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건..
어릴 적 세상은 단순했다.
흑과 백, 옳음과 그름, 사랑과 미움, 내 편과 네 편.
그 경계선은 날카로웠고, 나는 그 선 밖의 사람들을 쉽게 재단했다. 부모도, 어른들도, 모두 그 선 안에서 완벽히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세월은 묵묵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내가 몰랐던 회색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직장에서 삼킨 말, 사랑을 지키려다 놓친 순간,
나를 지키려다 누군가를 잃어버렸던 기억.
그 속에서 나는 알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 의자를 놓고 앉아 조용히 침묵하는 일이라는걸.
나이 듦은 뒤돌아보는 연습이다.
젊을 땐 보지 못했던 부모의 깊은 주름,
친구의 서투른 거짓말,
누군가의 차가운 결정을 감싸고 있던 눈물.
그 모든 것의 이유가 이제야 보인다.
삶은 뒤돌아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아마 나이듦이란, 이해의 문을 여는 열쇠일 것이다. 문을 열지 말지는 우리의 몫이지만, 열었을 때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빛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제 안다.
나이 드는 건 늙어가는 게 아니라
미움 대신 이해를,
단정 대신 질문을,
상처 대신 손을 내미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조금씩, 세상은 덜 날카로워지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깊어지고 나 자신에게도 용서가 스며든다. 그것이야말로, 나이 듦이 주는 가장 고요한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