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망토와 중년의 날개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어릴 적 나는 궁금한 게 참 많았다. 슈퍼맨 영화를 보고 난 날은 특히 더 그랬다. 망토만 두르면 하늘을 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린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굳게 믿었다. 날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나의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인생 목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탐색. 집안을 뒤져 자줏빛 보자기를 발견했을 땐 가슴이 뛰었다. 그건 분명 슈퍼맨의 망토였다. 문제는 그 보자기가 엄마의 꿀단지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 꿀단지? 아니, 이제 곧 망토가 될 존재를 감싸고 있는 단지일 뿐이었다. 단지 안에 무엇이 있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하늘을 날 자유, 바로 그것뿐이었다.

나는 결국 단지를 툇마루 아래 돌에 굴려 깨뜨렸다.


조청처럼 끈적한 액체가 터져 나왔다. 마치 단지 안의 용암이 분출되듯. 나는 온몸에 끈적한 액체를 뒤집어쓰고도 만족했다.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동네 바위로 달려갔다. 자줏빛 망토가 내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며 외쳤다. “이제 날 차례야!”


그리고… 뛰어내렸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망토는 나를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데려갔다. 머리에서 따뜻한 피가 흘렀고, 내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프기도 했지만, 날지 못했다는 절망이 더 컸다.


그날, 슈퍼맨은 되지 못했지만 나의 호기심과 용기는 망토처럼 내 어깨에 감겨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덧 40대 후반이 되었다. 어릴 적엔 “지금 세대가 달라요!”라고 반항하던 아버지의 말들이, 요즘은 귓가에 찰싹 붙는다.
“내가 네 나이엔 산에 가서 나무 지고 땔감 했어.”
그 말, 이제는 안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존중이었다는 걸 말이다.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꿈도 꿨다. 나만의 매장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며 부자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내 상상보다 야속했고, 세상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사람도 그랬다. 가까웠던 이에게 사기를 당하고, 물건을 바꿔치기당하고, 뒤통수를 맞은 일도 수두룩했다. 그때는 소중한 ‘고객님’이니 참고 넘겼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걱정이 호기심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별일 아닌 일에도 잠을 설치고, 위염이 재발하고,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과거의 나를 떠올릴수록 현재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매출은 줄고, 열정도 식었다. 그리고 마침내, 묻고 싶어졌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20대에도, 30대에도 물었었다. 하지만 그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며 넘겼다.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호기심 없는 삶이 얼마나 건조한지를 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보자기를 둘러야겠다고.

하늘을 날 순 없지만, 내 공간만큼은 만들 수 있겠다고.


매장의 반을 정리하고, 먼지 속에서 나를 꺼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친구가 말했다.

“이젠 숨 쉴 수 있겠다.”

커피 머신을 들여놓고, 소품을 놓고, 매장이자 카페인 공간을 만들었다. 이제는 손님들이 간판을 보고 두 번 확인하고 들어온다. 그럴 때면 괜히 뿌듯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공간이 생기니 마음도 넓어졌다. 즉흥 여행도 떠나고, 독서 모임도 만들고, 팔 굽혀 펴기도 하고, 경매 공부에, 글도 쓰고… 작년 한 해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요즘 나는 빵을 만들고, 꽃을 정기배송받고, 가끔은 자줏빛 보자기를 떠올린다.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걸 어떻게 채우느냐가 문제다.

이제는 안다. ‘사는 게 다 그렇다’는 말이 삶의 위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오늘, 어제보다 조금 더 호기심 많은 어른이 되어본다. 바위에서 뛰어내리듯, 한 번쯤은 다시 시도해 본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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