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뉴욕 2화
다음 날 어학원 수속을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어학원까지의 길, 인터넷 지도를 보며 수도 없이 연습을 했었다. 집을 나와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다가 큰 길가에서 오른쪽으로 신호가 나올 때까지 걷는다. 신호가 보이는 쪽으로 지하철 입구가 있다. 그 앞쪽으로 스타벅스가 있다. 인터넷 지도에는 없던 새 장소다.
지하철이지만 지상으로 올라가야 승강장이 있다. 아스토리아의 N 노선은 땅 위로도, 땅 아래로도 달린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하철은 깨끗하다. 종점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앉아 갈 자리도 충분했다. 콧노래라도 나올 거 같은 기분이었다.
문 바로 옆의 자리에 앉아 앞쪽을 쳐다보니 내가 다닐 어학원의 광고 포스터가 붙어있다. 밝게 웃는 동양 여자와 남미 여자. 저 여자들도 영어를 배워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얼굴만 보면 영어 잘하게 생겼네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영어 할 줄 아는 관상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목적지인 브로드웨이 32가에서 내려 해럴드 파크를 둘러봤다. 늦가을 바람이 나에게는 차갑게 느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를 쪼이고 있었다.
사람들 주변에서 뭐라도 얻어먹으려 서성이는 비둘기들, 아무리 봐도 날개 달린 쥐 들일뿐 평화의 상징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공원이 끝나는 남쪽 문으로 나와서 왼쪽을 쳐다보니 코리아 웨이라는 이정표가 선명히 보인다. 이로써 뉴요커처럼 보이려 연습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지하철 노선도를 한 번도 보지 않고 목적지까지 왔다.
뭔가 계획대로 되는 거 같아 상쾌해진다. 두어 블록을 더 걸어서 어학원에 도착했다.
간단히 등록을 마치고 학원비를 내는 것으로 볼 일은 끝났다. 예상외로 한국인 상담원이 있어 수속에 어려움은 없었다. 접수 전의 괜한 긴장이 아깝게 느껴졌다. 다음 주에 영어 레벨 테스트가 있을 거란다. 반 편성을 위한
테스트라는데 관심 없이 얘기를 흘려 들었다. 그냥 테스트가 있나 보다는 생각.
친절한 상담원의 안경 너머 눈에 한쪽만 쌍꺼풀이 있다. 이 여자는 모든 학생들에게 친절한 건가? 나에게 좀 더 친절한 건가? 사람의 친절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친절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복도에서 들리는 한국어 소리. 모두가 유학생이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 안, 상태 안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던 영어 말고는 영어를 들은 기억이 없다.
오전의 상쾌함은 어지러움증으로 변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노곤함이 밀려왔다.
어학원 등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복습을 하듯 조심스러웠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나가 되고 싶다. 나를 모르는 이들 속의 내가 되고 싶다.
나를 언제나 쫓아다녔던 삼 형제의 막둥이 꼬리표. 나는 내가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과 인생을 같이했다.
학원에 다녀온 후에 잠에 빠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갈 때,
룸메이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핸드폰을 건네준다.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들떠 있는 듯한 엄마의 목소리.
"네가 하도 낯가림이 많아서 엄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별일 있는 건 아니고?"
"별일은 무슨 일이 있겠어!" 룸메이트를 곁눈질하며 태연한 척 말한다.
"근데 왜 전화도 없었어?"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엄마는 시간을 인지 못하고 있다.
"곧 연락하려 했었어, 전화 개통 후에 전화할게, 끊어"
전화를 끊고 룸메이트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건네줬다.
정말 지겹다. 이쯤 해서 막내 자식도 내버려 둬야 되는 거 아닌가!
엄마의 집요함이 무섭다. 자식을 향한 소유욕. 남편 없는 여자의 소유욕.
자기 집착을 자식 사랑으로 착각하며 살다 어느새 노인이 돼버린 여자.
아비 없는 자식, 티 나지 않게 키우려 노력했다는 말이 공허하기만 하다.
자식 셋 중 대학 물먹은 자식이 하나도 없는 것이 당신의 팔자인 것을 혼자 모르는 당신.
고 3 때 친구들과 백일주를 마시고 온날이었다. 나는 나보다 더 취해있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그렇게.. 너한테 공부하라는 줄 아냐!.. 나도 공부하라는 소리 지겨워 새끼야!!....
내가 중학교 교문 앞이라도 가봤으면 너한테 공부하라고 지랄 안 한다!"
엄마의 삐져나온 코털을, 바셀린을 발라 끈적거리는 얼굴을 보고 있을 때였다.
엄마 개성 여고 나왔던 거 아니었어? 엄마는 개성 여고 나온 걸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다. 그동안 엄마의 학벌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의심할 만한 관심이나 있었나?
그러나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던 나. 공부가 싫은 유전자마저도 내 탓이 되는 순간에 화가 났다. 잡학에는 능했지만 학교 공부가 유난히 싫었던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천성을 노력으로 고치란다. 열심히 공부하란다. 열심히 하면 된단다.
큰형과 작은형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들은 엄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문제아로 성장 시기를 보낸 이들의 특권이었다. 엄마는 애초에 형들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자식이 남의 기물을 파손했다는 소식, 자식이 취객을 폭행했다는 연락을 허구한 날 이웃에게서, 경찰에게서 받는 어미의 입장을 이해 못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태어난 두 자식을 그런 이유로 포기해 버렸다는 것도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다만 엄마의 관심이 나에게 몰입의 형태를 띠는 게 문제였다.
두 형은 그렇게, 쉽게 엄마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너무도 평범했다. 엄마 속 한번 썩이지 않으며 학교생활을 보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단지 대학을 못 갔을 뿐이다. 앞이 안보이던 재수 그리고 삼수 생활. 나는 늘 책상에서 시간을 보냈고, 나 스스로에게 허락한 유일한 사치는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뿐이었다.
점점 더 병적이 되어가던 엄마의 시선.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차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짓누르는 것같이 생각되던 무섭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내 눈에서 씻어 내기라도 하듯 안약을 눈에 넣기 시작했다. 안약이 눈에 들어갔을 때의 상쾌함도 중독이 되는지, 차차 안약 넣는 횟수가 많아졌다. 항상 눈물 흘린듯한 나의 눈은 남의 눈에 기괴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게 됐다. 그리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새로운 삶을 위해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지난 3년간 경비를 모으기 위해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당이 좋다는 일들을 쫓아다녔다.
누군가가 살 집의 도배일을 했고, 누군가가 먹을 음식 배달을 했고, 누군가가 탈 차의 세차 일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손이 느리다. 발이 느리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았다. 해고 소식은 전화 문자로 전해 지기도 했고, 출근하자마자도 전해졌고,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전해졌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삼수를 한 인간에게
세상은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모든 일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고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이해해 달라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힘들다는 생각마저도 사치스럽다고 생각되던 시간들. 생각을 허락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엄마의 시선에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