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기 위해 걷는다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운동장 한가운데, 작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주먹을 꽉 쥔 채,
그 옆에는 머리 하나쯤 더 큰 또래의 아이가 함께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두 아이는 멀리서 깃발을 들고 선 선생님을 바라본다.
잠시 후 깃발이 떨어지고, 두 아이는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작은 아이는 점점 앞서나갔다.
기쁜 마음에 결승선이 가까워지자
그는 폴짝폴짝 뛰며 환희를 표현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난하지 말고, 빨리 뛰어.”


순간,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지금까지 친구와의 시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반 전체의 기록경기였다.
함께 달린 친구보다는 빨랐지만,
그는 반에서 30명 중 23등이었다.


그날 이후, 내 기억 속 달리기는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달리기를 놓아버렸다.
더 이상은 달리지 않겠다고,
숨차고 창피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성인이 되고, 40대가 되어서는
달리기는 그저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숨이 차지 않는 삶이었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 뛰어야 할 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뛰어야 할 때,
나는 늘 숨이 턱에 차올랐고
그 헐떡이는 소리에 나의 나약함이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달리기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인생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이 나를 짓누르던 시기에
나는 마음의 틈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새벽 산행이었다.


말이 산행이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알람을 맞추고도 이불에서 벗어나기까지 10분,
거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는 데 10분.
마지못해 찬물 세수로 정신을 깨우고,
겨우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 앞 산 입구까지 도착했다.
그날의 목표는 30분 산행이었지만,
어두운 숲길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괜히 무섭게 들려
결국 몇백 미터만 걷고 되돌아왔다.


‘그래도 왕복 1km는 걸었으니 괜찮아’,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산행은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난 후,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엔 정말 해보자고.
매일 아침, 해가 뜨기도 전
슬리퍼를 운동화로 바꾸고
걷고, 또 걸었다.
겨울이 와도, 추위에 어깨를 웅크린 채 계속 걸었다.
숨이 찰 정도는 아니었지만
걸음 속에서 조금씩 살아나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두 해를 넘기는 동안
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산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매일 마주치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매일 산을 달린다.
산 초입에서 원을 그리며 숨을 고른 뒤
산 중턱을 지나 정상을 향해 달린다.
나는 늘 걷고, 그는 늘 달렸다.


가끔은 그를 보며
‘나도 달려볼까?’라는 마음이 스쳤다.
하지만 걷는 것도 벅찬 나에게 달리기란
여전히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무심코 산 중턱에서
나는 짧은 거리지만 달려보았다.
숨이 턱에 차올랐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숨참이 싫지 않았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그 뜨거운 숨결이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걷고, 달리는 것을 반복하며
정상에 도착했다.
수없이 올랐던 그 산 정상,
수없이 보아온 풍경이
그날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아,
달리는 눈으로 본 세상은
걷는 눈으로 본 세상과 전혀 달랐다.
달리는 동안 나는 앞만 보고 있었지만,
정상에서 멈추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안의 뜨거움이었다.
잊고 지냈던 생동감,
땀에 젖은 나 자신을 향한 인정.


나는 그때 처음 생각했다.
‘달리는 것도, 괜찮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여전히 걷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달린다.
짧은 거리라도 좋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뛰는 이유는
그저 숨이 차오를수록 살아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다.


나는 여전히 걷는다.
그러나 내가 걷는 이유는

다시 달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달리기 위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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