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헌 Jul 17. 2024

세상은 이미 내가 감정적인걸 알고 있어

우리는 감정에 따라 소비한다.

  우리의 행동에 감정이 깊이 관여한다면,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외부의 힘에 의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영향을 받는다면 어떨까? 외부의 의도에 따라서 내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미 내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감정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감정을 공략한다.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소비를 위한 마케팅이다. 우리의 거의 모든 일상은 소비 마케팅에 둘러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를 해도, 길거리를 걸어도, 지하철을 타도 온통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마케팅은 단순한 노출을 넘어서 우리 뇌 속을 공략한다.


  ‘95%의 법칙’의 저자인 더글라스 밴 프랫은 세계적인 광고기획자이자 브랜드 전문가이다. 그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가지 기둥은 모든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며, 마케팅에서는 이를 이용하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유쾌한가 불쾌한가라는 평가축 사이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할 수 있는데, 더글라스의 말은 우리의 모든 감정을 공략하겠다는 선포나 다름없다.     


  소비는 감정이야     


  ‘오감브랜딩’의 저자 마틴 린드스트롬도 “마케팅이란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전략적으로 유혹해서, 이유는 모르지만 그 상품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성을 자극해서 그 상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기술이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실제 펩시콜라와 코가콜라를 블라인드 테스트해보면 사람들은 펩시콜라의 맛이 더 좋다는 대답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펩시콜라를 더 좋아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브랜드 선호는 코카콜라가 펩시콜라를 압도한다. 즉 브랜드 선호는 합리성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선호하는 이유는 실제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맛있을 것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MZ세대에게 애플은 뇌 속에 각인된 강력한 브랜드다. 그들은 커피숍에서 사과 로고의 노트북을 펼치고, 귀에 하얀색 이어폰을 꽂는 것을 소위 힙한 사람들의 표상으로 받아들인다. 애플에는 스티브잡스의 혁신과 예쁜 디자인을 아우르는 감성이 있다. 애플의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느낌을 공유하고 소속감을 느낀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별도로 들고 다녀야하는 귀찮음을 감수하면서도 삼성페이를 사용할 생각은 없다. 애플의 고객은 단순 소비자를 넘어 팬이며, 추종자들이다. 그리고 애플의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지지자가 되었다. 그것이 삼성 제품의 판매량이 더 많아도, 애플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이유 중 하나다. 삼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애플은 종교를 만들었다.


  그래서 마케팅의 궁극적인 꿈은 뇌에 각인된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의 모든 회사들이 사람의 뇌를 공략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더글라스는 브랜드의 목표가 소비자의 무의식을 점령하고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괜한 허풍이 아닌 것이다.


  브랜드는 궁극의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감정영역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브랜드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위 명품을 살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우월감을 느끼며, 브랜드를 통해 인정을 받으려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한다. 그래서 고급 브랜드는 따라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합리적으로 소비한다는 엄청난 착각     


  결국 우리의 소비도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만을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 까지도 필요한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그리고는 본인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정당화시킨다. 즉, 감정에 의한 결정을 먼저 내리고, 그 이후에 이성적 논리로 결정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해 준다. 소비자들은 이미 감성적으로 선택한 브랜드를 자신이 왜 선택했는지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쇼핑은 감정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지 결국 우리의 소비습관을 지배하는 것은 감정 이죠.” 

-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나를 합리화시키고 내가 이렇게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는 걸 의식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마케터들이 던져주는 유혹에 끌려가는 그러한 노예와 같은 상태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곽금주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은 감정이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감정을 이용하고, 감정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이번만 이 가격이고 다음에는 인상된다는 말에, 다른 아이들은 다 하고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명품과 콜라보한 리미티드 에디션은 순식간에 완판이 된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이미 우리의 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조정하고, 욕망을 건드려 소비를 만들어낸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도 우리가 느끼는 바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가치판단은 논리나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치열한 세상의 실체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면 남의 생각대로 살게 된다.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유혹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힘을 알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가 언제나 이용당하기만 하던 입장에서, 우리의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감정을 잘 관리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내부적 요인이던 외부적 요인이던 간에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인생 질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감정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커다란 변화를 만들 준비운동을 마친 셈이다.


  이제 우리의 감정과 본격적으로 마주할 시간이 되었다.

이전 02화 성공의 비밀? 그들이 관리한 건 감정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