 같이 말했다.
난 요즘이 자주 웃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어서 질의 반 응답 반이 던지기 시작했다.
법정 스님의 사찰에 도둑이 들어왔는데 가져갈 게 없으니 탁상시계를 훔쳐 갔단다. 왜 하필이면 시계인가? 생활에 불편함이 커서 종로로 나갔더니 중고 용품 파는 곳에 법정 스님의 탁상시계가 놓여있더란다. 텁텁한 마음이 일었지만 당장 필요해서 천 원에 사 왔다고 무소유의 책에 쓰여있다. 문장 끝에 스님이 그러셨다. 나를 떠나서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놔주자.
사랑도 매한가지라며 부평역 앞의 박치과 원장이 아들이신 혜자쌤이 그러셨다. "죽어가는 화초도 우리 집에선 잘살아.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필요로 하는 것을 줘야 한다. 물을 막 주지 말자. 물배 차서 죽지."
여기서 쓸데없는 말은 없었던 것 같다. 문학과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독후감 같은 감정은 겨울잠을 다 잤나 보다. 다들 이어받기에 시간이 짧았다.
추억은 먹는 것도 된다며 먹는 것과 만드는 요리에 대하여도 담소하다가 수진쌤이 그랬다.
“저 지금 친정엄마 계신 낙안읍 동네 갑니다. 엄마는 바리바리 음식 중이시지만 시댁은 민주적이에요. 작은아버지들이 일흔 넘으셨는데 다들 졸혼 하셔서 시엄마가 아주 편해요. 시동생들이 팔 걷어붙이고 다해줘요. 막내 작은 아빠만 60대여서 아직 졸혼을 못했는데 여긴 봐주고 있어요.”
빵 터진 말에 동의하면서 민주적 가치관은 아이들 학습에도 관여되니 말이나 행동이 특출나다고 생각되면 그 아이의 생각대로 지켜보기만 해라. 자기들이 알아서 갈 길을 잘 헤쳐간다고 여든이신 혜자쌤도 거드셨다.
아기 때는 “네가 못 해.” 아이가 커버리면 “엄마가 못 해.”로 변한다. 맞는 말이다.
경청만 해도 귀가 즐거웠다.
https://youtube.com/shorts/tXxJuJv-luc?si=ze76QhRmQNb-85wL
* 꽃보다 예쁜 여자 작가님의 유튜브 쇼츠를 공유합니다. *
나는 이렇게 오늘도 글과 좋은 담소와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행복한 것이다. 언제가 행복하냐고 묻기에 바로 지금!
* 펼치기 편한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