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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Oct 04. 2016

그림을 다시 그려보는 것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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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방향.

올해 최대의 목표로 해왔던 철인 3종 경기 출전이 허무하게 끝나고, 나의 대부분의 것들이 멈췄다. 그다음을 딱히 생각해보고 행동했던 건 아니어서 정말 계획이 하나도 없었다. 계획이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밤과 낮이 바뀌는 건 기본이고, 늘어지고 생각하는 사고조차 막히는 기분이 든다. 한 치 앞도 모르는데 디테일한 계획이 뭐가 필요해? 라며 외치고 다니던 나는 지금 잠시 멈춰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올해 목표했던 것들도 어찌어찌 지나가면서, 지금 나는 예전에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 있다. 그 시기를 나는 내 나름의 슬럼프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는 당시에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사표를 내고 당장 다음 주에 미국으로 떠났을 때 마주했던 언어의 장벽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려고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10km씩 달리기를 하고 수영을 다니곤 했으나, 자전거가 규정에 어긋나 뛰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것도 결국은 나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졌다. 


최근 주변의 시선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부모님의 걱정, 추석에 내려가면 쏟아지는 질문들.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내가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진로에 대해서 고등학교 이후로 고민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얼 배우고 싶은지 잡힐 듯 말 듯 그런 느낌이다. 집에서 가만히 있어봐야 답이 갑자기 툭하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축 늘어지기만 할 뿐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내 뜻대로, 혹은 나의 기대대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많은 상실감을 느꼈고, 나의 자존감은 많이 내려왔다.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던 일들이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저질러보자! 싶었던 내 마음도 일단 더 알아보고 결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앞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2016년 9월까지 목표를 했으니 남은 3개월을 어떻게 보낼지, 어떻게 그려나갈지 아직 정해놓은 게 없다. 이제는 다시금 내 삶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여행을 떠나 보려고 한다. 목적지는 없지만, 목적은 있다. 대화를 많이 하고 싶다. 친구들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과 말이다. 친구의 고민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걱정해놓고, 정작 내 고민과 생각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태도부터 좀 고쳐야겠다. 괜찮은 척, 애써 씩씩한 척하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 기쁘면 기쁘다, 나 스스로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말고 솔직해져야, 다른 이들에게도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매일 밝을 수 없고, 매일 긍정적일 수 없다. 그저 솔직한 나의 모습을 내가 받아들이는 연습부터 조금씩 해야지.


길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터널을 만났다. 살면서 많은 갈림길이 나를 찾아오고,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서 앞으로의 삶이 힘들고 지칠 수 있지만, 분명한 건 나를 힘들고 지치게 했던 그 선택을 조차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비포장도로를 잘 달릴 수 있는 요령을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비게이션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마주해야 하는 길이 옳은 선택인지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인생의 이정표가 어떤 모습일지는 다른 사람이 아닌,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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