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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20. 2020

어떻게 진심을 전할까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

허태균 씨는 <어쩌다 한국인>에서 한국인들만의 독특한 심리 기재에 대한 해석을 내놨는데, 그중 '가족확장성'은 재미난 해석이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의 친구는 다 삼촌이고, 엄마 친구는 무조건 이모다. 어디 그것뿐이랴. 어딜 가도, 심지어 식당엘 가도 다 이모고 삼촌이다. 이런 심리 속에서 정치에 있어서도 군사부일체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남아서 아버지 같은 지도자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난하는 건 마치 아버지를 비난하는 거 같은 맹렬한 저항이 생긴다. 대표적인 대상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의 독재자같은 실체에도 눈을 감도록 공포를 조장하고 세뇌받은 것도 있지만 이런 인식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네 할머니한테는 아버지의 딸, 즉, 누이였다. 반대로 어버이의 덕목을 다 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맹비난을 받게 된다. 심지어 권위를 내려놨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가부장적 가계에서 가장은 원래 모든 것을 누리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책임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무슨 사건이든지 간에 사건이 크면 클수록 더 높은 사람이, 최종적으로 항상 두목이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말단 공무원이 잘못해도 대통령더러 책임지라고 한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것은 사과는 너무 빨라도 안된다. 또 너무 늦어서도 안된다. 사과가 무지하게 어렵다. 사과하는 행위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쇼를 연출해야 한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해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만 동시에 그 어려움에 대해서도 많이들 토로한다. 차라리 침묵으로 일관하며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경우에는 가게 하시는 자영업자들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코로나 환자가 다녀간 지 한 달이 지났어도 확진자 이동경로에 이름이 있었다는 이유로 손님이 발길을 끊거나, 사실과 다르게 신천지 교인과 관련된 가게라고 소문이 나서 영업이 곤란하다는 가게도 뉴스에 나온다. 발 빠르게 SNS를 통해, 또는 가게 앞에 플래카드를 걸어서 호소해 보지만 쉽지 않다.


송해룡, 김원제, 조항민, 김찬원, 박성철 공저로 국내 실패사례 및 해외 성공사례를 통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작은 책자로 발간된 적이 있다. 국내 실패 케이스들에서 보면 언론의 선정성과 무책임함, 정부의 대응 매뉴얼 부재와 정보공개 부족, 일방적인 전달, 기업들의 오너 면피성 기자회견 등이 문제다. 특히, 언론의 이슈 분석보다는 선정적 타이틀 뽑기 등 여전히 성행한다. 그리고 의도가 늘 궁금하다.  


국내 실패 사례 하나하나가 다 뼈아픈 것들이지만, 가장 심각했던 것은 소위 말하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었다. 네가 너무 어릴 때라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 사건은 2007년 12월 7일,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이 견인 로프가 끊어지면서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어마어마한 기름이 유출된 사건이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너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태안의 신두리 해변에 캠핑을 갔었다. 독특한 해안사구,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백사장, 아무리 멀리 들어가도 얕은 바다, 물이 아무리 빠져도 뻘이 아닌 모래가 이어지는 곳. 우리의 최애 휴가지였다. 그러나 사고가 터진 후 방송에 나온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일단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고 원인을 정확히 따져보고 얘기하겠다며 47일 동안 삼성은 침묵했다. 정부는 잘못된 예측과 전문성 부족으로 초기 방재에 실패하고, 방재도 결국은 자원봉사자에 의존하게 되었지. 차가운 겨울 바다를 향해 많은 훌륭한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맨손으로 방재에 나섰다. 심지어 멀리 부산에서도, 제주도에서도 봉사자들이 올라왔다. 역시 바다사람들이다. 제일 문제는 언론인데, 일단 뉴스의 타이틀을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아 아닌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뽑아 태안지역 어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 즉, 가해자인 '삼성'이 사라지고 피해자인 '태안'이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대부분의 사고는 '씨프린스호 사고', '엑손-발데스호 사건'과 같이 회사와 선박명을 쓰는 게 관례였음에도 정부와 언론은 이것을 정정하지 않았다. 더욱이 쟁점은 외면하고 미담 발굴에 몰두하면서 IMF 때 금 모으기 운동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냈다. 국민들의 자원봉사와 구조의 손길이 마치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다 된 듯이 만들며, 사후 실제 그들이 겪는 현실과 고통은 외면했다. 어민들 중에는 생업을 이어가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당시의 언론은 '자원봉사는 태안을 살리고, 자원봉사 보도는 삼성을 살렸다'로 요약된다.  


안타깝게도 최악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주었던 정부는 박근혜 정부였다. 세월호, 메르스, 십상시, 최순실... 등등, 뭔가 터질 때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최악이었다. 항상 변명만 하고 뭔가 숨기기 급급했었기 때문에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결국은 박근혜 정부는 역사에 안타까운 기록을 남기고 끝났다. 대부분 경우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을 보면, '현장대응 미숙 → 서비스 마인드의 결여 → CEO의 오판 → 면피성 보고'의 전철을 밟았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황 사건이나 비슷한 시기에 승객을 끌어내린 유나이티드항공도 마찬가지였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정부나 기업은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대중에게 '안전(safety)' 하다고만 할 게 아니고, '안심(relief)'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언론은 '완벽한' 대응을 요구하며 선정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부적절한 사례들을 발굴해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보도를 이어갔다. '완벽한' 대응은 사실 불가능하지만 완벽에 가깝게 대응해 주길 요구하고, 정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지적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물론, 정부 대응이 실패하길 바라고 쓰는 언론도 있다. 그래도 잘 마무리되는 가 했는데 '대구'에서 뜻하지 않은 대규모 감염이 발생하면서 또 그 양상이 달라졌다. 야당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는 도시, 마침 과거 새누리당의 '새누리'가 한자로 '신천지'에 해당한다는 등 온갖 소문이 뉴스로 올라온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보도가 갈린다. 언론의 한계다.


어쨌거나 대중에게 안심을 전달하는 방법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정보 전달자 자체의 신뢰도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과거 이명박, 박근혜 두 전 대통령이 하는 말은 믿지 못했던 것도 아무리 사실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정보전달자에 대한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물론, 반대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는 쉽다. 정부도, 기업도, 특히 언론도 스스로 신뢰를 쌓지 않으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이고 뭐고 아무 소용없다. 정부의 각 부처가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고 싶다면, 정확한 필요한 정보의 제공과 스스로 신뢰받기 위한 행동들이 우선이다.


최근 ‘코로나19‘에 대한 질병관리본부의 일일 브리핑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차관급)이 맡았다. 본부장으로 임명된 건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때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장에서 내부 승진한 첫 케이스이고 질병관리본부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기도 하다. 정 본부장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호평을 받고 있다. 처음 화면에 나올 때와 달리 최근 짧은 머리(머리 감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한다.)흰머리, 그리고 수척해진 모습에 정 본부장을 응원하는 SNS 글이 꽤 많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 본부장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가정의학과 전문의이다. 예방의학을 공부한 박사다. 기자들의 말도 안 되는 질문과 질병관리본부를 비난할 구실을 찾는 유도질문에 넘어가지 않고 차분히 사실을 전하는 데 주력한다. 그녀 자신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녀는 사실을 말한다. 함부로 추측하지 않고 전문지식에 근거한 의견을 말한다.


리스크 발생 직후 많은 사람들이 정부대책이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대응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는 있다. 나중에 국민들에게 어떻게 평가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어쩌면 가까운 선거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리고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속에 사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듣는 경우가 많다. 듣는 사람 기분이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를 얘기할 때 흔히 3A를 말한다. 첫 단계는 인정(Acceptance) 또는 사과(Apology)다. 사실상 이 단계가 제일 어렵긴 하다. 대부분 법적 책임을 가리느라, 혹은 대외 이미지 문제로 늦추게 된다. 근데, 무조건 신속해야 한다. 인정이나 사과의 수위는 다양하다. 법적인 문제를 빼놓고도 어떤 형태로든 신속하게 되어야 한다. 신속하게 문제를 인정하고 초등 대응이 늦었다면 사과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소비자가 인정할 만한 해명(Apologia)이다. 문제가 터지면 말도 안 되는 소문이나 부정확한 내용이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하는 게 변명처럼 들리지 않게 사실과 진심을 함께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침묵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면 사태가 더 악화된다. 마지막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조치(Action)이다. 흔히 뉴스에서 보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행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가 최악이다. 너무 모호하고 막연하다. 정확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사람들이 납득한다.  


사실, 이게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쉽지 않겠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특히 사태의 본질에 최고 권력자나 CEO가 끼어 있는 경우는 더 힘들다. 말 한마디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또 경계가 모호하거나, 법적인 책임문제가 걸린 사건도 어렵다. 침묵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 괜히 나서서 알리는 것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언론이 타이틀의 선정성에만 매달리지 않고, 기업들은 오너 보호보다 소비자 보호를 좀 먼저 신경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늘 반대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언론과 정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면 대중은 언제든지 인터넷과 모바일 검색으로 달려간다. 오히려 그곳은 부정확한 정보와 언론보다 더 과장된 선정적 타이틀로 넘쳐나는 곳이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전달하는 정부와 기업에게도 중요하지만 수신하는 국민과 소비자 모두에게도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뭔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를 밟을 수 있다. 우선 인정 또는 사과를 신속히 하고, 납득 가능한 해명을 한 다음, 앞으로의 구체적인 조치를 얘기하는 식이지. 엄마·아빠가 네게 뭔가를 지적할 때 네가 매번 이렇게만 했다면 너무 좋았겠는데, 늘 어긋났다. 특히 넌 인정(Acceptance) 자체를 쉽게 하지 않았다. 네 기분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너는 늘 항변하곤 했지. 그렇다고 네가 인정할 기분이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사실 가족이 제일 어렵다.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남들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심한 말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가족이 제일 원망스러워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역시 '가족이기 때문에' 아프지만 할 수밖에 없는 말도 있다는 점도 이해하길 바란다. 우린 네게 늘 진심이었다. 말의 톤과 내용이 진심과 달리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진 순간들도 있었겠지? 그 순간들이 있었다면 미안하다.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진심으로 널 아꼈단다. 너도 서른이 되면 아빠한테 '가족이기 때문에' 심한 말을 할 때가 있을 거야. 살살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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