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들 녀석이 자신이 먹고 싶다던 치킨이 왔다며 영상통화를 했다. 나에게 빨리 오라며 즐거워하던 아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퇴근 후 집 현관문을 열었다. 아들은 치킨이 왔다며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러나 집 안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딸아이와 아내를 보였다. 붉은 식탁 조명에 두 사람의 연무가 무거운 공기로 변해 나의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조용히 겉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어둠 속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그런 나를 딸아이는 눈치를 채고 있었나 보다.
"아빠는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를 나에게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입을 쉽게 열지 못하게 하였다.
"사는 건 힘들지"
순간 튀어나온 말에 적절치 못한 대답이라 여겨 나는 다시 말했다.
"사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사는 것보다 재미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나의 대답이 딸아이의 질문에 대답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딸아이는 이미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아마도 내가 오기 전 울음을 터트렸나 보다.
딸아이는 요즘 자신에게 향한 질문에 방향을 잃었다고 했다.
'사는 게 무엇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
결국 대화중 북받치는 감정에 울음이 터트렸다.
딸아이가 겪는 질문은 내가 40대 중반에 겪었던 질문이다.
이제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에 겪고 있다니...
이런 생각에 그때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열심히 살았던 삶에 회의를 느껴 절망하지 않았던가?
괴로움에 눈이 멀어 넘어질까 뒷걸음치던 나날들 속에서
넘어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나날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한층 더 성장하지 않았나?
나는 삶이 질문이 더 빨리 찾아오지 않는 것에 참 많이도 아쉬워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이른 나이에 삶의 질문이 찾아오길 바랐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독서, 글쓰기, 여행, 유튜브를 하면서 부모로서 길을 보여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보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부모라 해도 지금 겪고 있는 자식의 삶의 질문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안다.
자식 스스로의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겪는 질문들을 가르치거나 조언하지 않았다.
단지 아내와 나는 딸아이와 같은 질문이 왔을 때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딸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아빠는 40대 중반에 너와 같은 질문이 들어왔어"
"근데 우리 딸이 17세에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건 대단한 거야"
"아주 대견한데, 우리 딸!"
나는 딸아이 앞에서 엄지 손가락을 폈다. 옆에 있던 아내도 나의 말에 거들었다.
"엄마는 네가 잘 따라와 주어서 고마워"
"벌써 우리 딸, 어른이 되었네, 축하해"
어른이 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생의 풍파로 인해 겪게 된 삶의 회의가 덫이 되어 폭풍처럼 밀려오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얻게 될 마음의 불안감을,
죽음의 두려움을.
거대하고 깊은 바다라는 사회에서 하찮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그러나 그것 또한 숭고한 나의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을 없다는 것을.
언제 그랬냐는 듯 방향을 찾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의 돛이 생긴다는 것을.
딸아이는 지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