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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헌 Jul 10. 2024

해야 되는 건 알겠는데, 하기 싫은 걸 어떡해?

내가 게으른 건 기분이 안 좋기 때문이었어.

  해마다 12월이 되면 우리는 ‘시간 참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올 한 해 내가 계획했던 것과 실천했던 것들을 되짚어본다. 하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계획대로 열심히 실천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회화책의 책갈피는 반도 넘지 못했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며 3개월을 끊어놓은 헬스장은 몇 번 가보지도 못했다. 금연은 오래전에 포기했고, 읽기로 한 책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채 오늘도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다.


  문제는 내년에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계획을 또 세워야 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씁쓸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올해만의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고,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년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운동을 해야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운동을 하면 좋은 수많은 이유도 줄줄이 읊을 수 있다. 심지어 운동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헬스장에 가거나 스포츠클럽에 가입하지 않아도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러닝이나, 집에서 할 수 있는 홈트도 널려 있다. 그럼에도 내 몸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것을 선택한다. 화면 속 다른 사람의 몸매를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술이 몸에 안 좋다는 것도 이성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탄수화물과 설탕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식 앞에서는 ‘내일부터’를 외친다. 하지만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야모든 게 내 감정 때문이야.     


  왜 이런 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될까? 왜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하지 않을까?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게으른 걸까?


  그 비밀은 바로 ‘감정’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게으른 명확한 이유는 감정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며, 기분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바로 행동을 만드는 것이 ‘감정’이라는 말이다. 모든 행동의 문제는 감정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다. 감정 뇌가 그것을 어떤 이유에서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반면 감정 뇌가 받아들이는 것은 강력한 행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내 삶을 절대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생각해 봐라. 행동은 지적으로 이해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흡연자들에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담배의 해악을 설명해 보라. 그들은 모두 그 설명을 이해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절대로 담배를 끊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인스턴트 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들이,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떤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럴까? 우리의 후회하는 행동들 중에서 몰라서 그랬던 게 있기는 할까?


  이 구역에서는 이성 뇌는 그저 거들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 감정 뇌의 가치판단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혹은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담배를 끊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충격적인 사건 같은 감정적인 울림뿐이다.


  물론 하기 싫어도 움직이기는 한다. 직장에 가야 하거나, 학교에 가야 하거나, 혹은 누군가 총을 들이댄다면 하기 싫은 일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의 힘이 감정을 억지로 억누를 때뿐이며, 그 힘이 사라지면 행동도 사라진다.



  이런 진실을 모른 채 우리는 인생을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비록 지금은 아니어도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성이 감정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아니라 안 하는 것일 뿐, 조만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언젠간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이는 명백한 착각일 뿐이다. 그렇게 착각을 하니 매년 똑같이 후회하고, 똑같은 새해 계획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가 삶을 통제하기는커녕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근본 문제다. 반복하지만 해야 하는 걸 하기 싫게 만드는 건 자신의 감정이다. 그것이 우리의 행동을 가로막고 미루고, 게으르게 만든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감정 뇌가 멋대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감정이 나의 삶에 이토록 중요하게 개입하고 있다면, 만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감정 대신 이성적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그럼 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논문은 감정이 사라졌을 때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환자 중에 엘리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뇌에 있는 종양을 제거한 후 감정 능력에 이상이 생겼다. 다행히 그의 인지능력은 멀쩡했으며, 아이큐는 여전히 높았다. 그러나 감정을 잃어버린 결과 그는 결정을 내리는 능력도 같이 잃게 되었다. 그는 사기를 당해도 사소한 일처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1억을 잃는 것과 볼펜을 잃어버리는 것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는 중요도를 따지지 못했고, 모든 결정이 똑같은 가치로 느껴졌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감정적으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감정과 공감능력을 상실하자 그의 삶은 무너져 내렸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엘리엇의 경우 감정적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자, 어떤 일이 더 가치 있고,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순서를 만들 수 없었다. 다친 사람을 구조하는 것과 짐을 옮기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하는 일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이 이입되어야만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판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감정을 느껴야 나의 스마트폰 액정이 깨지는 것이 벽돌에 난 스크래치보다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판단을 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할 때는 감정에 의한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 기능이 손상되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토대학의 사토 와타루 박사는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든 감정을 필요로 하는 감정의 생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감정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러니 우리가 삶을 진짜로 통제하고 싶다면 중요한 키워드는 ‘감정’이다. 감정이 가치를 부여해 주고 의사결정과 행동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감정을 몰랐던 우리의 의지력이 부족했던 이유이며, 매번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주범이다. 그러니 우리가 감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인생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감정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감정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 가지는 꼭 기억하자. 기분이 행동을 지배한다. 결국 감정이 행동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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