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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Feb 09. 2023

소원 물


어느 날 내가 집에서 물을 마시려 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거 알아?"

아내의 두리뭉실 물음이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게 무슨 말인데?"

톡쏘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내의 얼굴이 심상치 않아 나는 금세 웃는 얼굴을 하며 세상 이런 부드러운 남자가 있냐는 듯 말한다.

"여보 내가 알아야 하는 게 있어?"

"물은 아무런 저항 없이 모든 걸 흡수해"

"혹시 알고 있었어?

그제야 아내의 뜬금 질문이 이해가 되었다.

"아니, 몰랐어"

아내는 내가 들고 있는 물 잔을 양손으로 잡고 말했다.

"이제부터 물을 먹을 때 이런 행동을 해봐"

아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아내의 진지한 행동이 난감했다. 나는 속으로는 '제발 물 좀 마시자'란 생각이 들었지만, 의미가 있을터, 조용히 아내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눈을 뜬 아내가 말했다.

"자 이제 이 물은 내 소원이 흡수된 물이지"

"주문 하나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신비로운 물이 된 거야"

"이제 이 신비로운 물을 마셔 몸에 흘려보내면 돼"

"그러면 물에 흡수된 소원은 몸에 있는 모든 세포에게 전달되는 거지"

아내는 나의 물을 마셨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새로운 물을 따라 나에게 건넸다.

해보라는 아내의 지시다. 방금 진지한 아내 모습에 내 모습을 겹쳐 생각하니 민망하다.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웃음이 터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두 눈을 찡그리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래도 내 경험상 아내의 행동에 의미가 있을 터였다. 나는 아내가 건넨 물 잔을 두 손으로 잡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나의 몸에 흘려보냈다. 물은 나의 식도를 타고 들어갔다. 그리고 위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아내의 말처럼 물에 담긴 소원이 내 몸 구석구석 각인 되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가볍다. 내 몸 안에 막혀있던 걱정들이 빠져나갔다. 


작년 가을 경주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여러 유적 중에서 특히 기억이 남는 하나가 나의 기억 속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그곳은 안압지였는데, 야간에 물에 비친 정원의 모습에 나는 반했다.  

안압지의 현실 세계보다 빛과 현실을 흡수해 만든 물의 안압지 세계는 더 신비로웠다. 

태양보다 물에 비친 태양의 눈부심이 더 강렬한 이유는 본연을 아무런 저항 없이 흡수해 되돌려주는 물의 힘이 아닐까?


나의 소원을 흡수한 이 물이 몸안 세포에 더 강렬히 각인되도록, 나는 오늘도 소원의 물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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