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시 뉴질랜드에 가기로 했다.
뉴질랜드행 계획을 시작한 건 첫 직장 퇴사 무렵인 2016년, 요즘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근로시간을 최대로 기록하던 때였다. 한 달에 초과근무 100시간을 넘어 월급이 두둑하다는 농담을 던지며 동기들이랑 매일같이 야근하던 중, 여기서 이렇게 몸을 축내느니 뉴질랜드로 가서 모험을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일 년 반을 다니며 살은 쪽쪽 빠지고 방광염을 달고 살다 하혈까지 하니 이제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 싶었다. 퇴사 일자를 기다리던 중 혹시나 하고 지원했던 괜찮은 조건의 회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인턴을 했던 회사라 사람들도 익숙하고, 무엇보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겁이 났던 지라 몇 년 더 일하면서 준비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을 하며 뉴질랜드 계획은 마음 한 구석에 넣어두었다. 만 서른까지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으니 몇 년간 돈을 더 모아서 떠날 수 있다. 그 사이 나랑 같이 모험을 하고 싶어 하던 남편과 결혼을 했다. 신혼살림에 큰돈을 들이지 않고 뉴질랜드행을 준비하며 돈을 모았다. 두 명이 같이 움직이기엔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로 지내는 것보다 내가 학교를 다니고 남편이 일을 하는 게 더 안정적이라 준비 방향을 살짝 바꿨다.
회사생활과 공부, 뉴질랜드 유학까지 준비하던 일련의 과정에 결국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회사 업무에 비상이 걸려 미국이랑 연락하느라 매일같이 야근에 주말 아침에도 노트북을 열었다. 파트타임으로 공부하던 석사 논문은 결국 괴발개발 억지로 쓰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 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남편이 짜증을 받아주며 살림을 도맡아 했지만 결국 첫째 조카 돌잔치 날 밤새 앓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을 흘리니 빨간색 손목 식별표지와 함께 중환자로 분류되어 드라마 속 제한구역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아 진통제와 소염제 처방받아 나왔다.
여기서도 이렇게 힘든데 해외에 나가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올라왔다.
2020년 초, 코로나가 나타났다. 그 해 7월이나 12월 즈음 회사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가려고 아이엘츠 영어점수를 이미 따놓은 후였다.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짧게 지나갔듯 코로나도 잠깐이면 지나갈 줄 알았다. 그 해 5월엔 사전답사로 뉴질랜드에 다녀갈 계획이, 7월 말에는 부모님 그리고 언니네 가족과 몽골여행 계획이 있었다. 몇 달 만에 비행기 표가 전부 환불되며 통장 잔고는 두둑해졌는데 우리는 불안해졌다.
회사에서는 한동안 소문이 돌던 희망퇴직이 6월 말 공고가 났다. 혹시나 했는데 내가 속한 부서는 대상이 아니었다가 7월 중순 뒤늦게 포함이 되었다. 4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모집했는데 난 4년 3개월째 재직 중이었다.
좋은 기회다 싶어 손을 들었고 희망퇴직으로 퇴사하는 가장 젊은 직원이 되어 2주 만에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