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꾸준히 수영을 나가고 벌써 3월이 되었다. 문득 돌아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결심처럼 매일 새벽수영을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너무 몸이 아프고 지쳐 쓰러지듯 집에 돌아와 바로 잠에 빠져든 날도 며칠이 있었다.
다니는 수영장이 금/토요일에만 오리발을 쓸 수 있어서, 이번 주는 오랜만에 4년 전쯤 사두었다 한번 쓰고 묵혀두었던 오리발을 꺼내들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금 토요일에만 오리발이 허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용자가 적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널널한 수영장 한 레인을 할애하여 아예 오리발 전용 레인을 운영한다. 발이 워낙 작은 편이라, 아주 예전에 강습을 받을 때 수영장에 비치된 오리발을 쓰려하니 발을 한번 차면 오리발이 자꾸만 벗겨져 여간 난감했던게 아니었다. 한번 그러고나서 바로 인터넷에서 3만원 주고 오리발을 샀다.
그러다 오랜 암흑기(?)와 이런저런 일들로 한동안 수영을 못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세월을 거슬러 만나게 된 오리발...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암튼 서랍 구석에 있는 오리발을 오랜만에 집어들었다.
아무도 없는 FIN 전용 레인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하려 했으나 오리발을 끼고 나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에서 걸을 때도 힘들었다. 그러나 오리발의 진가는 걸을 때는 드러나지 않는 법. 물에 들어가 벽을 빵 차고 잠영을 해 물속으로 출발하는 그 순간 평소와는 다른 감각이 온몸을 관통했다.
수영을 할 때 배영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은 수영장 바닥을 보게된다. 그런데 평소 바닥 타일이 지나가는 속도와, 오리발을 장착하고 보는 바닥 타일이 스쳐가는 속도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걸어가면서 풍경을 볼 때 주변 사물들이 지나치는 속도와, 차를 타고 갈 때의 사물들이 지나치는 속도가 다른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잠영을 할 때는 거의 바닥에 코가 닿을 정도로 깊게 들어가다보니, 오직 내 숨소리와 오리발이 물을 가르는 소리만이 들린다. 참고로 물속에서는 미각이나 후각을 느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와 입을 열어야 하는데 그랬다간 호흡기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더이상 수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각으로는 바닥 타일이 스쳐가는 속도와 반대편까지 남은 거리, 청각으로는 물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내 숨소리, 촉각으로는 물이 피부를 스쳐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숨을 쉴때는 느낄 수 없는 감각들이다. 그래서 오래오래 잠영을 하고 싶어서 숨을 참고, 좀더 빠르게 물개처럼 헤엄을 쳐 보았다. 그러자 25m 전체를 잠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와우! 게다가 잠영으로 가면 일반 영법으로 가는것보다 속도와 에너지 면에서도 효율이 높다.
평소와는 다른 감각들에다 속도감이 더해지니, 스릴과 짜릿함이 온 몸을 타고 전율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물속에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속도가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해져서 이를 계산해 보았다.
25m 레인을 전 속력으로 내질렀을 때 20초가 걸렸다. 일반 영법으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갔을 때 약 40초정도 걸리는데 그럼 약 2배 빠르다고 할 수 있다.
거리=시간*속력이고 그럼 속력=거리/시간이다. 25(m)/20(sec)=약 1.5m/s의 속도가 나온다.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 속도와 비교해 보자. 인간이 쉬지 않고 1시간을 걸으면 약 4km를 갈 수 있다. 이를 m로 환산하면 4000m이고, 4000/60을 하면 1분에 약 66.7m를 간다고 하자. 그렇다면 66.7/60을 하면 약 1.11m/s의 속도가 도출된다.
즉 보통~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이다. 아주 가볍게 러닝을 하는 정도일까? 사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물속이라 그런가 아주 빠르게 느껴지고, 물을 가르는 감각 때문에 더욱 스릴있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속에서만, 오리발을 장착하고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속도감에 이미 중독되어버린 느낌이다.
월요일부터는 다시 나의 신체로만 수영을 해야 한다. 50m 풀을 가기가 무서운게 뒷사람에게 피해가 될까봐. 건장한 성인 남성들과 같은 레인을 쓰는 게 좀 부담스럽다. 이성이어서가 아니라 어쨌든 남들과 함께 레인을 돌 때는 속도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해 키도, 손도, 발도 한참은 작기 때문에 속도가 팍팍 안 나와 주는 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25m로 타협을 보고 있는데 또 25m는 약간 덜 만족스러운 느낌이다. 만약 오리발을 달고 50m 레인을 갈 수 있다면 이 기분을 더욱 오래오래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수영장 운영 정책 상 50m는 안된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3만원짜리 오리발이라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수영에 새로운 재미를 더해준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서 수영을 할 때 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하여튼 평소와는 다른 감각을 느끼게 해준 오리발에게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는 좀 다른 의미에서 금요일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