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봇

소설

by 시원시원

현실의 나


형제가 사라지자 사거리 자동차들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종이 위에 쏟아진 여러 가지 물감처럼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있을 수만을 없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다. 우선 일어난 문제에 대해 현실의 반응을 봐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인식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왼손을 들어보니 생각대로 되었다. 고개도 돌려보니 마찬가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똑바로 서기가 힘들었다. 발을 땅에 붙이려고 힘을 주었더니 몸이 쑥 땅으로 딸려갔다. 무중력 상태가 된 몸에 손으로 마구 저었다. 그러자 몸이 빙빙 돌았다. 영혼이라서 그런지 어지럽진 않았다. 휘휘 젓던 손을 멈추니 몸도 멈추었다. 천천히 손을 앞으로 저었다. 몸이 천천히 세워졌다. 힘겹게 중심을 잡았다. 한숨을 길게 쉬고 고개를 드니 내 시야에 한 남자가 보였다. 깜짝 놀랐다. 바로 몇 분 전 서있던 곳에 내 모습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재현하듯 그는 택시를 잡으려 하고 그의 뒤에선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난 그를 향해 소리쳤다.

"피해!"

내 말을 들었는지 그는 고개를 돌려 오토바이를 보고는 몸을 돌려 피한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오토바이를 보고 욕을 했다.

"운전 똑바로 못해!"

남자는 분이 안 풀렸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때마침 그에게 다가오는 택시를 잡고는 말한다.

"왕십리로 가주세요"

그는 택시에 타고 떠났다.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몸이 택시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엎어졌다. 택시의 뒷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새 내 몸은 택시 안에 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난 생각해야 했다. 무엇 때문에 내가 택시를 향해 날아갔는지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일정 거리를 지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에게 날아가는 것으로 보아 우리 둘 사이에 어떤 것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좌석에 앉아서 최대리를 탓하고 심부장 욕을 한다.

"최대리는 하필 이날 아프고 난리야"

"에이 짜증 나!"

"다 심부장 그놈 때문이야"

그의 옆에 사뿐히 앉았다. 그의 욕은 가는 내내 계속되었다. 불평이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 그는 나였다. 하지만 분리되어 보는 내 얼굴은 느낌이 달랐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 로봇 같다고나 할까?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그의 불만에 가득 차 있는 표정을 보니 한심스러웠다. 그의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택시 안은 그의 불만으로 가득 찼다.


오늘도 야근한 그가 집에 들어왔다. 딸이 그를 반겼다.

'아빠' 하며 안기려 하자 그가 말했다.

"아빠가 피곤하니 담에,,,"

딸은 머쓱해졌다. 이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아내가 한마디 한다.

"딸이 반가워서 그러는데 좀 받아주면 안 돼?"

그는 얼굴을 구기며 말한다.

"피곤하다고!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자식에게까지... 당신이 아빠야?"

아내의 말에 그는 분노의 감정이 휩싸인다.

"피곤하다고 했잖아"

"내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는데!!!"

아내는 그의 말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방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조금 다정하게 대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가족에게 왜 그래"

"제발 이제 좀 그만해"

"너 이것밖에 안된 인간이었냐"

문득 그가 행동하는 모든 것은 내 평소에 습관대로 한다는 종이의 말이 떠올랐다.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

"저게 내 평소 행동이라니..."

죽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아니길 바랬다. 그의 말에 상처 받은 딸이 걱정되었다.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그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심 부장일이 떠올랐는지 입에 문 칫솔을 던진다.

"심부장 다 그놈 탓이야"


그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심부장의 일로 화나는 것만 생각할 뿐이었다. 사실 그는 최고의 남편이라 생각했다. 결혼하고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 살았다고자부했다. 그 흔한 술자리도 잘 가지 않았다. 옆 부서의 박 과장은 매일 술을 먹는 것을 보며 나 정도면 가족에게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회사 동료들은 "과장님은 사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너무 가정적이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누구보다 더 가정적인 사람이라 확신했다. 최고의 아빠이자 남편이며, 가정에 충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며 난 절망했다.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니..., 제발 내가 아니길 바랬다. 내일 아침이면 원래대로 돌아가길 원했다. 이 모든 게 꿈이길...


그는 이불을 들고 아들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피곤한지 금세 코 고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고 있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나였을 때는 얼굴을 오랫동안 볼 기회가 없었다. 세수를 하고 잠깐 보거나 머리를 말릴 때 보는 게 다였다. 한동안 보고 있자니 얼굴 여기저기에 주름살이 보였다. 아직도 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었다. 인상도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심통난 얼굴이 자는 동안에도 고스란히 티가 났다. 어쩌자고 지금껏 그리 살았냐? 한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는지 얼굴이 살짝 움직였다.


그의 옆에 누워 종이가 한 말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무의식 속에 빠지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

낮에 몇 번을 그의 몸속에 들어가려 했으나 바로 튕겨져 나왔다. 무의식 상태란 자신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매일 밤에 무의식의 상태에 빠진다. 영화의 히어로처럼 하늘을 날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초능력과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을 다 경험할 수 있다. 물론 때때로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내가 원치 않은 무서운 일들을 겪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조차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인해 일어난다. 꿈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세계이다. 꿈은 사람들에게 있어 희망이다. 누구나 꿈을 꾸고 이루려 갈망한다.


나는 몸을 띄워 그와 겹치도록 누웠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함을 느끼는 순간 그의 몸안에 빨려 들어갔다. 회색 터널 속을 지나자 황량한 숲 속 한가운데 거대한 검은 늪에 빠져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늪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늪속에 풀들이 그의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자신의 메아리뿐이었다. 그는 허우적거렸고 몸은 점점 깊이 들어갔다. 그의 꿈속에 들어간 나는 어떻게 할지 몰랐다. 무의식 속에서만 그에게 행동을 주입할 수 있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이러다 그가 깨어날까 걱정이 되었다. 가위눌린 꿈은 대게는 한계에 부딪힐 때 잠에서 깬다.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화가 나서 옆에 있는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돌은 정확히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서 늪여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서둘러 나는 긴 장대를 찾았다. 하지만 주위에 온통 늪 천지라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돌이 내 옆에 있었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장대의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러자 내 옆에 긴장 대가 생겨났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기뻐할 새도 없이 긴 장대를 그에게 던졌다. 그는 그 장대를 잡고 늪을 빠져나왔다. 늪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눈 덮인 산 정상에 그가 서있었다. 여전히 그는 잠옷바람으로 추위에 떨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맨발에 눈이 뭉쳐 눈신발이 되었다. 푹푹 빠지는 탓에 그의 호흡이 빨라졌다. 어제의 일 때문일까? 그는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보다 못해 털부츠와 장갑 그리고 평소에 비싸 입어보지 못했던 명품 패딩을 상상했다. 그것들이 나오자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쳐다보며 원망을 가득 담아 외쳤다.

"도대체 제게 왜 그러시나요?"

"저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그는 물음을 건네 왔다. 지금이 기회란 걸 직감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명령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미치겠군, 생각을 떠오르지 않아"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의 모습이 희미해져 간다. 아마도 그가 잠에서 깨려는 모양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했다.

"매사에 불만 가득한 얼굴 너는 아니? 부탁인데 제발 네 얼굴 좀 바라"

말이 끝나자마자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긴다. 들어왔던 터널에서 나와 그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잠시 후 그가 깨어났다. 한동안 그는 침대 위에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한 채 앉아 있다. 그는 무언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몸속에 분리될 때 나를 잡아당기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들어올 때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지만 그의 분리되는 순간에는 물의 흐름 속에 누군가 억지로 만든 파동에 내 몸은 심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나를 가두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실체를 알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욕실에서 그는 거울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입을 벌려 이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누군가 지금 그의 행동을 본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 이유를 찾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영혼이다. 영혼은 현실세계에서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급해서 외친 주문하 나 때문에 그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는 자신을 알기 위해 자기 몸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일차원적이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는 욕실에서 무려 1시간 동안 자신을 관찰하고 나왔다. 아내는 1시간째 욕실에 들어가 있는 그가 걱정되었다. 몰래 문을 열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어제 일로 서먹했다. 그래서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나오자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한다. 식사를 하는 중간중간에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거실 앞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한다. 웃어도 보고 찡그리기도 했다. 그가 언제 멈출지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여 회사에서도 그러면 틀림없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심부장의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나 어때?"

그의 행동에 아내는 되물어 본다.

"뭐가?"

그는 조금 짜증 나는 투로 말했다.

"아니 지금 내 모습이 어떠냐고?"

아내는 갑자기 자신의 외모가 어떻냐고 물어보는 그를 보며 어제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냥 그래"

"오늘 당신 이상해"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고.."

그는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해도 상관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었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보고 있는 그에게 소리쳤다. 영혼이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영혼이 있다고 믿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는 이유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뭐랄까? 현실에 지쳐 영혼 따위는 관심이 없다. 분명히 나는 그의 영혼이다. 내가 소리친다고 그가 반응하진 않는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내가 소리칠 때 그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거울의 미세한 굴곡 현상 때문에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느낌이 그랬다. 영혼의 느낌은 현실과는 다르다. 영혼의 느낌은 사실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다음 행동을 보며 확신했다. 그는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었다. 나중엔 안 사실이지만 거울 속의 비친 그의 모습은 또 다른 그였다. 거울은 자신을 투영한다. 그래서 바라볼 수가 있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전달한다. 주로 느낌이나 감정으로 전달할 때도 있지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영혼이 되고 보니 눈으로 보이는 게 진실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는 여전히 여유 없는 출근은 한다. 아침을 거르고 정체되어있는 도로에 있다. 평소 같은 면 그의 차 안에는 불평, 불만의 목소리가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차 안에서도 자신의 모습은 보느라 불평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울을 보느라 다른 차에서 경적소리가 들려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앞으로 닥칠 일을 그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강하게 오는 무언가의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가장 모르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영혼이 되어보니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 습관들로 행동하는 그를 보며 주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심부장의 일만 해도 그렇다. 평소에 심부장의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심부장의 관심은 오로지 나만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내 생활을 철저히 감시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내 자리에 몰카가 있다고 생각해서 책상을 다 엎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심부장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심부장 근처에 가지 않았다.

구내식당에서 심부장을 보면 나가서 먹었다. 우연히 회사 앞 길에서 보면 골목으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에 있으면 계단으로 가고 , 화장실에 있으면 다른 층 화장실로 갔다. 심부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내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그는 심부장을 주시한다. 언제 나타날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점점 쌓여갔다. 그의 불안이 전해져 왔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 까지 심부장을 신경 쓸 거라고 생각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병에 가깝도록 신경을 쓰고 있었다. 심부장에 대한 피해의식이 그를 삼켜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회사에 처음 입사한 날


내가 대학에 졸업할 때 불황이었다. 많은 대기업은 인원을 감축해서 취직의 문을 열기란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서울대나 연고대 같은 유명대학 출신이 아니었다. 수백 장의 이력서와 면접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합격 이메일을 보았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기뻤지만 그보다 더 훨씬 감동스러운 무언가가 나를 휘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었다. 뿌듯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내 안에서 '수고했어'라는 말이 들렸다. 그것이 영혼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첫 출근하는 날 설레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8시 30분까지였지만 6시에 회사 앞에 서있었다. 아직 경비원 아저씨가 회사문을 열지 않아 그 앞에서 기다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흰 와이셔츠를 입고 한 손에 커피를 들며 출근하는 회사원을 동경했다.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어 나는 회사 앞에 서있다. 1시간이 흐르고 '드르륵' 소리를 내며 문이 열였다. 경비원 아저씨들은 회사원들이 통과하는 기계를 작동시키고 로비를 청소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움직였다. 지하철을 탈 때까지 그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일할 내 모습이 그려졌다. 한 발 한 발 회사 입구로 내디딜 때 내 안에서 '넌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이 들려왔다.


회사 1년 차에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롭고 도전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시키는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좀 더 발전적인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매번 틀에 박힌 규칙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들은 내 새로운 생각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착실히 규칙과 정형화가 된 서류가 필요했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통하기 때문이었다.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어느덧 나도 정형화된 회사 직원이 되었다. 회사의 규칙을 잘

따라야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기 때문이었다. 회사가 만든 사람으로 바뀌는 동안 내가 가진 나를 포기해야 했다. 열정, 생각, 의견, 질문은 수시로 검사를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선택조차 회사에서 알려주었다. 내 생각은 상사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상사가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야 했고 만족할만한 것들을 해야 했다.


마음은 늘 내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 "네가 과장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나를 버린 대가로 과장이 되었다. 승진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날아갈 뜻 기쁠 줄 알았다. 하지만 공허함이 찾아왔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마음이 다시 말했다. "잘했어, 이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야", 날 위로해 주는 건 역시 내 마음뿐이었다. 마음은 내가 무엇을 포기할 때에 "그만하면 잘한 거야" ,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오늘은 충분히 했어, 내일 해도 돼" , 상사에서 지적을 받을 때에 " 너의 능력을 아직 몰라서 그래" 라며 내 편을 들어준다.


과장이 되어 회사에 출근하던 날 마음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부장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아니 심부장이 아니더라도 상사가 있는 한 내 생각은 버려야 했다. 과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심부장의 생각을 따라야 했기때문이다. 게다가 부하직원들에게도 심부장의 생각을 따르게 해야 했다. 과장이 되면 그 동안의 고민은 다 해결될 거라 했던 마음의 거짓 위로가 믿음마저 잃게 만들었다. 내 마음조차 믿지 못하게 되자 무능한 상사이자 무능한 부하직원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심부장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신경 쓰였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그 불씨가 나에게 튈까 불안했다.


그는 지금 불안하다. 심부장이 문을 열고 자신을 향해 오기 때문이었다. 다가올수록 그의 심장이 요동친다. 눈을 다른 데로 돌려 보지만 다른 감각들은 심부장을 향해 있다. 오히려 보지 못해 더 불안한 생각이 휩싸인다. "그냥 지나가는 거야"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 불안한 생각은 그의 손에서 볼펜을 떨어뜨린다. 그러더니 볼펜을 줍는 척 책상 밑으로 몸은 숨긴다. 심부장은 그의 행동에 관심조차 없었다. 책상 밑에서 고개를 돌려 심부장이 멀어져 간 것을 보고 나서야 자리에 앉잤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니?" 한심했다. 하지만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볼펜을 만지작 거리며 자신의 고안해 낸 방법이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영혼이 되어 자존감이 사라진 그를 보며 실망스러웠다. 아니 미안했다. 그동안 어떻게 버텼을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자존감을 찾아주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혼도 감정이 있다. 아니 감정은 영혼의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영혼에게서 감정을 빼앗았다. 그 감정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영혼인 것처럼 사람들을 조정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영혼과 마음이 같다고 생각한다. 영혼은 외부에 있고 마음은 내부에 있다. 영혼은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지만 마음은 몸안에서 떠나지 못한다.

영혼의 감정은 불안함이 없다. 감정의 표현하는 데 있어 부끄럽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일어나는 감정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마음의 감정은 항상 불안감을 만든다. 사람들이 마음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마음은 이를 통해 감정을 소유한다.


새벽 기상을 명령하다.


일주일째 그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그의 반복된 행동만 볼뿐이었다. 내가 알아낸 것은 그가 깨어날 때에는 그의 곁에 붙어 다닌다는 것과 감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내린 명령은 일차원적으로 행동한다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아침에 바쁜 그는 차속에서 끼어드는 차들을 향해 욕설을 날리고 있었다. 일주일째 같은 곳에서 듣고 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음성이 나를 돌려세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회자는 질문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남자는 명료한 어투로 말한다.

"누구나 지금껏 자신의 습관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삶을 바꾸기 위해선 습관을 바꾸면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80% 이상에 새벽 기상을 합니다"

"그들은 새벽 기상을 통해 산책을 하거나 운동 또는 독서를 하죠"

"거기에서 하루를 여유와 함께 시작합니다"

"여유로운 일상을 그들은 매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출근 준비에 아침시간을 허비하고 계시진 않나요?"

"여유보다 조급함을 가지고 아침을 맞이 하진 않나요?"

"삶을 변화하고 싶다면 그들처럼 새벽 기상을 해보세요"


그는 라디오를 꺼버린다.

"어이없군, 새벽 기상이라니"

"잠잘 시간도 모자를 는데"

"환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저리 많다니"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군"

"직장인들의 고충을 당신이 알기나 해?"

부아가 치밀어 오른 그는 입에서 거친 말들을 쏟아낸다.

"오늘따라 차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직장인 빼고는 아침에 차를 갖고 나오지 말라고!!!"


이 주일째다. 좋은 소리도 매번 들으면 질린다. 하물며 욕설과 사회를 비판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막대기로 때리는 항아리 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새벽 시상이란 말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그를 보며 눈이 번쩍 띄었다.

"새벽 기상이라..."

"새벽 기상이란 말이지"

"그래 , 오늘 한번 해보지 뭐."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여전히 차 안에는 그의 짜증이 진동이 되어 나를 감쌌다.


드디어 기다리던 밤이 되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보았다.

베개에 머리를 올려놓으면 자는데 오늘따라 이리저리 뒤척인다.

그의 행동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옆에서 나는 이제 그만 잠들라며 손을 모아 그를 향해 뻗었다.

내가 바라는 열망이 강할수록 점점 그의 의식은 선명해졌다.

이윽고 눈의 뜨고 방을 불을 밝혔다.

"잠이 안 오네"

"피곤해 죽겠는데"

한숨을 깊게 쉬고 휴대폰을 집어 든다.

그리고 평소에 자주 보던 스포츠를 뉴스를 검색한다.

그런 그를 보니 정말 세상일이 내 맘 같지 않다.

세상은 무언가 강렬하게 원하면 그것이 오히려 반대로 작용을 해서 무력감을 가져오게 한다.

그 무력감을 벗어나야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절실히 원한다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어쩌면 성공한 사람들이 책에서 미디어에서 강연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말 중에서 한 가지를 말하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내이다. 끊임없이 원하면서 오는 실패의 인내다. 성공은 쓰디쓴 인내의 나무의 열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공의 달콤함만을 바란다. 쓰디쓴 인내의 맛을 보길 원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그가 잠을 설치는 것도 오늘 하루 종일 내가 생각한 새벽 기상에 대한 의식 때문 일 것이다. 더 이상 그가 잠들기를 바라지 않았다.

내 의식이 그에게서 멀어지려 할 때 그는 연신 하품을 한다. 눈을 비비고 휴대폰을 침대 바닥에 내려놓더니 불을 껐다. 베개에 머리를 닿자마자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차 안에서 들었던 새벽 기상을 그에게 주입하기 위해 그의 몸안으로 나를 집어넣었다.

그의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 새벽 기상을 주입시켰다.

이튿날 그가 깨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나는 튕겨져 나왔다. 매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익숙하지 않았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갑자기 의식의 세계로 접어들면 블랙홀 같은 외부 의식이 나를 잡아당겼다.

그때마다 내 모습은 연기처럼 흩어지다가 돌아온다.

새벽 5시 그는 멍하니 침대 위에 앉아 있다. 몸을 숙여 바닥에 놓아있던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5시 15분 그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그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하지만 새벽 기상의 명령을 이길순 없다.

그렇게 그는 몇 번을 누웠다 일어났다는 반복 했다. 머리를 두 손으로 휘감았다. 머리카락들이 제멋대로 자유분방해졌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문을 바라보는 그가 침대 밑에 양발을 놓았다. 양발을 딛고 서서 방문 손잡이를 돌려 거실로 나왔다. 거실도 어둠이 짙게 깔려있어 그는 먼저 불을 켰다. 갑자기 환해진 불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잔뜩 지푸렸다. 구겨진 종이 마냥 얼굴의 주름이 선명하다. 그는 소파에 몸에 일부를 가져다 놓았다. 소파에 앉자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난 답답했다. 내가 상상하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아침에 오늘 업무를 정리하거나 하는 것을 바라진 않았다. 그저 출근시간만큼을 앞당겨 아침부터 그의 짜증 난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평소와 같은 출근을 했다. 변함없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나는 절망에 빠졌다. 솔직히 새벽 기상이란 말을 들었을 때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절망이 될 줄이야 나는 상 상초 차 하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그의 새벽 기상을 계속되었지만 특별히 변화된 것은 없었다. 아니 일찍 일어난 탓에 회사에서 연신 졸았다. 그 때문에 심부장의 심기를 건드려 그는 불편한 회사생활을 하였다.


내가 행운의 사람을 만난 건 일주일 내내 그가 새벽 기상을 했을 때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고 그는 일주일 내내 새벽 기상을 한터라 일요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에게 지금이 기회였다. 새벽 기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주일 내내 고민을 거듭한 결과 방법은 하나였다.

바로 책, 책 속에 답이 있다. 선인들이 말하지 않던가? 책 속에 답이 있다. 어렴풋이 떠오른 말에 그가 잠든 사이 서점으로 달려갔다. 영혼이 편한 것은 생각만으로도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눈 깜작할 사이에 말이다. 우리가 꿈을 꾸면 여기 이동을 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세계로 가는 것과 같다.

서점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마치 다른 세계인 것 같았다. 그들의 곁에는 꽃씨 모양의 밝은 것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이 바로 영감이었다.

우선 새벽 기상이란 책을 찾아야 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새벽 기상을 내용을 담은 책을 발견했다. 하지만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 수 없었다. 물리적인 물체를 영혼인 나는 볼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이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다. 난 누군가가 이 책을 집어 들어 책을 보아야지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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