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유럽여행을 가고 싶던 안중근, 그의 철길에 서서
하얼빈을 방문했던 그해 여름, 하얼빈역은 증개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역에 있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잠정 폐쇄 되었다는 소식은 알았지만 그건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얼빈역에 가는 이유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1번 플랫폼, 바로 그 자리에 서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매표소로 가서 1번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달라고 했다. 굳이 1번 플랫폼을 특정 하는 외국인이 의심스러웠던지 매표소 직원은 표를 내어주지 않았다. 영어를 못하는 역무원과 중국어를 못하는 나 사이에 상냥한 대화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나는 ‘안중근! 이토! 빵!’ 이런 파열음을 내뱉었고, 그는 양손을 들어 올려 단호하게 엑스(X)자를 그릴 뿐. 소란이 길어지자 영어를 할 줄 아는 다른 직원이 나왔고, 비로소 1번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개찰구를 지나 1번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없었다! 플랫폼 끝에서 끝까지를 왔다 갔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저격지점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기차는 타지 않고 역 안을 배회하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는지 역무원이 다가왔다. 나는 휴대폰에 저장해둔 의거지점 사진을 보여주며 그 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빠~러~” 무미건조한 한마디. 계속 휴대폰을 들이밀자 역무원은 귀찮다는 듯 나를 플랫폼 끝으로 끌고 갔다. 공사장 펜스 틈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빠~러~”.
그때서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그리고 매표소 직원이 양손으로 엑스를 그렸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사는 철로와 플랫폼까지 포함하는 것이었고 의거지점은 이미 철거되었던 것. 꼭 한번 서보고 싶던 그 자리는 이제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역 근처에는 제홍교(霽虹橋)라는 다리가 있다. 그곳에 서면 하얼빈역의 모든 철길이 내려다보인다. 나는 다리 위에서 철로의 개수를 세어보며 의거가 있던 그날을 다시 구성해보았다.
이토는 만주 침략이라는 야심을 품고 하얼빈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안중근은 이토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당시 발간된 흑백신문의 흐릿한 사진을 보았다고 한들 도움이 되었을 리 없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일면식도 없는 적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리는 일은 오직 감(感)에 의지해야하는 도박이었다.
오전 7시, 역에 도착한 안중근은 이토의 열차가 오기까지 2시간을 구내 다방에서 기다렸다. 앉아서 차를 마시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철길로 달려갔을까.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과 어머니도 떠올랐을 것이고, 이토 저격에 실패하거나 아예 그의 면상도 보지 못한 채 붙잡히는 일도 상상했을 것이다. 열차가 도착해 다방을 나가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으로 서른하나 짧은 생이 끝나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그가 여러 유혹을 뿌리치고, 가슴을 짓누르는 육중한 무게를 떨치고, 1번 플랫폼으로 저벅저벅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의 고뇌를 ‘감히’ 넘겨짚을 수 없었다. 땅을 딛는 발걸음과 권총을 쥔 손아귀의 떨림은 고사하고, 입술에 닿았을 찻잔의 감촉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얼빈역의 철길을 바라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철로가 교차하고, 어떤 철길은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이어진다. 청년 안중근에게는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와 파리를 여행하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원한다면 갈 수도 있는 길이었지만 그는 하얼빈을 종착역으로 삼았다.
하얼빈역 1번 플랫폼, 그곳에 나는 설 수 없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찾은 것 같았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빚진 사람의 자리’를. 서른한 살 안중근이 기꺼이 단념했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음 여정을 이어갔다.
* 2017년 6월 방문 당시 진행 중이던 하얼빈역 증개축 공사는 완료되어 2019년 3월 20일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다시 문을 열었다. 이토를 저격했던 의거지점 역시 그 자리에 다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