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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눈은 보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것도 눈을 통해서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 사물의 움직임과 색깔 등등 눈으로 보고 느낀다.
눈은 다양한 감정이 일으킨다.
눈꽃이 핀 산의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 하고 ,
상대방의 슬픈 얼굴을 보며 슬픈 감정을 일으킨다.
무서운 영화를 보고 공포를 느끼고,
갓난아기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눈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마음은 느낀다.
눈으로 보는 세상, 우리는 현실이라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보는 것은 눈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뇌는 축적된 경험을 마음에게 전달한다.
마음은 긍정과 부정을 판단해서 감정을 일으킨다.
기쁨, 슬픔, 분노, 환희, 좌절, 걱정, 즐거움, 편안함, 두려움, 외로움..... 등 섬세한 감정들은 모두 마음이 만든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는 감정은 마음이 결정한다.
평소 다니던 길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이유는 마음은 이미 사랑으로 결정 내렸기 때문이다.
눈은 무언가를 보는 능력이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을 가졌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거나 화장을 할 때 몇 분을 보지만 거의 대부분 다른 것을 본다.
눈은 다른 사람의 어떤 표정인지 알지만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의 자세히 보면 어색함을 느낀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눈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눈은 보는 능력이 주어졌으나 자신을 보는 능력은 마음에 있다.
자신을 보는 능력, 다시 말해 관찰하는 것은 일차원적으로 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마음은 감정을 일으키는 겉마음과 감정을 관찰하는 속마음이 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바로 감정을 일으키는 겉마음이다.
관찰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혜민스님의 책에도,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에도, 바딤 젤라는 드의 책에도, 웨인 다이어의 책에도, 마음에 관한 책에는 관찰자라는 말이 꼭 나온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마음을 보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미지의 영역은 대표적인 것이 상상이다.
자신이 현재 일어나지 않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을 상상이라 말한다.
상상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 관찰자가 되었을 때 상상은 일어난다.
그래서 상상은 내가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왓칭의 저자 김상훈은 바라보는 대로 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아니다.
자신의 속마음 달리 말해 관찰자로 보면 무엇이든 변한다고 한다.
저자는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는데도 허리 사이즈가 33인치 이상 되는 바지를 입었다.
주범은 똥배에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찌는 똥배는 의지만으로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는데 저자는 자신의 뱃살의 출렁이는 느낌이 들도록 빨리 걸었다
그리고 관찰자로 '내 배가 출렁거리면서 지방질이 다 빠져나가고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저자는 평소와 같은 운동으로 똥배가 들어가고 31인치인가 되었다.
하지만 똥배는 자신의 관찰이 허술해지면 슬금슬금 다시 나오려 한다고 말했다.
이는 관찰의 업무가 없어지면 다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의 경험이 그랬다.
일주일 전 다시 허리를 다쳐 운동을 하지 못했다.
조금씩 나아져 어제 다시 시작했는데 운동하려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평소와 같은 개수로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오늘은 운동하기 전 순간적으로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은 평소보다 적은 개수에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만들었다.
아주 잠깐 순간적으로 생각한 것이 마음이 몸을 지배했다.
우리가 컨디션이 좋다 나쁘다는 결국 마음이 결정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결국 자신은 마음의 노예가 된다.
우리가 새로운 일상을 바라지만 예전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자로서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 불안한 마음을 관찰하고 '나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자
그 순간 불안한 마음은 없어지고 평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관찰자가 되면 눈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마음과 눈이 하나가 되어 다른 무언가를 보게 되고 이루게 된다.
마음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는 말은 자신이 변했다는 말이다.
자신이 변하면 마음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게 한다.
오늘 컨디션을 정하는건 몸이 아닌 마음이다.
지금 보이는 것이 마음이 만든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