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한해 나이 먹으면서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파릇파릇한 청춘이었을 때라고 해서
기억력이 엄청 좋았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무척 재미있었거나 감명 깊게 읽었던 책도
시간이 흐르면
전체적인 내용은 대충 기억이 나도
디테일한 부분은 가물가물해지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봤던 책을 난생처음 보듯 집었다가
한참을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봤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어라, 전에 읽었던 거잖아.’ 할 때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잘 잊어버리는 중에도
간혹 잊히지 않는 책 속의 문장들이 있는데,
그런 문장은 마음밭에 콕 박혀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뿌리를 내리듯
그 글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기도 한다.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요즘 쉽사리 흔들리는 나의 일상을 붙잡아 주는 이 문장은
예전에 읽었던 <쓰기의 말들>이라는 책에서 인용되었던
소설가 김영하의 글(?)이다.
(다른 책에 인용된 것이니
그가 정작 이 글 또는 말을 어디서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글처럼
기록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이,
비록 나의 글이 보잘것없긴 하지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듯한 일상에
작은 의미나마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아니니 당연히 보수를 받는 것도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
글을 쓰면서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고 있다는 것이
한편 삶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