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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바위가 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은 바위에 틈을 만들고 자신만의 물길을 만든다. 그리고 결국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바위는 물길에 의해 갈라진다. 생각은 바위다. 우리는 경험으로 고정된 생각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가 알고 지낸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이 있는지 말이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변하지 않는 모습 그대로 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사람 참 안 변한다." 이런 모습은 고정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고정된 생각은 우리의 변화를 감시한다. 혹여 다른 생각을 갖더라도 이내 주위 사람을 보여주며 말한다. "너 답게 살아"
독서를 시작할 때는 어김없이 고정된 생각의 방해가 들어온다. 먼저 독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야 하는데 고정된 생각은 나중에 라는 시간을 독려해 독서의 생각을 사라지게 만든다. 고정된 생각이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된 생각은 다른 준비도 한다. 바로 독서를 하기 위한 준비이다. 마치 독서를 위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고정된 생각이 그럴 일은 없다. 자 생각해 보자. 독서를 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준비를 말이다. 먼저 읽을 책을 고른다. 어쩌면 책을 고르는 시간이 독서의 시간보다 길지 모른다. 이리저리 책들을 뒤진다. 읽은 책이 없다고 하면 고정된 생각이 바라는 대로 오늘 독서는 없다. 그러나 다행히 독서할 책을 찾았다. 책을 책상에 가져다 놓고 의자에 앉자 읽은 준비를 한다. 때마침 입이 심심하다. 그래서 입에 넣을 간신을 준비하러 부엌으로 간다. 잠시 뒤 한 접시 가득 과자와 과일을 책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독서하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책을 펼치고 읽기만 하면 된다. 이제 더 이상 고정된 생각의 방해는 없다는 착각에 빠진다. 입에 과자를 오물거리며 책을 펼치고 머리말을 읽는다. 순식간에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간다. 하지만 이상하다.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여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입으로는 과자의 맛을 느끼고 머리의 생각은 딴생각으로 넘처난다. 그러다 보니 책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슬슬 수면 기능이 나타나자 글자가 점점 흐려지며 눈을 연신 깜박인다. 그 순간 입에서는 하품이 밀려온다. 마침내 책은 베개가 되고 침 받침대가 되었다. 우리의 독서는 꿈나라와 함께였다.
나는 나의 관종 덕분에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습관 고치는 강의를 들었다. 거기에서 지정해준 책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적는 과제가 있었다.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그날 9시간 동안 책과 서평을 썼다. 서평의 형식은 늘 보아 오던 식으로 마음에 드는 내용에 내 생각을 적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제를 빨리 끝낼 요량으로 아무 생각 없이 막 썼던 것 같았다. 과제란에 서평을 올리고 나니 같은 팀원들이 댓글을 써주었다. "벌써 과제를 다하시다니 부럽네요" "정리가 잘 된 서평이네요"라는 식이었다. 솔직히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예의상 해주는 멘트였다는 사실을 안다. 그 당시 내 서평은 내가 읽어도 정말 따분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주의 과제를 강사가 평가를 해준다. 주로 잘 쓴 사람을 보여주는데 난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매일 일기를 쓰기도 하는데 우리 조에서 나만 빼고 읽어준 적이 있었다. 소외된 느낌이 들어 화가 났다. 그 당시 나는 고정된 생각으로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에 강의 내내 짜증이 났다. 그래서 강의를 가지 않겠다고 마음도 먹었었다. 한주가 지나고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역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거였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처럼 쓰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관심도 못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하다 며칠 전부터 일기에 가상의 나를 만들어 쓰던 것이 생각났다. 가령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니?"라고 물어보면 "오늘은 길을 가는데 아는 사람을 보았어" "기분이 어땠어?라고 묻고 답하는 식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거다"라는 생각에 가상의 나를 만들어 나와 책에 대해 대화를 하는 식의 서평을 적었다. 서평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적는 거라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대화식인 나만의 서평을 만들었다. 처음 본 서평 형식에 읽은 사람들은 다른 서평들 보다 보기 편하고 재미있다 하였다. 물론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의 관종을 발산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 덕에 독서에 취미를 붙이고 블로그에 대화식 서평을 만들게 되었다.
독서는 고정된 생각에 틈을 만든다. 그리고 영감이라는 물길을 만들어 생각의 변화를 일으킨다. 아무리 단단한 무쇠 같은 생각일지라도 한번 발생된 영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고정된 생각이 독서로 틈이 생기자 내 목표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화식 서평을 보고 출판사에서 서평 의뢰가 들어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내친김에 두 번째 목표는 저자가 직접 나에게 연락해 오는 것을 두 번째 목표로 삼았다. 한 달 남짓 대화식 서평을 올리자 미래지향 출판사에서 "학교 당연함을 버리다"라는 책의 서평 의뢰가 들어왔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목표를 달성했다. 두 번째 목표는 첫 번째 목표보다 20일 먼저 이루웠다. "왜 나만 착하게 살아야 해"의 저자 김승환 작가가 직접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었다. 한 달 반뒤에는 베스트셀러 "해빙"의 저자 홍주연 작가도 연락을 해주었으며 나의 서평을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주기까지 하였다. '해빙'은 나에게 특별한 책이다. 작가가 직접 연락해준 것도 있었지만 그 책을 통해서 내 공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겨우 두서너 사람이 앉아 있을 정도로 매장 입구부터 꽉 들어찬 물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여기만 오면 숨이 막힐 것 같아". 하지만 물건이 많아야 장사가 잘된다는 옛말에 나는 매장에 공간을 비워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해빙을 읽고 나서 바로 그날 19년 동안 방치된 매장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장 밖에는 19년 동안 쌓아둔 유행이 지난 물건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장님들이 한결같이 이사하냐고 물었다. 100리터 쓰레기봉투로 10개는 넘게 버리고 나서야 6평 남짓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간의 마법인지 매장이 넓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 공간에 50대에 목표를 삼았던 북카페를 만들었다. 북카페가 별 거랴... 커피머신을 놓아두고 그동안 읽던 책들을 진열해 놓았다. 각종 소품들도 사와 꾸미기 시작했다. 얼추 매장이 북카페의 느낌이 들자 주변 사장님들은 "진작 하지 그랬어"라고 말했다. 특별할 것 없는 매장이 특별한 매장이 된 순간이었다. 한 번이라도 매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도록 북카페처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가다 매장에 들어오던 손님이 다시 밖으로 나가 간판을 보고 들어온다.
내가 어른의 사춘기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정된 생각으로부터 멀어진 건 독서 때문이다. 독서가 고정된 생각의 틈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나는 물건들이 꽉 차 있는 매장에서 감정의 노예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의 에머슨의 말처럼 독서로 나는 고정된 생각의 틈이 인생의 길이란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