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생각나던 마추픽추

07. 잉카의 중심 쿠스코에서 회한의 땅 마추픽추까지

by 불꽃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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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페루 쿠스코로 이동하는 야간버스에서는 밤새 복통에 시달려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쿠스코 터미널에 내릴 때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여서 어딘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새벽이라 체크인을 하려면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숙소 근처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의 벤치에 앉았습니다.


서서히 밝아오는 쿠스코의 아침, 그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피폐했던 몸과 마음을 거짓말처럼 회복시켜준 쿠스코와의 첫 만남. 쿠스코(Cusco)는 잉카어로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배탈 난 손자의 배꼽 주위를 쓸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이 떠올랐습니다. 그 따뜻한 온기 덕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뜻 보면 우리와 비슷한 페루사람들의 미소 때문인지, 광장 앞 약장수의 입담 때문인지, 아니면 밤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별 같은 마을의 등불 때문인지. 명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었지만 나는 적당히 활력 있고 평온한 쿠스코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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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포근함과 달리, 잠자리에서는 여러 번 악몽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무언가에 쫓기고 죽음으로 연결되는 스산한 잔영이었습니다. 사실 악몽의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크사이와만(Sacsayhuaman) 요새는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는 견고한 석조건축으로 유명하지만, 또한 수많은 잉카인들이 스페인군에게 학살되었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세상의 중심을 자처했던 잉카제국. 그 최후의 땅, 마추픽추(Machu Picchu)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는 차에서 밖을 내다보니 아찔했습니다. 사나운 협곡과 구름이 넘지 못하는 안데스의 높은 산들은 마추픽추가 400년 넘게 세상으로부터 망각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듯했습니다.


침략군에 쫓긴 잉카인들은 백척간두 같은 마추픽추마저 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늘로 솟았을까. 땅으로 꺼졌을까.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아득한 마추픽추의 정경은 그들의 애달픈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엘 콘도르 파사>*를 들었습니다.


스페인 통치하에서 잉카의 후예들은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1780년, 쿠스코 출신의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가 주축이 되어 농민봉기가 일어납니다. 초반에는 총독을 사로잡는 등 위세를 떨쳤지만 이듬해 진압당하고 맙니다. 콘도르칸키는 사지가 찢기는 참형을 당하여 쿠스코 광장에 효수되었습니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잉카의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주오.

사람들은 콘도르칸키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자신들의 서글픈 처지를 노래했습니다. 콘도르는 안데스 바위산에 둥지를 틀고 사는 맹금류인데, 잉카에서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콘도르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먼 산을 보았습니다. 불현듯 콘도르는 전능한 구원자가 아니라, 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계란이 되어 바위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에선 바보였으나 역사에선 영원히 살아 있는 사람.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그렇게 살다간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소주가 한 병 있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녹두꽃 향기 묻어나는 마추픽추에서 콘도르 날개를 펴는 그곳을 향해 술 한 잔 올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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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콘도르 파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먼&가펑클이 부른 노래 <철새는 날아가고>로 알려져 있다. <엘 콘도르 파사>의 원곡은 페루의 클래식 작곡가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잉카의 토속음악을 바탕으로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