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요즘 나는, 스무 살 때도 해보지 않았던 머슬업에 빠져 있다.
한때는 거울 속 무표정한 내 모습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달라지고 싶었다. 겉모습이든, 삶의 태도든, 아니면 그저 하루에 의미 하나쯤을 더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시작은 단순했다. 팔 굽혀 펴기 10분. 매일 100개.
이 작은 습관이 쌓이면 뭐라도 달라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욕심은 늘 기대보다 앞서간다. 금세 1000개까지 늘렸고, 결국 허리를 다쳤다. 몇 주간 운동은커녕 걷기도 버거웠다. 그제야 알았다. 차오르는 것은 언젠가 넘치게 마련이고, 넘침은 곧 멈춤을 부른다는 걸 말이다.
회복 후에는 욕심을 조금 줄였다. 하루 500개. 그렇게 8개월을 채웠다.
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큰 변화가 없었다. 몸은 그대로, 의지도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했다. 매일 하던 팔 굽혀 펴기를 자꾸 빼먹게 되었고, 그만둘 핑계를 찾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방향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이 이미 지쳐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피트니스 센터의 문을 열었다.
작은 결심이었다. 단지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 처음엔 낯설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거울 속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다. 뭔가가 바뀌고 있었다. 그 작고 느린 변화가 내 안의 불씨를 되살렸다.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생겼다.
그러나 또다시 멈칫.
유튜브 속 ‘3개월 만에 몸만들기’는 내게 해당되지 않았다. 변화는 점점 더디게 느껴졌고, 그 속도에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뭔가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며칠을 스스로 돌아보다 알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과 타협하고 있었다는 걸. 익숙한 무게, 안전한 반복, 실패하지 않을 거리만 두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중량과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피트니스 센터를 떠나 전문적인 헬스클럽으로 옮겼고,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낯선 기구들, 낯선 자세들, 낯선 무게들. 매 순간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 낯섦이 내 몸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만족보다 먼저 밀려오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배웠다면.’
이런 생각들이 거울 앞에 서면 어김없이 따라왔다. 변화한 몸을 보며 뿌듯하면서도, 왜 그때는 그렇게 서둘렀을까, 왜 그 시간들을 내버려 뒀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시간을 가장 잘 쓴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하루를 촘촘하게 기록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는 생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내 시간을 더 잘 쓸 수 있었을 것 같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누구에게나, 아무리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더라도 마음 한편엔 늘 아쉬움이라는 작은 여백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팔 굽혀 펴기를 시작했던 그때도, PT를 받으며 중량을 올렸던 지금도,
나는 늘 뭔가를 채우려 애썼다. 그런데 다 채우고 나면 오히려 허전했다.
목표에 도달한 날도 마음은 조용히 물었다. “정말 이게 다야?”
그 질문이 싫지 않다.
그 여백이 내 안에 남아 있기에,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만족은 완성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만족은 언제나, 조금 부족한 상태로 나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혼잣말처럼 말한다.
“차오름의 끝엔 늘 여백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여백을, 아주 오래 곁에 두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