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별 Feb 16. 2017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

급변하게 바뀌는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올라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알 수 있고,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현재를 통해서 짐작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



올해 2016년, 작년과는 또 다른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대한민국의 최순실 게이트, 미국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등. 어쩌면 관심이 없었거나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앞으로 더 강력하고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몰락이나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같은 우리나라의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던 영국은 GDP를 2배로 만들기까지 150년이 걸렸고, 미국은 그 보다 빠른 50년, 중국과 인도는 불과 13,16년에 불과했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독신자의 날 하루 매출로 93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의 사이버 먼데이에 기록한 23억 달러에 비해서 3배 이상의 매출 차이를 벌이기도 했고, 독일의 BMW는 인텔과 모빌아이와 함께 향후 5년 내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컴퓨터 반도체를 만드는 인텔도 이제 더 이상 자동차와 관련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감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과연 앞으로 다가오는 급변하는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올라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입을지, 점심을 무엇을 먹고, 심지어 어떤 생각을 할지 선택하고 결정한다. 결정하는 요인의 가장 큰 두 가지는 과거의 합리적 요인과 습관적 요인이 있는데, 합리적 요인은 어떤 두 가지 이상의 상황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지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것이고, 습관적 요인은 과거의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빠르게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할 때 평소에 시키던 아메리카노를 시킨다면 습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고, 평소에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셨고 마침 가격을 할인하는 다른 메뉴를 마셔보는 것은 합리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는 결정을 하는 요인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 요인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천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이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고 심장이나 간 같은 신체의 많은 기관들의 기능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많은 의사결정 또한 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귀찮은 일이고, 그런 일들은 대뇌가 아닌 소뇌를 통해 처리된다.


소뇌로 처리되는 일들은 두뇌활동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을 담당하고 있다. 2X2가 4라는 것은 실제로 계산을 하고 의식해서 추론한 결론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영역이 담당하는 소뇌에서 내린 결론이다.



나이가 들어서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이유도 과거부터 축적되어왔던 경험적 결정이 새로운 사실이나 변화에 있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경험적 판단이 실제로 필요한 경우도 많다. 일촉 측 발의 사고가 일어나거나,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땐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통한 무의식적 결정이 상황을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경험적 판단은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미래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롭고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다가오기 때문에 과거지향적 판단으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경험' 이 주는 지식과 정보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라고 말을 했다. 내가 아는 것들이 언젠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표현했던 건 아닐까.




오늘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것들도 언젠가 사실이 아닐 수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재능보다 더 중요한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