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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Apr 21. 2021

[서평] 회복 탄력성 -대화식

저자 김주환

출처 시원시원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대화식 서평입니다.

등장인물 

김주환, 시원시원


행복을 조건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만족감이다. 어떤 행위나 감정에 만족감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만족감은 사람마다 틀리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여도 누군가는 만족을 하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는 불만족을 느낀다. 회복탄력성은 만족감을 주는 마음 근력의 힘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힘을 통해 자기만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저자 김주환은 회복탄력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떨어져 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된다."


그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추락한 사람만이, 바닥을 본 사람만이  날아오를 힘이 생긴다"

"글쎄?,  정말?"


나의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바닥을 봐야 했다.  그런데 바닥을 보려면 어떠해야지?라는 물음이 다가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생의 바닥은 무일푼인 상태를 말한다.  무일푼이라....

갑자기 눈앞이 깜깜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바닥을 경험하고 싶진 않다.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적당히 가졌고 내 삶에 만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족이 가득하진 않다. 때론 만족도  때론 불만족도 하면서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나처럼 대부분은 평범한 생활을 한다. 자기 계발서를 보다 보면 대부분 시련과 역경을 해치고 자수성가를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썼다.  성공하려면 그들처럼 나도 시련과 역경을 해치고 가야 한단 말인가?  이 물음이 답은 " 절대 그렇고 싶지 않다."  아니 , 그렇게까지 해서 성공하고 싶지 않다.  그냥 적당히 불만족하면서 살리라.  물론 극단적으로 생각이다.  그의 바닥이 날아오를 힘이란 말에 발끈했다.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마음이 묻는다.


"내 바닥은 언제일까?


내가 생각하는 바닥은 아마 재작년이다.  아주 더운 여름날 지치고 짜증이 겹칠 때 아내의 말 한마디였다.


"당신 왜 하루살이처럼 살아?"


지금도 이따금 생각나는 말이다.  이 말이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건 남 탓과 환경 탓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성장하지 못하고 반복된 생활을 하는 나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다.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냈지만 지금의 내가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매일 산행과 운동을 하면서 점점 나를 성장하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준 아내가 고맙다.  하루살이처럼 열심히만 살면 다 될 줄 알았던 지난날, 누군가는 열심히만 살면 모든 것이 다 잘된다는 말은 나에게 있어 큰 게으름과 같다. 


우리는 열심히 산다.  누가 더 열심히 사는지 판단할 수없다. 빌 게이츠도 워런 버핏도 나도 백수도 다들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사는 것에 차이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사는 것이 초라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바닥을 애써 무시해서이다.


나 역시 마음속에서 일렁거리는 말들을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뎌져서 무시하다 보니 정작 자신 탓을 하고 환경 탓을 했다.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 마음의 짐을 하나하나 쌓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의 말에 쓰나미처럼 물 믿듯이 밀려와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에는 공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게다가 미래의 불확실한 내 모습을 생각하니 암울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잘 살고 있나?"

"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가 사는 삶은 바람직한 건가?"

"이 삶이 내게 최선일까?"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되지?"

"이렇게 늙어 가야 되는 거야?"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 아닌 거야?"


수많은 질문에 어느 하나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지금이 내 바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 바닥은 수시로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애써 무시해버렸기에 몰랐다.  바닥을 보기 위해 인생의 절망까지 느낄 필요는 없다.  단지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바닥이다. 


조앤 롤링처럼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이상묵 교수의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같은 바닥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2년 전 바닥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자 김주환 작가가 말한 마음의 근력인 회복탄력성에 의해서다.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을까?


김주환 작가는 말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보다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기억하는 자아'가 필요하죠"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고민거리 난 어려운 일들을 순간순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해 뇌가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긍정적인 습관이군요"

"좋지 않은 일이지만 거기서 밀려오는 부정의 생각 속에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지겠네요"


김주환 작가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을 뇌에 새기는 습관입니다."


나는 말했다.


"행복을 뇌에 새기는 습관"

"멋진 말이군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삶에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런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자기 이해 지능의 무엇일까요?


나는  답했다.


"자기 이해 지능이요?"

"말 그대로 보자면  자기를 이해하는 생각이 아닐는지요?"


그는 말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자신의 배려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의식이 생기는 것이며 자아 개념의 근본은 타인의 시선을 느끼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기 이해 지능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바로 감정의 조절 능력입니다"

"결국 자기 이해 지능은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과 자신의 감정 사태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나는 물었다.


"회복탄력성은 자기 조절 능력이겠네요"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작가님이 회복탄력성이 마음의 근력이라고 말했던 의미를 요"

"그렇다면 자기 조절 능력을 높이기 이해선 자기 이해 지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네요"


그는 말했다.


"회복탄력성이 자기 조절 능력이라 보기 어렵습니다만 그것을 이루는 요소임은 맞습니다"

"자기 조절 능력의 가반이 바로 자기 이해 지능이고 높은 수준의 자기 이해 지능은 감정 조절력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다시 할 수 있는 힘도 결국 마음에서 생기는 힘이기 때문에 감정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라도 자기 이해 지능이 없다면 금방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말했다.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자기 조절 능력으로 감정의 컨트롤이 생겨도 명확한 잣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 잣대가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긍정성이 아닐는지요?"


그는 말했다.


"긍정성을 가져오는 것은 감정조절 능력입니다"

"많은 책에서 긍정을 중시하는 이유는 사람을 보다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착한 콤플렉스가 생겨나죠"

"긍정성은 자기 조절 능력뿐만 아니라 회복탄력성의 두 번째 요소인 대인관계 능력도 향상해줍니다"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얼마나 동일시하는가를 판단하는 대인관계 능력을 긍정성이 확장된 자아 개념을 유발해 향상합니다."


나는 말했다.


"대인관계 능력도 좋지만 우선 내가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행복해야 상대에게도 따뜻한 말과 눈빛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는지요"

"기분이 몹시 상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긴 어렵다고 봅니다"


그는 말했다.


"당연한 말입니다"

"보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하고 긍정적 감정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대인관계 능력을 향상하고 회복탄력성도 높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자기 계발서 책에서 긍정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자기 행복에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기 행복이 먼저군요"

"제가 생각하는 자기 행복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 때 말이죠"

"하지만 안타까운 건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통제 속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잃어갑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긍정보다는 부정에 감정을 맡기며 살아갑니다"

"그렇다 보니 소소한 행복이라는 터울 속에서 작은 것에 기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합니다"

"저 역시 그러하고요"

"소소한 행복도 행복이라며 나를 위안하고 위로하면서요"

"하지만 그것에 한계를 느낍니다"

"자율성이 없는 내 모습이 점점 커지며 소소한 행복마저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한다.


"자율성이 행복을 가져오는 건 맞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자기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어야 인간은 흥미를 느끼며 강요된 것,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압박을 느끼는 순간 그것에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자기가 좋아서 취미로 하는 일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무리 사회 통제 속에서도 자신만의 자율성은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바빠서 힘들어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평생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자율성이란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지 타인이 사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에 오르는데,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나의 삶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두기는 하되 내딛는 발걸음을 하나하나를 즐기면, 즉 과정을 즐기면 힘들지 않고 정상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성공의 결과'라기보다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행복해진다기보다. 행복해져야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나는 말했다.


"저는 회복탄력성이란 자신이 다시 할 수 있는 힘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습관을 들이거나 일을 할 때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  그러니깐 며칠 동안 그것들을 안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인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요즘 일 년 동안 써오던 서평을 한 달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해야 돼 하면서 어느덧 숙제처럼 느껴지더군요"

"서평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말을 들으니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목표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과정이 고통스럽고 행복하지 않았었던 거였습니다."

"이제야 이유를 아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네요"

"감사합니다"


그는 말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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