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철학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연과 직접 맞닿는 일이 거의 없다.

옷과 신발,
그것들은 우리 몸을 보호해주지만
동시에 자연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장벽이기도 하다.

특히 ‘신발’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공손하고 정중한 단절이었을지도 모른다.


매미 소리가 리듬을 타듯 울려 퍼지고,
나는 그 소리와 흙냄새, 바람결에 잠시 멈춰 섰다.

그 순간,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순수했던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흙바닥은 내 운동장이었다.

맨발로 뛰놀던 그 시절의 나는, 흙과 가장 친한 아이였다.
그러나 세월은 그 우정을 망각하게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 친구를 찾아갔다.
그 친구의 이름은 맨발 걷기였다.


오랜만에 맨발로 흙바닥을 디딘 날,
나의 발바닥은 연두부였다.
그런 발바닥은 좁쌀만한 돌에도
매번 위기 신호를 보냈다.

나는 흙바닥 위의 지뢰 탐지견처럼 바닥을 스캔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 집중력은 거의 수능 직전의 고3 같았다.


맨발 걷기의 성지, 대모산.
그곳에는 이미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마치 뜨거운 항아리 속 모래를 맨손으로 단련한 소림사 승려처럼,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거침이 없었다.


반면 나는, 아기 걸음마 중인 맨발 신입이었다.
그들은 스쳐 지나가며 나에게 미소를 건네고,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나는 그 격려를 곁눈질로만 받았다.
왜냐고?
비 온 뒤라 흙 위엔 많은 지렁이들이 단체 나들이 중이었다.


신발을 벗고 흙을 처음 디뎠을 때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훅 올라왔다.


매미 소리가 리듬을 타듯 울려 퍼지고,
나는 그 소리와 흙냄새, 바람결에 잠시 멈춰 섰다.

순간,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모기에게 현실로 소환되었다.
자연인이 된 대가랄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축축한 흙 위를 살피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나는 느리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깊게 자연에 접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맨발 걷기에는 ‘결심’이 필요하다.
먼저 지금 내가 선 곳을 ‘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흙에 닿아 더러워질 발을 허용해야 하고,
거슬리는 돌에 아파와도 다시 내딛을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흙은 내가 잠시 빌려 쓰는 공간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연과 직접 맞닿는 일이 거의 없다.

옷과 신발,
그것들은 우리 몸을 보호해주지만
동시에 자연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장벽이기도 하다.


특히 ‘신발’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공손하고 정중한 단절이었을지도 모른다.

맨발 걷기로
삶의 결이 바뀐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발바닥이 왜 연두부가 되었을까?
그건 단지 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습관의 결과였다.


지금 나는, 작은 돌 하나를 피하려다
흙과 멀어지는 나 자신을 자주 목격한다.
간혹 날아온 벌레에 놀라
돌부리에 발을 찧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간절히 신발을 그리워한다.


물론,

첫날부터 흙길이 반겨줄리 만무하다.

첫술에 배부를순 없으니까.


인고와 반복,

그리고 몇번의 소심한 뒤뚱거림 끝에야

진짜 흙발이 될 것이다.

이제 나의 맨발 걷기는

철학이 되었다.

흙은 더이상 낮선 땅이 아니라

내가 돌아갈 자리이며,

자연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흙 위를, 자연속을,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나는 걷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봄을 3년 동안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