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제에 좋은 사람은 무슨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처음 매장의 셔터를 올렸을 때,
나는 장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사장이었다.
그런 나를,
동종 업계 사장들은 신기할 정도로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그걸 알아챈 일부는

가끔 믿기 힘든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중 어떤 이는 중고 제품을 새 박스에 넣어
고장 난 것처럼 가져와 교환해 갔다.
그때 나는 가격도 제대로 몰랐고,
내용물을 확인할 줄도 몰랐다.
그저 ‘동료니까 믿어야지’ 하는 마음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 뒤, 다른 손님에게 제품을 판매하다가
그 물건이 중고라는 걸 알게 됐다.
뒤늦게 알아도 소용없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언제 바뀐 건지
이미 지나간 시간 속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 매장에서
물건을 슬쩍 훔치다 내 눈에 들킨 적도 있었다.
들켰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훔치려던 물건을 내려놓고 그냥 나가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또 매장에 왔다.
그리고 또 훔쳐 갔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내가 화를 내면,
그들이 다시는 매장에 오지 않을까 봐.
그만큼 나는 장사에 서툴렀고,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냥.... 참았다.
‘그냥 내가 참으면 조용히 지나가겠지’ 하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마 좋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착한 얼굴을 한 바보였을 테니까.


장사를 하다 보면 참 이상한 일들이 많다.
같은 제품, 같은 일, 같은 가격인데도
어떤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나를 욕하며 떠난다.


며칠 전에는 한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도어록 설치 비용을 물어보기에
내가 늘 해오던 대로 설명해 드렸다.
2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한 내 가격.
그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그녀는 말했다.


“아휴, 사장님 너무하시네요. 떼돈 벌려고 하시네.”


그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가만히 있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그 말대로 ‘떼돈’이라도 벌어봤으면 싶었다.
오만 원에 떼돈이라니.
그녀가 생각한 내 가치는
도대체 얼마였던 걸까?


또 한 번은,
직접 도어록을 설치하려다 실패한 남자가 전화를 했다.
현관문구멍을 못 뚫겠다고.
나는 그가 원하는 일에 대해 가격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말한다.
“현관문구멍 하나 뚫는데 그렇게 비싸요?”


나는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말한다.
“그냥 와서 기계로 슝~ 하고 뚫으면 되잖아요.
사장님 너무 하시네요.”


그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서 말했다.

“손님이 그 슝~을 못 하셔서 저한테 전화하신 거 아닌가요?
저는 뚫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차에 장비 싣고, 시간 내서, 손님 댁에 방문드리는 겁니다.”


그러자 그는 마지막으로
“뭐라고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끔은 내가 미슐랭 파이브스타를 받은 음식점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정도가 되어도
모든 손님을 만족시킬 순 없을 텐데,
하물며 나라고 다르겠는가?


나는 모든 고객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보면
나 자신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악하게 보는 사람을
억지로 설득하고 싶지도 않고,
그들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하느냐고?
그건 또 아니다.
다만, 그들의 기준에 맞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만 일방적으로 손해 보거나
누군가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관계는
좋은 관계가 아니라, 거래일뿐이다.


그리고 나는
거래가 아닌 관계를 쌓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존중이 오가는 관계 말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럴 땐 차라리
나에게만 좋은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그게 내 주제에,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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