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장사를 시작하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작은 간판을 걸며, 이 공간이 내 삶의 터전이 되기를 바랐다.
“1년만 버텨보자”
그것이 내 유일한 목표였다.
수익보다 생존, 성공보다 존버.
그저 이 자리에 내가 계속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랐다.
매일 아침 셔터를 올리며 나는 묵묵히 다짐했다.
이 작은 공간이 나를 지켜주기를,
그리고 내가 이 공간을 지켜내기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여인을
나는 당연히 손님인 줄 알았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인사도 없이 매장을 훑더니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길 건너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그녀는 부동산 사장을 대동해 다시 찾아왔다.
“매장을 언제까지 비워주실 수 있어요?”
한참을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황스러움보다 어이가 앞섰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제야 옆의 부동산 사장이 설명했다.
“이분이 이 건물 새 주인이세요.
오늘 건물이 거래됐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모르는 사이 내 공간이 팔렸고,
새 주인은 이제 나에게 ‘나가달라’고 통보하고 있었다.
말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저 나는,
내 자리를 잃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계약서를 다시 꺼냈다.
다행히도 2년 계약.
그리고 전 주인에게 정수기, 에어컨, 집기 사용 조건으로
권리금도 주고 들어왔던 터였다.
며칠 뒤,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전 주인과 얘기 끝났어요.
권리금 줄 테니 언제 나가실 건가요?”
당연하다는 얼굴로 덧붙였다.
“이사비용 200만 원 드릴게요.
그럼 된 거잖아요?”
그녀의 말에는 배려도, 존중도 없었다.
그냥 이 공간을 자기가 쓸 수 있도록
‘나’를 밀어내면 된다는 태도였다.
나는 겨우 진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일단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장사 중에는 불쑥 찾아오지 마세요."
그녀는 마지막까지 말했다.
“지금 안 나가시면 권리금도 없어요.”
그 말이
어떤 계약서보다 더 강하게 나를 내몰았다.
그날 밤,
나는 이 공간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겨울밤 손을 불어가며 셔터를 내렸던 날들,
비 오는 날에도 문 열고 기다리던 순간들,
조용한 매장 안에서 혼잣말처럼 외치던 다짐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지나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지금 이 공간을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일까?”
결국 나는 결심했다.
고작 30미터 떨어진 곳에
비어있는 매장이 나왔다.
나는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 자리를 내주기로 한 결정은
패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을,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의연한 퇴장이었다.
그 후,
그녀는 내가 나간 매장에
자신의 ‘뜨개방’을 들였다.
명의는 다른 사람 명의였고
월세는 올랐다.
그리고 1년 뒤,
그녀는 5억 5천에 산 건물을
7억 5천에 팔았다.
그녀는 1년 만에
2억의 차익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오르는 시세와 함께
줄줄이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만 남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잃었지만 나를 잃지는 않았다.
비워진 공간만큼
내 마음에 새로운 결심이 들어찼고,
옮긴 자리에서
나는 또 하루를 열고, 또 하루를 닫았다.
지금도 가끔은 그 매장을 지나친다.
낯선 이름의 간판을 보며
내가 그곳에서 버텨낸 날들을 떠올린다.
텅 빈 매장을 바라보며
혼자 인사했던 그날,
나는 생각했다.
“수고했어. 정말, 잘 살아냈어.”
이제 나는 안다.
공간은 잃을 수 있어도,
그 안에서 견딘 나의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