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나는 온몸을 비틀며 마음속 신음을 내뱉는다. 이미 뇌에선 이불속 밖은 위험하다는 신호가 분출된다. 나는 누군가 알람을 꺼주길 바라며 나름 버틴다. 5분 후 알람은 스스로의 기능을 꺼버렸다. 1차 알람전쟁은 나의 승리다. 나는 곧이어 올 2차 알람 전쟁을 준비한다. 어김없이 5시 10분 다시 알람이 울린다. 맞은 곧을 또 맞으면 더 아프다. 알람도 그렇다. 신경질적 변한 손의 휘두름에 휴대폰이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순간 원하지 않는 고통의 별이 보였다. 나와 가까워진 알람은 더욱 요란하게 울린다. 나는 얼굴을 이불 안으로 집어넣고 왼손으로 휴대폰을 찾기 위해 더듬거렸다. 사각물체에 손이 닿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럴 수가.... 터치를 잘못하여 알람기능을 온전히 끄지 못했다. 이럴 땐 스마트폰이 짜증 난다. 잠시후면 나의 실수로 원하지 않은 2.5 알람전쟁의 시작이다.
이제는 몇 차 알람전쟁인지도 모르겠다. 알람은 세상 멸망한 듯 때마다 울려댔다. 이제는 휴대폰을 부수고 싶은 욕망까지 솟구쳤다. 더 이상 뇌도 이불밖이 위험하다는 신호가 사라질 때쯤 나는 하루 중 가장 못생긴 얼굴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주방불을 켜고 소원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10번째가 넘어가니 손목이 아팠다. 늘 그랬다. 꼭 10번째에 아프기 시작해서 30번째가 넘어가면서부터 쓸만해진다.
소원 노트는 처음 며칠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생각이 계속 들어하는 게 고역이었다. 습관이 일이 되면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아침에도 써보고, 저녁에도 써보고, 시간마다 써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명상이나 상상도 가장 몽롱한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가장 몽롱한 시간을 찾기 위해 나의 하루 순환체계를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시간은 기상 후, 자기 전이었다. 지금 나는 제일 귀찮은 시간에 소원 노트를 쓰고 있다. 한 달 남짓 지나니, 세뇌가 되었는지 쓰는 것에 거부감은 사라졌다.
상상의 힘의 저자 네빌고다드는 말했다.
"내면의 눈으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믿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바라는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하며 여러분의 믿음과 일치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면의 눈은 나의 뇌이고 믿음의 변화는 세뇌이다. 명상도 자기 최면이다.
내가 소원노트를 적는 이유도 그렇다. 그래서 가장 몽롱한 시간(기상 후, 자기 전)에 하루 두 번 나의 뇌를 세뇌시킨다. 이 모든 것이 나로 살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나로 살 준비가 되어있는가?
당신은 나로 살 세뇌가 되어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