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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y 28. 2022

달 밤의 영화제

학생 영화제 참석

2년여 전, 팬데믹이 시작되고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됐다.


텅 빈 뉴욕, 말 그대로 텅 빈 뉴욕..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여졌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탐 크루즈의 Vanilla Sky, 윌 스미스의 I am legend 정도가 떠오른다.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텅 빈 뉴욕의 모습을 찍었다.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초현실적인 모습이 영 실감 나지 않았다.


폐쇄된 뉴욕시가 생소할 때, 작기만 한 우리 집은 세 식구로 붐볐다.

매일매일이 똑같기만 한 날들. 밤에 꾸는 꿈마저 비슷비슷하기만 했다.


지루했던 나는 아들과 단편영화를 찍기로 했다.

내용은,

매일 같은 꿈을 꾸는 남자. 텅 빈 뉴욕을 헤매는 남자

목적지 없이 뉴욕을 서성인다. 꿈이기를 바랐던 날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맨해튼의 빌리지로 가, 되는대로 카메라를 세웠다.


그리고 레디! 액션!


촬영은 쉽게 끝났지만 그 후, 2년 여가 흘렀다. 뉴욕은 점차 예전 모습을 찾았고, 

촬영본은 그대로 메모리 카드에 묻혀있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의 포스터를 보게 됐다.

'뉴욕 공립학교 영화 페스티벌!' 작품 공모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불렀다. 예전에 찍었던 비디오 빨리 편집해 봐 영화제에 출품하자.

무지 귀찮은 얼굴을 하는 아들이 되물었다.

"꼭 해야 해?" 

"응, 해야 해!" 작품 마감을 일주일 앞둔 어느 밤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편집을 했던 아들이 출품을 하고는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편집은 물론이고 촬영을 다시 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출품은 했고 결과를 기다릴 차례였다.


결과는,

올해 공립학교 영화제에는 총 152편의 영화가 출품되었고, 37편이 선정되었다.

학생의 작품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1위, 2위 같은 작품 순위는 없었다.

미국답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선정작에게는 영화 프리미어에 초대되고 학교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뉴욕시 시장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주겠답니다. 아직 못 받았습니다.



영화제는 애니메이션, 실험,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으로 나뉘었고, 아들의 영화는 단편 부문에 선정되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희소식이었다.


기념 촬영 중인 학생 감독들


지난 토요일 5월 21일 뉴욕의 할렘에서 영화 프리미어가 있었다.

학생 감독들이 마이크를 잡고 간단히 자기소개와 영화 소개를 했다. 관객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관객의 대부분은 가족들이 틀림없다.

야외 관람이라 주변이 컴컴해진 8시가 넘어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부문부터 상영됐다. 5분 미만의 짧은 영화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기다리던 아들의 영화.. 나는 컴컴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비디오를 찍기 시작했다.

3분 40여 초의 영화가 끝나고 짧은 자막이 올라가며 박수 소리가 났다.

의례적인 손뼉 치기가 의미 있게 들렸다. 아들뽕이라는 게 있나 보다.

10시가 조금 넘어 모든 행사가 끝났다. 다행히 모기에 물리지 않았다.


영화제 수준은 딱 학생 영화제 같았다. 기성 영화 흉내를 내기도 했고 탈랜트 쇼 같기도 했고

제법 날카로운 유머도 있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서로의 영화평이 오고 갔다. 아들은 보충 촬영을 하고 편집을 다시 해

큰 영화제에 출품하겠다고 까지 했다.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들은 영화 만들기가 즐겁단다. 영화감독이 흥미롭단다. 오늘 미디어 스텝과 몇몇 감독을 만나더니 

어떤 다른 세계를 본 듯했다. 내가 아들의 영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


갑자기 아내가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취미로만 해!" 


"오케이.. 오케이 엄마 진정.." 아들이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덩달아 기가 죽었다. "영화감독이 뭐 어때서!"는 속으로 아주 크게 외쳤다.


나 때문에 영화가 싫어졌다는 아내에게 할 말은 없었습니다.

아들의 꿈이 영화감독이라면 어떡해야 할까요? 그건 제 꿈이기도 했었는데....


https://www1.nyc.gov/site/mome/industries/nyc-public-school-film-festival.page

아들의 영화는 34분 35초부터 시작이고,

제목은 A Silent Dream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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