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도 괜찮아

by 시원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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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ckSnap, 출처 Pixabay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운동장에서 허리를 숙인 채 앞을 보고 서있었다. 그 옆에는 아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남자아이가 서있다. 두 아이는 저 멀리 보이는 선생님의 하얀 깃발을 주시한다. 이내 깃발이 내려간다. 두 아이는 힘껏 달린다. 점점 차이가 벌어진다. 작은 아이는 앞서 나가며 뒤를 힐끗 쳐다본다. 큰 아이가 자신보다 작게 느껴질 만큼 보이자 기쁜 마음에 결승선 앞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장난하지 말고 빨리 뛰어". 작은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결승선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작은 아이에게 자신이 뛴 기록을 알려주었다. 그렇다. 기록경기였다. 작은 아이는 자신과 같이 뛴 아이보다 빨랐으나 반에서 30명 중 23등을 하였다.


나에게 달리기 추억은 이것뿐이다. 인생에서 진정 달리기를 좋아했던 시절도 아마 그 시절이었을 거다. 그땐 그저 뛰는 게 즐거웠던 시절이었을 테지. 하지만 성인이 되고 40대가 되어보니 달리기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하는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달리기는 관심밖에 일이었다. 달리는 것보다 달려 숨찬 게 싫었다. 어쩌다 달리기를 할 때도 있는데 조금 멀리 신호등이 바뀐다거나 탈 버스가 나를 지나칠 때 뛴다. 그럴 때마다 폐가 조여 오면서 숨을 거칠게 헐떡인다. 하필이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나만 알고 있던 나약한 모습이다. 창피했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가 싫었다. 내 인생에 달리기는 없다고 다짐했다.


40대 중반을 지나자 삶에 대한 질문이 반복적으로 나를 괴롭힐 무렵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새벽 산행을 시작했다. 마음만 앞선 탓인지 산행은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잠이 많은 나로서는 우선 일어나는 것부터 문제였다.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는 말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음만 먹고 하루 이틀을 미루다 보니 일주일이나 지났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휴대폰 알람을 분단위로 맞추어 놓았다. 다음날 새벽 5시 알람이 내 잠을 흐트러 놓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이불을 덮어쓰고 멈추길 기다렸다. 그러나 알람은 멈추고 울리길 반복했다. 하는 수 없이 누워있던 몸은 반으로 접었다. 게슴츠레 휴대폰을 보니 벌써 10분이 지나있었다. 누워서 눈뜨고 안 자 있기까지 10분이라니.... 게다가 이불에서 벗어날 때까지 10분이 흘렀다. 욕실에 비친 거울을 보니 게으른 내가 보였다. 한숨이 밀려왔다. 이것밖에 안되나 싶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또 10분이 흘렀다. 밖은 아직 어두 컴컴하다. 잠깐 갔다 올 요량으로 신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었다. 집 앞산 초입에 도착하자 바람소리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직 어두운데 소리까지 스산하니 무서웠다. 그날 목표는 30분간 산행이었는데 포기하고 돌아갔다. 집에서 산 초입까지는 500m 정도 되었다. 그래도 왕복 1km 걸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 아닌가?


작심삼일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내 열정이 식는 시간은 삼일이었다. 시작한 지 삼일이 되자 웅크리고 있던 게으른 꽃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꽃봉오리를 잘라야 했다. 그러나 나흘째 되던 날 게으른 꽃은 활짝 피었고 다시 마음먹기까지 한 달이 흘렀다. 이번엔 기필코 성공하리라 굳은 의지를 담았다. 그 의지는 다행히도 성공했다. 시간이 갈수록 산행의 거리도 늘어났다. 간간히 위기도 찾아왔다. 추운 겨울이 그러했다. 하지만 겨울에 잠시 멈춘 의지는 이내 봄에 활기차게 시작했다. 2년째에는 겨울에도 산행을 유지하였다.


산행을 하다 보면 달리기는 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인다. 주말에는 동호회 사람들이 달리기를 꽤 많이 한다. 저마다 자신들의 동호회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산을 달린다. 그런 모습에 몸을 들썩거린다. 하지만 몸을 열정적인데 의지는 안주라 바라만 본다.


산행을 할 때 늘 보이는 한 사람이 있다. 내가 올라갈 때 그는 달리며 내려온다. 그는 산 초입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숨을 고른다. 일정 시간 숨 고르기를 한 후 다시 산을 달린다. 산 중턱에서 나를 지나치고 산 정상까지 내달린다. 그는 정상 공터에 다시 원을 그리며 숨을 고른다. 내가 정상에 도착할 때쯤 달리며 내려간다. 매일 보는 그의 모습에 나의 달리는 유전자가 꿈틀거렸다. '나도 달려볼까?' 하지만 오르막길에서 걷는 것조차 힘겨워서 이내 포기했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었다. 그는 매일 달리고 나는 매일 걸었다.


달리는 그가 부럽던 어느 날 산 중턱에서 나는 달렸다. 비록 100m 정도 달리고 거친 숨을 몰아세웠지만 심장이 터질듯한 움직임이 좋았다. 걷다 달 리다를 반복하면서 정상에 도착했다. 매일 보는 풍경이었는데 그날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의식의 새로움이었을 테다. 그날 걷는 눈과 달리는 눈이 바라보는 곳은 틀리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달리는 것도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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