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의 너도
살다 보면
무언가를 ‘팔아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실제로 제품을 파는 사람이든,
마음을 파는 사람이든,
혹은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든.
우리는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보여주고, 감추고, 설득하며 살아간다.
그걸 사람들은 ‘영업’이라 하고,
조금 더 세련되게 말하면 ‘마케팅’이라 부른다.
며칠 전, 매장에 한 아주머니가 방문하셨다.
나는 늘 그렇듯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천천히 보세요.”
한참을 둘러보시던 아주머니가 물었다.
“이 제품은 얼마예요?”
“30만 원입니다.”
가격을 들은 아주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첫마디를 던지셨다.
“어머, 너무 비싸네요.
좀 깎아주세요.”
나는 미소로 방어했다.
“정말 저렴하게 드리는 거예요.”
그날의 대화는 마치,
익숙한 시나리오처럼 흘러갔다.
그녀의 2차 공격은 “에이, 물건은 깎는 맛에 사는 거지”였고,
나는 “요즘 다들 힘들잖아요. 남는 게 없어요”라고 방어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3차 공격은 거의 협박이었다.
“안 깎아주면, 나 그냥 갈 거예요.”
이쯤 되면 작은 눈싸움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필살기를 꺼냈다.
“그럼 깎는 대신,
서비스로 이거 챙겨드릴게요.
시중에선 4만 원은 해요.”
아주머니는 움찔했다.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분은 마케팅에 전문가였다.
그리고 던진 결정적 한 수
“그래도 깎아줘요.
나 부녀회장이에요.
우리 아파트가 오래돼서 고장 난 사람 많던데…
소개 많이 시켜드릴게요.”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자동 반복 모드로 돌입했다.
“부녀회장, 소개, 아파트…
부녀회장, 소개, 아파트…”
나는 결국
그 다정한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그럼… 조금 조정해 드릴게요.”
그리고 그녀의 묵직한 한 방.
“그 서비스 물건도 해 주시는 거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쯤 되면, 마케팅 대 마케팅의 대결에서
승자는 그녀가 분명했다.
아주머니가 떠난 뒤,
잠깐 매장 안이 조용해졌다.
그때 문득 현타가 왔다.
부녀회장이라는 말,
소개해준다는 말…
솔직히 익숙한 멘트였다.
경험상, 100명이 그 말을 하면
정말 소개를 해주는 건 한두 명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또 흔들렸을까?
그건 아마,
진짜로 소개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번의 성취를 쉽게 잊지 못한다.
그 한 번의 기대가,
매번 마음을 열게 만든다.
속을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은 속는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로 연결되는 일이 생긴다.
그 한 번이
모든 확률을 덮어버린다.
이쯤에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중한 연극 같은 것.
그리고 그 연극에는
거짓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애씀’이 더 많다는 것.
서비스로 내어주는 한 개의 제품 속에는
손익을 넘은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고,
“소개해드릴게요”라는 말속에는
살아가는 누군가의 여유가 스며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마케팅 중’이다.
자신을 알리고,
사람을 설득하고,
말을 예쁘게 포장하고,
때론 진심을 슬쩍 감추기도 한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그 안에 삶의 기술이 있고,
지혜가 있고,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는 유연함이 있다.
이 세상에서
진짜를 만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서로를 포장한다.
그 포장지 안에
진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하다.
속고, 속이며 살아간다는 건
결국은 믿어보고 싶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는
거래 속에서 사람을 보고,
사람 속에서 믿음을 사고파는
작은 마케터들 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마케팅 중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도 나를 믿고 있을 것이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기꺼이,
다시 한번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