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해외 생활을 꿈꾸며 혹은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지 않은 고민을 할 것이다. 해외 살이를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만큼 투자한 비용만큼의 경험을 쌓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해외에 나가면 좋을까?
우선 무작정 해외로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라는 사람은, 해외에 가기만 하면 영어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향상될 거라 믿는 사람과 해외 생활이 한국과 전혀 다른, 이상적인 생활이 될 거라 기대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로, 드라마틱하게 향상되는 영어 실력은 당연하지만 미국 땅만 밟았다 해서 영어가 갑자기 트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영어를 많이 사용할 환경에 노출되는 것은 맞지만,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우리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기까지 아기 때부터 몇 년이 걸렸다는 걸 명심하자. 매일 새로운 표현을 공부하고 사용해야 그것이 점차 내 입에 자리 잡는다.
두 번째로, 막연한 해외 생활에 동경이 있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해외 생활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 K-드라마를 보면 현실과 똑같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유정 선배 같은 사람은 드물고, 드라마 속 설렘 가득한 만남들도 거의 없다. 외국인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똑같은 상황을 기대하고 온다면, 그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해외에서 제일 많이 느낀 것은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어디든 힘든 상황과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 상황들을 아무 연고 없는 타지에서 타국어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막연하게 해외에서 내 삶이 180도 달라질 거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생각이라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해외에 나가길 추천하는 이유는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생존을 위해 매일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 직장에서든 일상에서든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은 내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 매일 아침 공부한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환경은 그야말로 영어 공부에 최적화된 상황이다. 물론 자신이 얼마나 공부하고, 얼마나 써먹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환경을 잘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또 해외 생활을 통해 깨닫는 것은, 내가 얼마나 작은 세상에 살고 있었는가이다. 지구라는 넓은 땅덩어리에는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선 더더욱 한정적인 만남들뿐이다. 해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처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뉴욕에서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해외 생활을 하면서 나이에 대한 압박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특히 나이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올려치기가 심하다. 20살이 되면 벌써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20대 중반이 되면 더는 학생이 아니니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번듯한 직장을 잡고 사회생활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30살이 되면 탄탄한 경력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듣는다. 각 나이마다 마치 스케줄처럼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전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하지만 뉴욕에서 만난 Marbin이라는 30대 중반의 신입 직원은 그 생각을 바꿔주었다. 주방일이 처음이라 서툴렀던 그는 늘 열정 가득, 웃음 가득했다. 이전에는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자신의 꿈을 찾아 주방에 들어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툴더라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매일이 즐겁고, 매일이 배움이라는 그의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를 보며 늦은 나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려워졌는지, 그 이유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주변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진정으로 하고픈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찾으며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해외 생활을 100% 즐길 수 있는 작은 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타지라 외로워 한국인 커뮤니티가 그리울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좋은 기회는 없다. 미국은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나라다. 길을 걷다가, 카페에 갔다가, 혹은 직장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다. 'Meetup'과 같은 사이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과 언어교환을 할 수 있는 모임도 있다. 밖으로 나가서 많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보자.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대화에 있어 겁내지 말자. 우리는 그곳에서 외국인이다. 말이 서툰 외국인을 모질게 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툴러도 당당히 말을 걸어보자. 말을 할수록 자신감이 붙고, 그 자신감은 더 많은 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서툴다고 고민하지 말고, 더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네면 상대방도 웃으며 답해줄 것이다!
결국, 인생에 정답은 없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픈 것을 하다 보면 나만의 종착지를 발견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지쳐 해외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괜찮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듯, 그곳에서의 생활이 마냥 천국 같진 않을 거란 사실만 알고 갔으면 한다. 그래도 가고자 한다면, 해외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가서 무얼 하면 좋을지 정도는 생각해봤으면 한다. "할지 말지 고민될 땐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반대이다. 할지, 말지 고민될 땐 일단 해봐라! 후회는 하고 하는 것이 더 낫다. 해외 여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욱 용기를 얻어갔으면 한다. 망설임 끝에 떠나는 여정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