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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Dec 07. 2016

누나의 소개팅

만남에 있어서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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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7살인 우리 누나에 관한 이야기다. 태어나서 제대로 된 연애를 아직 못 해본 우리 누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며 소개를 받는 분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누나보다 뛰어난 사람도 아닐뿐더러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나였지만, 적어도 누나가 만나는 분들과의 시간이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으면 싶은 마음에 누나가 소개팅남을 만나러 가기 전 지하철 안에서 이것저것 이야기해주었다.


처음에는 소개팅을 나갔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물어보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취미는 어떻고, 주량은 어떤지 등등 어쩌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들만 던질 뿐이었다. 질문으로 돌아올 대답은 대부분은 '예' 혹은 '아니오' 같은 딱딱한 느낌의 질문들 밖에 없었고, 나는 질문들을 조금씩 바꿔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제안을 했다.


"어떤 일 하세요? → "지금 하시는 일을 해오시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 "술을 안 드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여행 좋아하시나요?" → "여행을 다니시면서 인상 깊었던 적 있나요?"


굉장히 사소한 차이지만, 내가 겪어 본 경험에 의하면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보통 무미건조한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평소의 생각들을 듣기 쉽지가 않다. 질문을 살짝 바꿔서 질문하는 것으로 상대방에 대한 특정 경험에 대한 생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질문을 던지면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조금 더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지난 만남을 떠올려봤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쉽지 않다. 다만 어떤 분위기였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에 흐릿하게 남을 뿐이다. 좋은 질문을 통해 좋은 대화로 이어지는 흐름은 상대방이 느끼기에 편안함을 줄 수 있으니 좋은 인상으로 남을 수 있다.


두 번째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누나가 최근에 만난 소개팅남은 멀리서 오느라 일찍 출발했고, 누나는 선약 때문에 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누나를 만나러 오는 그 소개팅남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 직장인들의 주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 약속시간에 늦은 건 정말 미안한 일이고, 소중한 주말을 누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그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제말 말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이다.



세 번째로 의견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누나는 자기 의견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찬반이 갈릴만한 이야기를 해줘도 그 말이 맞는 거 같다며 본인의 생각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연설을 하거나 강연을 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일방적인 대화는 오히려 양쪽에게 좋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 번 이끌리기보다는 대화를 리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친구를 예시로 들어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 친구 중에는 '만약'을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대화하는데 있어서 만약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만약에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면? 만약에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다면? 만약 제일 친한 친구가 보증을 서달라고 한다면?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나처럼 본인의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면, 어떤 상황을 가정해서 상대방의 의견도, 내 의견도 이야기할 수 있는 '만약'은 굉장히 유용하다고 느껴졌다.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지금 하는 일보다 근무여건이나 여러 가지로 열악하다면?'

'만약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있는데, 내가 용인할 수 없는 잘못을 했다면?'

'만약 나를 괴롭게 하는 직장상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면?'



조금 더 직접적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을 예시로 들 수 있겠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라면 너무 직접적인 것들에는 언급을 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만약을 가정해서 대화를 하는 것이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온전히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과연 우리 누나는 소개팅남과 이전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한 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 거 같아서 전부 적용하기 어렵기도 하고 어찌 보면 굉장히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혹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조건이나 여건은 어찌 보면 지금 당시에 가지고 있는 것들이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은 전혀 반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기보다는 앞으로 이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대화, 좋은 분위기도 좋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진심'이 아닐까. 상대방을 만나는데 있어서 좋은 질문을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면 무의미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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