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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ug 30. 2024

한 여름날 센트럴파크에서의 낮잠

[뉴욕 지역 소개 시리즈] 센트럴 파크 100% 즐기기

여행과 해외 생활의 묘미는 그 나라의 계절을 온전히 경험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뉴욕은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도시이다. 봄이 오면 거리마다 꽃들이 만개하고, 여름엔 뜨거운 햇빛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을 즐기며 등산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매서운 칼바람 속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된다.

뉴욕의 여름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습하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의 여름은 한국보다 훨씬 건조해서, 그늘 아래에 있으면 견딜 만하고, 맑고 푸른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다. 가끔 소나기가 내리긴 하지만, 한국처럼 몇 주씩 내리진 않는다.


사실, 여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내가 뉴욕에서 여름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센트럴 파크 때문이다. 맨해튼의 한가운데 위치한 이 거대한 공원은 그 규모에 있어 놀라움을 준다. 센트럴 파크의 넓이는 약 100만 평으로, 이는 한국 올림픽 공원의 두 배 정도이며, 여의도보다도 넓다. 빌딩 숲 사이로 들어서면 어느새 초록빛 나무와 잔디가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미국의 광활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센트럴 파크의 설계자는 “이곳을 만들지 않으면, 나중엔 이만한 크기의 정신 병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도심에서 자연으로의 ‘최단 시간 탈출’을 모토로 삼아 설계된 이 공원은 도시 속 자연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공원은 자연과 어우러져 있으며, 동물원, 아이스링크, 야구장, 농구장 등 다양한 운동 시설을 갖추고 있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이 도심 속 숲은 바쁜 뉴욕 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직장에서 가까운 센트럴 파크의 57번가 근방은 내가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였다. 베이글이나 빵을 사서 공원에 들어가 그늘진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돗자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으면 그냥 잔디에 앉아 빵과 커피를 즐기고, 때로는 책을 읽고, 시간이 남으면 낮잠을 자기도 했다. 짧은 낮잠 후 개운해진 몸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다. 특히 여름에는 센트럴 파크의 초록빛이 더욱 짙어져, 파크에서의 낮잠이 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내가 가장 자주 찾던 낮잠 장소는 sheep meadow였다. 센트럴 파크를 떠올리면 대부분 이곳을 생각할 것이다. 탁 트인 넓은 대지 앞에 빌딩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풍경은 그야말로 뉴욕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다. 수영복을 입고 선텐을 즐기는 사람들, 누워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빌딩들은 이곳이 뉴욕의 한복판임을 상기시켜 준다.


센트럴 파크에는 sheep meadow 외에도 방문할 만한 장소들이 많다. 우선, 베네스다 분수. 분수 중앙에 위치한 '물의 천사' 동상은 센트럴 파크의 상징물로, 수많은 영화와 TV 쇼의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근처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수 옆에 있는 큰 연못에서는 보트를 대여해 탈 수 있는데, 물 위를 떠다니는 보트들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보트 대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며, 시간당 25달러에 최대 4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베네스다 분수 주변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에서 다양한 뮤지션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나무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에 발길이 멈추게 된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같은 악기들이 어우러져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재즈 선율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공원 전체를 감싸고, 그 속에서 연주자들은 마치 조명을 받은 무대 위에 있는 듯하다. 


그들의 연주는 뉴욕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만들며, 마치 고풍스러운 재즈바에서 한 잔의 칵테일을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에서는 눈을 감고 음악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평온함에 빠져든다. 뉴욕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이 낯선 순간은 그 어떤 재즈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 색소폰을 연주하는 할아버지 등 다양한 버스킹 공연들이 공원 전체에 펼쳐져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센트럴 파크에는 다양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좋지만,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걷다 보면 공원 곳곳에 숨겨진 장소들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청설모들도 뉴욕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좋은 장소에 좋은 음식이 빠질 수 없지. 센트럴 파크에서의 하루를 더 맛있게 채워줄 맛집도 추천해주고 싶다. 


토니버거 (Tony Dragon's Burger) 

많은 사람들이 센트럴 파크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할랄이나 베이글을 찾지만, 만약 한 손에 즐기면서도 든든한 식사를 원한다면 토니버거를 추천한다. 이 푸드트럭에서는 신선한 야채와 수제 패티로 만든 버거를 판매한다. 토니버거는 뉴욕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으로,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가격은 기본 버거가 약 12달러 정도로, 뉴욕 물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푸드트럭이지만 현금, 카드, 애플페이 모두 가능하니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토니버거를 포장해 센트럴 파크에서 여유롭게 즐겨보자.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Magnolia Bakery) 

디저트가 필요하다면,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바나나 푸딩을 추천한다. 이 베이커리는 뉴욕의 대표적인 디저트 가게로, 다양한 케이크와 머핀도 판매하지만, 특히 바나나 푸딩이 유명하다. 푸딩 시즌마다 새로운 맛이 출시되는데, 당근 푸딩, 핼러윈 시즌의 펌킨 푸딩, 애플 시나몬 푸딩 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푸딩은 S, M, L 사이즈로 제공되며, 혼자 먹기에는 S 사이즈가 적당하다. 바나나 푸딩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즐기면 더욱 달콤한 조화를 이루며, 구매 후 바로 먹거나, 냉장 보관했다가 시원하게 먹는 것을 추천한다.


센트럴 파크는 여름뿐만 아니라 모든 계절마다 고유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봄에는 꽃나무들이 만개해 도시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가을에는 낙엽이 수 놓인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기쁨이 있다. 겨울이 오면 눈사람과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어느 계절에 찾더라도 센트럴 파크에서 낭만과 정취를 흠뻑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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