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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Apr 06. 2020

어떤 기도

파멸은 모든 인간이 달려가는 최종 목적지다 

대한민국에서도 환경문제는 수년 전부터 큰 이슈로 부상했다. 재앙이 되어버린 플라스틱 시대에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다시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달음식 앱을 통해 플라스틱에 담긴 채 배달된 음식을 즐기고 있다. 또 새벽배송의 과대포장을 보면 배달의 목적물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주말에 재활용 분리장에 쏟아지는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백, 종이상자들이 쌓이는 속도를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개념소비가 필환경 트렌드로 이어지길 바랬다. 단순히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소비뿐만 아니라, 잔인한 동물실험을 하는 제품을 거부하고, 동물복지에 세심한 배려를 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사는 것을 포함해서, 비거니즘(채식주의)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소비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보다 8.4배의 지구면적이 필요할 정도로 용량 초과 중인지라 선형적 소비를 넘어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친환경 착한 소비도 결국은 양심의 가책을 일시적으로 덜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착한 소비의 함정은 우리 스스로 "착한 일을 했다"라고 느끼는 감정 때문이다. 착한 일을 하나 하면 약간 나쁜 일을 하나 해도 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친환경 제품을 하나 사면 배달음식 시킨 후 플라스틱 용기를 버려도 덜 미안하다.   


환경문제가 등장하면 같이 따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1968년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지의 희귀한 공유 자원은 어떤 공동의 강제적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결국 파괴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개릿 하딘은 마을의 초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소 떼들을 초지에 풀어놓게 되고, 그 결과 발생하는 비극을 이렇게 은유적으로 설명했다.  


“파멸은 모든 인간이 달려가는 최종 목적지다. 공유 자원은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최대 이익만을 추구할 때 도달하는 곳이 바로 이 파멸인 것이다. 이처럼 공유 자원에서 보장되는 자유는 모두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한편,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을 통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희망적인 주장을 했다. 사람들이 장기적인 전망을 통해서 계획을 세우고 서로 소통을 하며 상황을 정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몇몇 분야에서 실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수산자원과 관련해서 금어기를 설정한다든가, 그물코의 크기를 조정하는 규정도 비슷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유한한 자원에 대해서는 실제로 소통하고 규칙들을 세우고 관리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형태의 자원인 환경의 경우는 이해관계가 다르다. 지구의 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여기에는 배고픔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으며, 배아픔의 문제도 가세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탄소감축에 반발하는 중국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이 아무 규제 없이 환경을 망쳐 놓고서는 이제 겨우 발전을 시도하는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에 과도한 규제를 한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사실은 베이징의 대기오염을 고려할 때 그런 얘기를 할 처지는 아니다. 


1996년 아빠가 대학을 휴학하고 1년 동안 일본에 있을 때, 일본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3개월가량은 온종일 TV를 껴안고 살았었다. 그때 일본 TV에서 본 짧은 단편 만화영화를 잊을 수가 없다. 일종의 '기묘한 이야기'들을 엮은 만화였다. 그중 한 편의 만화영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날 가이아(Gaia 대지의 신, 지구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가 전 인류가 동시에 알아들을 수 있는 신기한 언어로 이 지구의 모든 이에게 얘기를 했다. 

"한 달 뒤 이 시간에 모두 각자의 소원을 말하라. 가장 많은 이가 공통적으로 기도하는 소원을 하나 반드시 들어주겠노라."

처음엔 다들 꿈이라 생각했지만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각자의 언어로 가이아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확인되자 인간들은 혼란에 빠졌다. 서로 싸우던 소련(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지금의 러시아를 비롯해서 동구원 일부 국가를 포함해서 연방제 연합을 이룬 나라가 있었단다.)과 미국은 상대국을 없애 달라고 소원을 빌자는 얘기도 나왔다. 갑자기 중국이 10억 인구를 등에 업고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들이 한 가지를 같이 소원하는 순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며 위협했다. 그러자 이에 대항해서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서 서방국가들이 공통 소원을 빌기로 MOU를 맺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다 어느 현자가 나타났단다. 그는 각 국 대표들을 유엔에 모아 놓고 설득에 나섰다. 그 현자는 각 나라마다 소원이 다 다르니 엉뚱한 기도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중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나라가 중국에 위해를 가하는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마저 설득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였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면서 살아갈 것임을 선언하기로 했단다. 


드디어 운명의 날, 인간들은 모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기도를 하기로 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날 이후...


모든 인간은 지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동물들과 나무들, 풀과 벌레들, 모든 생명들이 지구에서 인간을 없애달라고 기도를 했던 것이다. 가이아의 언어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이 들을 수 있는 언어였던 것이지. 인간들로 인해 망가진 지구의 신 가이아는 당연히 그 기도를 들어줬고, 그 뒤 지구는 가이아의 보호 아래 평화로운 별이 되었다. 

2020년 봄,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 환자 수가 100만 명(2020.04.02 기준)에 이르면서 인류의 이동이 멈춰 섰다. 중국을 비롯해서 미국, 유럽 등 각국이 이동 제한 등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면서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으며, 유럽의 유명 관광지들도 북적이던 인파가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일상생활이 위축되었지만 전 세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아빠도 미세먼지와 황사로 가득했어야 할 봄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서 멀리 관악산이 잘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최근 ‘세계의 굴뚝’이자 코로나 19 사태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의 대기 질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는 맑은 바닷물을 되찾았고, 심지어 돌고래도 볼 수 있었다는 뉴스가 TV에서 나왔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에서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인간 활동을 제약하고 있지만 그 결과 오히려 지구촌의 공기가 맑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수집한 위성 데이터 분석 결과 2020년 2월 한 달간 중국에서 화석 연료 소비로 발생하는 대기 중 이산화질소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산업 활동은 코로나 19 사태로 최대 40% 줄었으며 중국 내 석탄 소비는 최근 4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석유 소비도 3분의 1 이상 줄었다. 이 기간에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2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https://news.v.daum.net/v/20200403030211073,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1월에는 중국 전역에서 이산화질소 농도가 높았지만, 2월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확연히 줄었다. 한국에도 2020년 봄 미세먼지가 크게 감소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미세먼지 ‘매우 나쁨(m³당 51μg·마이크로그램 이상)’인 날이 단 이틀에 그쳤다. 최근 몇 년간 악화일로에 있던 공기질을 생각하면 경이로운 기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가이아(Gaia)의 뜻 일리는 없다. 근데, 잠깐 인간의 활동이 제한되었을 뿐인데, 지구의 호흡이 달라졌다. 인간은 정말 지구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파멸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달려가는 중일까? 최소한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한편, 노인들에게 치사율이 높은 코로나 19가 너무 오래 살아서 생기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친구도 있었다. 


2019년 오노 가즈모토가 세계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엮은 <초예측>이 한국에서 발간되었다.(일본에서 발간된 것은 2018년 6월이었다.) 그 책의 두 번째 장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현대 문명이 지속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등장한다. 많은 이들과 달리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구감소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영화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타노스'가 재레드 다이아몬드한테서 배워서 그런 극단적인 결심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또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세 가지 위협으로 신종 감염병, 테러리즘, 타국으로의 이주를 꼽으며 그 원인이 되는 국가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제적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터섬의 문명이 붕괴되었을 때 세계 어디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지금은 각국이 단일한 세계 경제로 통합되는 가운데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적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며, 특히 환경파괴와 엄청난 자원의 소비가 향후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했단다. 놀랍지 않니? 그가 1년 반 전에 정확히 지적했고, 그게 현실화되고 말았단다. 


“인류는 현재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들 수 있는가, 전 세계적으로 일정 수준의 생활이 평등하게 보장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습니다. 나라 간 소비 수준에 엄청난 격차가 있는데 이를 방치하는 한 세계는 불안정할 것입니다.”


그래, 환경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구적 평등의 이슈였던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문제를 알아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우리 딸, 좋은 기도를 올리고 응답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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