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른 아침 비가 잦아들어 모처럼 산행을 시작했다. 평소에 들을 수 없는 물소리가 나를 반겼다. 꽤 오랫동안 비가 오는 터라 흙에 잔뜩 머금고 있는 물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그 물든 아스팔트 옆 도랑으로 모여 흘렀다. 그 도랑은 꽤 빠른 물살과 아주 작은 폭포의 물소리도 만들어 냈다. 더욱이 많은 물의 흐름에 도랑의 깊이는 깊어져갔다.
작년 이맘때도 비가 많이 왔다. 이따금 비가 잦아들 때면 산행을 했는데 흙과 돌들 사이로 물이 흘러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래서 작년 가을 한쪽에는 배관을 묻고 다른 한쪽으로는 도랑을 파는 공사를 했다. 그 덕분인지 올해는 흙과 돌들이 아스팔트를 점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이 한 곳에 모여 그 길 따라 흐른다면 아무 일도 없다. 그러나 물이 막혀 여러 갈래의 물길이 새로 생기면 문제를 일으킨다. 뉴스에서는 며칠사이에 비로 인한 안타까운 사연들이 나온다. 아직도 그것이 인재인지 천재인지를 따지는 걸 보면 화가 난다. 이미 일이 발생되고 나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산 정상쯤 다 달랐을 때 위에서 두 명의 여자가 내려온다. 나와 가까워졌을 때 그녀들의 대화가 들렸다.
"언니, 나는 이런 날 산에 오는 게 참 좋아"
"그래 나도 좋아, 그런데 나는 산에 올 수 없어"
"맞아, 언니는 바쁘잖아"
대충 이런 대화였다.
잠시 비가 멈추고 흐린 날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는 이웃동생과 바빠서 못 오는 언니의 대화였다. 순간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다.
"언니가 산에 못 오는 이유를 왜? 이웃동생이 대답할까?"
내 옆을 걷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여자는 공감해줘야 하는 거야"
"그런가?"
나는 살짝 마침표를 찍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산 정상에 오르자 비가 만들어낸 안개가 내 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안개 사이로 몇몇 건물들이 보였다. 때마침 습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정말 그랬다. 처음에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다가 나중에 찝찝한 이 기분은 뭐지? 바람은 여전히 불어오고 있지만 나의 땀은 마를 생각이 없다.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큰 숨을 쉬어 나의 몸은 커다랗게 만들었다. 위로는 커지지 못할망정 옆으로는 커질 심정으로 산에 있는 모든 기를 다 먹어버릴 기세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런 나의 거대한 생각은 하찮은 날파리가 귀에 날아들었을 때 깨졌다. 귀에서 윙윙 거리는 탓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역시 방해는 가까운 곳에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