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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Jul 17. 2018

피아노

일상의 기록#33




왜 갑자기 피아노는 내 일상으로 찾아왔을까?


한 달 전 어느 화창한 날 문득 피아노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피아노를 쳐보고 싶었다. 무작정 집 바로 앞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여쭤보고 일을 마치고 곧장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등록을 하곤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악보를 보는 법 조차 몰랐고, 계이름도 볼 줄 몰랐다. 말 그대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피아노가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처음 마주하는 것들이 주는 설렘도 동시에 찾아왔다. 손을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악보에 내오는 숫자가 나타내는 의미, 건반을 칠 때 어떤 식으로 쳐야 하는지 등등 전혀 모르는 피아노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악기라고는 군대에 있을 때 잠깐 배워 본 기타가 전부였던 나에게 피아노는 새로운 흥미이자 요즘 관심사가 되었고, 평일 중에 3일을 학원에 가서 배우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을 가르쳐 본 적이 처음이라고 하시던 선생님은 생각보다 잘한다며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처음 무작정 무언가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무작정 시도했던 것 치고는 신기하게도 내 일상으로 곧잘 들어왔다.


의외로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피아노가 예전보다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한편으로는 거부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을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약속을 잡았던 내가 피아노를 배운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약속의 횟수가 줄어들고 그 시간에 다른 것을 못 하고 고정적으로 학원에 가야 한다는 것도 언제부턴가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다. 그런 생각들이 어느 순간 찾아와 의무감으로 다니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왜 배워야 하는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동했던 일들이 내 일상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니 일이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학원이라 저녁에는 수업이 없지만, 회사를 마치는 저녁시간으로 수업시간을 따로 만들어 주셨으니 금방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기 죄송하기도 했다.


한 달을 조금 넘은 어느 시점에서 그만둘까? 고민하던 찰나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겨서 넌지시 여쭤보았다. 요즘 실력이 늘지 않아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듣고, 조금 더 해봐야겠구나 싶었다. 한참 사람들 만나고 놀고 싶을 때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것도 대단하지만, 악보를 전혀 볼 줄도 모르던 내가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이다. 초등학생들만 가르치다 성인을 가르쳐보니 앞으로는 성인들도 가르칠 수 있겠구나 싶으셨다고.


그리고 초심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처음 건반을 눌러보며 신기해하던 느낌을 잊지 말고, 절대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잘하려고 부담 갖지 말고 오늘 안되면 내일 더 해보면 되니까 그저 지금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라고 말이다. 약속이 있거나 하면 빠져도 되니까 부담 없이 꾸준히만 하면 된다고 해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되어서 계속 더 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난 TV에 나오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처럼 멋지게 피아노를 쳐보고 싶었던 거 같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싶은 것은 엄연하게 달랐고, 그 차이로 인해서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마음을 다듬어서 피아노를 즐기고 있는 요즘, 단순히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꾸준함과 끈기, 초심에 대해서. 꾸준히 소소하게 오래 함께하고픈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이 친구와 끝도 언젠가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끝이 났다는 것보다 그 과정 속에서 참 소소하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만큼 내 마음도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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