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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Apr 12. 2017

내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일상의 기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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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하다. 정확히 말하면 기분이 나쁘다. 어려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어떻게 행동하는 게 최선일까 고민이 된다. 갑작스레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이 10가지가 넘고, 좋은 사이로 지내던 친구와 갑자기 틀어지게 되었다. 또 만나자고 해놓고 일방적인 약속 취소까지. 

어쩌면 전부 내가 만들어낸 일이고, 내 생각과 행동의 결과물들이다. 누굴 탓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전부 다 내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 조자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인 건 지금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나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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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요즘 들어 기분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두통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뇌'에서 생각하는 걸 멈추라는 신호는 아닐까 싶다. 일이 잘 안 풀리고,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 극복하려고 이리저리 궁리도 해보고, 어쩌면 좋을지 생각을 하다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그 감정이 기분으로까지 전이가 된다. 나쁜 감정을 가지고 계속 극복하려고 방법을 더 떠올려봐도 비관적인 생각으로만 이어지기 때문에 뇌에서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리 좋지 못하니 일단 차분히 휴식을 좀 취하라는 뜻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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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한 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뜻을 가진 '간사'라는 단어가 최근 들어 참 눈에 아른거린다. 분명히 글이 잘 안 써질 때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많아져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합리화했고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것보다 약간 더 큰 아픔을 겪으면 신기하게도 글이 잘 써진다. 아이러니하게 글은 잘 써지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은 어서 떨쳐버리고 싶다. 마음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 나쁜 꾀를 부려서 내가 힘들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간사한 사람보다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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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니체가 말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제야 아주 조금 알 거 같다. 죽음 이외에 모든 것은 모두 내 경험이 될 것이고, 그 경험은 나를 더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주니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관계에 대한 고통들도 결국은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나를 죽이지는 못 했으니 내가 더 강해지는 일만 남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멘토들이 있지만, 나 자신을 거울삼아 반면교사 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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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봄이 우리 집 안방으로 찾아왔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오면 누구나 벚꽃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난히 더 쓸쓸하고 아리다. 굳이 벚꽃을 보러 가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존심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노력하기도 했다. 노력의 결과가 항상 성공은 아니듯, 찾아오는 실패가 참 아프고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더 도전하기 두렵고 차라리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기쁨을 함께 즐기고, 불행을 나누고 살아야 하는 '우리'니까. 분명한 건 삶에 있어서 더 가치 있는 것은 명예나 돈이 아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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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 새로운 가능성.

실패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나부터가 실패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연애에 실패하고, 일하는 곳에서 적응을 실패하고, 다이어트를 실패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실패하고 살면서 많은 영역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겪는다. 실패는 과연 부정적인 걸까?



어렸을 때 '윈드밀'이라는 춤 동작을 연습하기 위해 엄청나게 연습을 했다. 매일이 실패의 반복이고 무릎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윈드밀을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연습하고, 그렇게 몸에 익숙해지니 어느 순간 내가 윈드밀을 한 바퀴, 두 바퀴씩 돌고 있었다. 결국 윈드밀을 해내게 된 나는 과연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까?


실패가 진짜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비보이를 접하고 멋지게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과연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 해 보고 연습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으나, 나는 그만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노력하는 것에 비해서 올라오지 않는 실력과 같은 동작의 반복이 주는 단조로움까지. 그렇게 나는 좋아하던 춤을 자연스레 접었지만, 나와 같이 세계 최고의 비보이가 되자고 다짐했던 친구는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과연 따라 할 수 있긴 할까? 싶은 동작들을 이제는 능숙하게 해낸다.


지금 연애에 실패했지만, 다음에 만나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도 있고, 오늘 다이어트에 실패한 것이지 내일 다이어트까지 실패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오늘의 실패는 오늘로 끝이고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 위에 적어 두었듯 실패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기 마련이다. 1주일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해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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