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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상처받았습니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10년 된 오래된 거래처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참 믿음직스러웠죠. 일을 맡기면 결제도 빠르고, 약속도 잘 지켰습니다. 그런 관계가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그게 사람 사이의 신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제가 점점 늦어졌고, 그에 따라 미수금도 늘어갔습니다.


처음엔 ‘뭐, 이 정도야…’ 싶었습니다. 며칠 늦는 건 흔한 일이고, 바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결제는 한 달 후가 되어버렸고, 나는 말없이 그걸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말 한마디 못 하고, 속으로만 삼켰습니다. 한 달 결제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달, 석 달…
그런데도 거래는 계속 들어왔고, 나는 그 일들을 또 묵묵히 처리했습니다.


차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업체로 바꾸겠다고 할까 봐서요. 혹여 일이 끊길까 봐, 나를 믿지 않게 될까 봐, 나는 애써 조심스럽게만 굴었습니다. 정작 마음은 조마조마했지만, 결제 이야기를 꺼내는 건 늘 망설여졌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상처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정말 용기를 내서 말해봤습니다.
“혹시 이번 달 결제는 언제쯤 가능하실까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너한테만 주는 게 아니야. 다른 데도 줘야 하니까 좀만 더 기다려줘.”

순간, 마음이 툭 꺾였습니다.


나는 그저 착하게 참은 건데, 그들은 그걸 ‘기다려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거죠. 그제야 알았습니다. 거래처는 나처럼 거절 못하는 사람보다 딱 잘라 말하는 사람부터 챙긴다는 걸요. 나는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고, 그게 나를 지켜주길 바랐지만 오히려 그 옷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미수금을 세 번에 걸쳐 받았고 조용히, 그 거래처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건, 어쩌면 ‘거절’이라는 말 아닐까요. 거절을 못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나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길 바라고, 실망하지 않길 바라죠.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참습니다.


내 마음을 뒤로하고, 관계를 먼저 챙깁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는 사이 내 마음은 점점 무너져 내립니다. 솔직해지지 못한 관계는 결국엔 어긋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편함을 감춘다고 해서 진짜 편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거절'이란 말은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가게 하는 말일 수 있다는 걸요.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 솔직함이야말로 상대를 진짜로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것도요.


저는 아직도 거절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면 마음속에서 수없이 망설이다 겨우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해주려 합니다.

“괜찮아, 거절해도 돼.”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다치고, 지치고, 상처받는 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를 더 아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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