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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23. 2020

혹시 나 천재 아냐?  

천재가 아니어도 괜찮아

아빠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 중에 <슬램덩크>라고 있다. 너도 들어 봤을지도 몰라. 아빠가 대학생일 때 어마어마한 열풍을 몰고 온 농구 만화였단다. 너무 재미있어서 아빠 친구가 일본에서 일본어 판을 구해다가 도서관에서 공부는 안 하고 함께 일본어로 전부 다시 읽었었다. 다른 친구들 눈치 보면서 킥킥대곤 했지. 그 만화의 등장인물들 중에 노력하지 않는 자는 없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연습하고 노력한 결과를 경기에서 쏟아낸다. 그 와중에 주인공 강백호(일본어 원작에서의 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다)는 늘 "난 천재니까 (は天才ですから)"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치고 다닌다. 멋있다. 대부분의 만화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아니면 천재다. 혹은, 노력하는 데 천재이기까지 하다.  


네가 어릴 때 작은 성취를 들고 와서 "아빠, 나 천재 아냐?"라고 하며 기뻐한 적도 있었다. 그때 아빠는 "응, 천재까지는 절대 아냐"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대단하다면서 놀라워해 줬지. 요즘은 물론 이런 말을 너도 안 한다. 천재가 아닌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중 3 때 한 때 남자 친구였던 준혁이가 과학영재고를 갈 때 사실 아빠는 조금 걱정했었다. 네가 너 자신의 역량에 대해서 실망할까 봐 말이지.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잘 극복하는 것 같긴 하다. 실망하지 마라. 너도 꽤 괜찮은 편이다. 


팀 페리스가 쓴 편집형 자기개발서인 <타이탄의 도구들>에 스콧 애덤스(연재만화 '딜버트'의 작가란다. 1989년부터 연재해서 지금도 그리고 있다)가 소개하는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뭔가 남다른 삶을 원한다면 선택 가능한 길은 두 가지다. 첫째, 특정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둘째, 두 가지 이상의 일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상위 25퍼센트)을 발휘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전략은 1등의 몫이다. 1등이 아닌 사람들에겐 불가능이다.(...) 두 번째 전략은 쉽다. 누구나 일정한 노력을 기울이면 상위 25퍼센트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 분야가 적어도 두 개 정도는 있다. 스콧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만화가인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 하지만 나는 피카소나 고흐가 아니다. 또 나는 코미디언들보다 웃기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유머감각이 뛰어난 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법 그리면서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가 조합된 덕분에 내 만화 작업은 평범하지 않은, 진기한 일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내 사업 경험까지 추가하면, 놀랍게도 나는 세상에서 매우 찾기 어려운 만화가가 된다." 

https://dilbert.com/


괜찮지 않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아빠가 상위 1%의 능력을 가진 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悲しいけどないかもしれない), 나름 상위 25% 들어가는 재능은 몇 가지 있다고 생각된다. 즉, 하나만 보면 25%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그 두 가지 재능을 동시에 가진 사람은 25%×25% = 상위 6.25%에 들어가게 되고, 세 가지라면 25%×25%×25% = 상위 1.56%에 속하는 사람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아빠가 아는 어떤 약사는, 약 제조와 관련해서 상위 25%에 들어가고(아빠 생각에는 이게 일단 중요하다. 본업에서 일단 잘해야 한다), 약국을 자주 찾는 할머니들에게 싹싹하고 친절하기로 상위 25%에 드는 데다가, 독서량 또한 상위 25%에 들어가 누구를 만나도 지적인 대화가 자유롭다면, 약을 잘 지으면서, 친절하고, 지적이기까지 한 그는 상위 1.56%의 약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금 네 또래는 일단 학교 성적이 먹어 주니까 네가 공부로 25% 안에 들고, 춤추는 걸 좋아하니 그것으로 상위 25%에 속하면서, 미모가 상위 25%(아빠다. 편견이라도 믿어라.)에 든다면 넌 공부도 잘하면서 춤에 소질이 있고 예쁘기까지 한 학생으로서는 상위 1.56%에 들어간다. 아빠 회사에서 영업점 창구에서 펀드를 판매하는 직원의 경우 펀드를 잘 이해하는 건 당연하고, 여기에다 친절하며, 유머감각이 있고, 고객의 포트폴리오도 잘 이해하는 직원은 당연히 소수다. 뛰어난 실적을 거두면서 높은 인센티브를 받는다. 한 번 해 볼만하지 않니?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를 이기는 방법이란 것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무엇이든지 만능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차피 불가능하기도 하고 불필요하기도 하다. 몇 가지면 충분하다. 만약 한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치를 보여줄 수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 그러나 모두가 메시의 왼발을 가진 것은 아니다. ('리오넬 메시'라고, 너도 들어봤지? 아르헨티니 출신으로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축구 천재. 그는 축구선수로서는 신체조건이 불리하지만 왼발만큼은 최강이다. 거의 모든 드리블을 왼발로 하고, 슛도 왼발로 한다. 수비수들도 그걸 알지만 막지 못한다.) 메시의 왼발은 없지만 노력을 통해 몇 가지는 분명 다듬을 필요가 있다.  


천재는 아니지만 자원을 많이 가진 강자를 만날 수도 있다.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에 관해서 말콤 글래드웰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들어봤지? 말콤에 따르면, 물론 신의 은총도 있었겠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골리앗이 원하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일대일로 백병전으로 싸운다면 질 것이 뻔하다. 반면,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물매(일종의 이스라엘 새총으로, 원심력을 이용해 돌을 던지는 것이다)'가 있었다. 물매질은 연습이 많이 필요하지만, 책에 따르면 35m 밖에서 시속 122km로 날릴 수 있으며, 명사수는 200m 밖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골리앗은 소위 거인병이라 불리는 말단 비대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이는 시신경을 억압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너도 영화 같은 거 보면 알겠지만 당시에 장수들이 먼저 나와서 일대일로 붙어서 상대의 사기를 꺾는 싸움을 한 다음에 전체가 붙는 식이었다. 다윗은 일대일로 붙지 않고 칼을 든 상대로 권총을 쏜 것과 다름없다. 


골리앗과 같은 강자는 또 제약된 점이 많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언더독 전술이 필요하며, 통념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약자가 승리를 노리는 방식이다. 역사학자 아레귄-토프트의 연구에 의하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투에서 약소국이 이길 확률은 28.5퍼센트라고 말한다. 그런데 베트남의 게릴라전처럼 강대국의 룰을 따르지 않고 다르게 접근한 전투에서는 약소국의 승률이 63.6퍼센트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즉, 작고 약하다고 무조건 불리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약자 입장에서는 뭔 개소린가 싶긴 할 것이다. 강자의 방식대로 싸우지 않으면 약자도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강자가 강요하는 방식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그들은 항상 싸움의 틀을 규정하려고 한다. 진정한 강자는 그것을 안다. 돈이 많은 자는 돈으로 싸우려고 하고, 힘이 센 자는 힘으로 붙으려고 한다. 이것을 피하고 다른 방식의 싸움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최근 수년간 중국과 미국을 상대하면서 이것을 절실히 느낀다. 어쩌면 우리가 싸움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다시 슬램덩크로 돌아가 보면, 천재 같은 운동신경도 피나는 노력과 결합해야 한 골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범한 선수도 하루 500번 슛 연습으로 강력한 슈터로 태어나고, 천재 강백호도 방학 동안 20,000번의 슛 연습으로 미들슛을 익힌다. 또 요기 베라(미국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야규선수다)가 말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을 안 감독이 정대만에게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돼.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로 바꿔서 말한다. 흔히 말하는 그릿 GRIT을 강조한다.  


앤젤라 더크워스는 <그릿 GRIT>에서 어쩌면 우리가 다 아는 얘기를 한다. 누구나 다 재능은 있다. 다만, 이를 키워 주기 위한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 그리고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운명을 가른다. 더크워스는 수많은 연구와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통해 재능보다 끈기, 투지 (그릿을 이런 의미로 사용했다)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 준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성적이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결국 노력을 끈기 있게 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그는 '재능 × 노력 = 기술'이라는 간단한 식을 얘기하는데, 재능은 결국 노력을 기울일 때 향상되는 속도를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재능의 차이는 크지 않다. 결국 노력의 크기에 따라 기술의 향상이 달라진다. 혹은, 재능이 모자라면 노력을 더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 '기술 × 노력 =성취'이므로, 이렇게 익힌 기술을 노력으로 성취하게 되니, 결국 재능보다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노력이 기술을 높이고, 또 노력이 성취를 가져온다. 그 노력은 결국 그릿이라 부르는 끈기, 투지 같은 것이다. 그는 뛰어난 성취를 위한 질적으로 다른 연습과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 어때? 직원들이나 학생들 닦달하기 좋은 논리지? 성과가 좋지 않으면 다 그릿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면 된다. 물론, 그 친구들은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고 대답하겠지?  


아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는 천재가 아니다. 이걸 슬퍼할 필요는 없다. 한 분야의 천재는 경주마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만, 천재도 아니고, 타고 난 강자도 아닌데 노력마저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리고 꼭 내가 주연이 되어서 상대를 이길 필요도 없다. 슬램덩크에서 능남의 주장이었던 변덕규가 강력한 상대인 채치수를 상대로 골밑에서 고전할 때 윤대협과 황태산에게 공을 돌리면서 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겐 점수를 따낼 수 있는 녀석이 있다.

내가 30점, 40점을 넣을 필요는 없다.

난 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직장의 동료들이 있다. 삶은 혼자서 이기는 경주가 아니다. 우리가 그릿을 가지고 노력하되, 주위에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두는 것이 결국은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린 천재가 아니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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