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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Apr 17. 2020

화씨의 보옥(寶玉), 권력 커뮤니케이션

한비자, 권력의 기술

권력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무서운 힘이다. 그래서 불을 다루듯 조심히 다뤄야 한다. 엉뚱하게 휘두르면 모두가 불지옥에서 살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이면서 직접적인 권력행사의 일선은 검찰과 경찰이다.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는 바뀌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그러하다. 많은 영화(변호인, 신세계, 부당거래, 내부자들, 범죄와의 전쟁,... 셀 수 없이 많다.)와 실제 현실이 나쁜 권력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불지옥을 선사하는지 보여줬다. 그래서 바꾸고자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한비자는 세난(說難) 편에서 유세, 즉 정책을 왕에게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얘기했다. '화씨의 보옥(寶玉)' 또는 ‘화씨(和氏)의 벽(壁)'이라는 말을 들어 봤니? 옛날 옛적 중국 초나라의 화씨가 초산에서 옥돌 한 덩어리를 얻어 여왕(厲王)에게 옥을 바쳤으나, 옥장(옥을 다루는 전문가)이 돌이라 감정하고 거짓말쟁이로 몰려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2,500여 년 전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잔인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여왕이 죽은 뒤 무왕에게도 옥을 바쳤으나 역시 옥장이 돌이라 하여 다른 발목이 잘리는 벌을 받는다. 무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문왕은 옥돌 덩어리를 품고 사흘 밤낮 동안 피눈물을 흘리는 화씨를 보고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여 발을 잘리는 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울고 있는가?” 이에 화씨가 대답하길, “나는 다리가 잘린 것이 원통해서 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보석이 그저 돌덩이 취급을 당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므로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인에게 그 박옥을 갈아서 감정을 하게 하니 과연 그것은 희귀한 보옥(寶玉)이었다. 이로부터 그 보석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의 옥, 즉 ‘화씨(和氏)의 벽(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옥은 개혁정책을, 옥장은 기득권자의 은유로 읽어야 한단다. 기존의 틀을 깨고, 기득권을 따돌리고 새로운 정책을 시도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나 탁월한 지도자임에도 죽임을 모면하고 수모를 피할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자에게는 유세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을 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극한 말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어긋나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나 탁월한 지도자가 아니라면 귀담아 들을 수가 없다. - 한비자, 난언


사실 소소하고 평범한 일들이야 이럴 일이 있겠냐만은, 조직 내 권력 구조를 바꾸거나 기득권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경우는 사태가 심각해지기도 한다. 특히, 그 옥을 알아보지 못하는 군주를 만난다면 내쳐지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 혹시 군주가 옥이라는 것을 알아봤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거나, 자신의 치적으로 기록될 일이 아니라면 역시 멀리하려 할 것이다.  


유세를 듣는 대상이 속으로는 두터운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인데도, 그에게 고상한 명분을 가지고 유세한다면, 그 군주는 겉으로는 그의 유세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멀리할 것이다. 또 이런 이에게 두터운 이익을 얻을 방법으로 유세한다면, 그 군주는 속으로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버릴 것이다. - 한비자, 세난


그래서 월형이 두려우니 함부로 혁신을 말하지 말라?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싫든 좋든 군주와 유세객 사이에 권력의 심리전이 벌어지지만, 결국은 권력자의 심리를 건드리지 않아야 함이 권력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래서 군주가 도(道)가 아니면 차라리 숨기를 청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아빠를 포함해서)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는다. 괜히 나서서 정 맞기는 싫은 거지.


하늘 아래 도(道)가 실천되고 있으면 드러나고, 도가 실천되지 않으면 숨는다. 나라에 도가 잘 실천되고 있을 때는 가난하고 천한 게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라에 도가 잘 실천되지 않을 때는 부유하고 귀한 게 부끄러운 일이다. - 논어, 태백


하늘 아래 도가 실천되고 있다면 당연히 개혁이 필요로 하지도 않다. 오히려 도가 실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지 않나? 애초에 이 말은 논리에 오류가 있다. 어쨌거나 공자는 군주가 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를 위해 충성을 다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떠나 숨어 살라고 했다. 공자와 달리 한비자는 그런 은둔자를 비겁하게 생각했단다. 그래서 진정으로 도를 가지고 있고, 개혁을 원한다면 용의 등에 올라타라고 했다. 물론, 그 위험성도 얘기하면서 말이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역린(逆鱗)'이다.


대저 용이라는 짐승은 길을 들이면 데리고 놀면서 등에 올라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 아래 한 척쯤 되는 비늘이 거꾸로 돋아 있어서, 만약 사람이 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 사람의 임금 또한 거꾸로 돋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선비가 임금의 거꾸로 돋친 비늘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잘하는 유세에 가까울 것이다. - 한비자, 세난


<한비자, 권력의 기술>에서 이상수 씨는 이 점이 한비자의 탁월함이라고 말한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권력 커뮤니케이션의 차단막을 가지고 있다. 개혁과 혁신을 꿈꾼다면 이 진입장벽을 뚫고 자기 비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용의 등에 타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한비자에게 역린은 개혁가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결국 권력의 등을 타고 올라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라고 생각했니? 우리 시대에는 '군주'를 '국민'으로 치환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미묘한 지점들이 생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이다. 이 두 문장에 있는 의미는 이 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이고, 민주공화제를 기반으로 하고, 국민주권주의를 담는다는 것으로 배웠다. 즉, 군주,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반면, 동시에 통치의 대상이 국민이기도 하다. 이 모순은 대의제가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법가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정비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좋은 개혁안은 통과하기가 어렵다. 2019년 조국 씨가 '화씨의 보옥'처럼 검찰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이 옥을 감정하는 옥장들, 특히 특정 정당과 검찰과 언론은 이것을 돌이라 감정했다. 그러나 검찰 권력이 비대해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강하게 돌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했다. 대신, 군주인 국민들의 눈을 그 '보옥'에서 떼어 내 '조국'이라는 개인에게 돌리게 만들었다. 야당과 검찰, 그리고 언론의 장막은 실로 거대했단다. 특히, 많은 국민들의 '역린(逆鱗)'인 교육문제를 파고들었다. 많은 국민들의 눈이 가려졌고, 국민들은 역린을 건드린 조국 씨를 용서하지 않았다. 화씨에 가한 것처럼 개혁안을 제안한 조국 씨의 발목을 자르는 월형을 서슴지 않는다. 화씨와 달리 그의 발목 대신에 먼저 그의 가족들이 잘려 나갔다. 아직 조국의 보옥이 진짜 옥인지, 그냥 돌인지 다듬지를 못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논변에 능하고 사리에 밝은 것이 아니니 언론이 이를 대신해서 실사구시의 노력을 기울이고, 결과에 앞서 방법을 살피고, 모순을 찾아내어 옳음을 밝히고, 이치에 맞는지 살펴야 하는데, 오히려 언론이 국민이 아닌 정파적 성향에 따른 자기의 이익을 앞세우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민이 통치의 대상인 입장에서는 성인군자가 출현해 나라를 잘 다스리기를 바란다.


지금 권력을 접어두고 법치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요임금과 순임금만을 기다린다면, 요임금과 순임금이 나오면 비로소 잘 다스려지겠지만 이는 1,000년 동안 세상이 어지럽다가 한 번 잘 다스려지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권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걸임금과 주임금이 등장하기를 기다린다면, 걸임금과 주임금이 나타났을 때는 비로소 어지러워지겠지만 이는 1,000년 동안 잘 다스려지다가 한 번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1,000년 동안 잘 다스려지다가 한 번 어지러워지는 것과, 한 번 잘 다스려지다가 1,000년 동안 어지러운 것은, 적토마와 천리마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매어놓고 달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차이가 크다. - 한비자, 난세

 

한비자는 성인의 출현을 믿지 않은 반면, 보통 수준의 군주가 통치하는 법을 내세운 사람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는 설화일 뿐, 그런 성인이 나타나 통치하는 적이 있었을까. 지금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현자가 나타나기까지 기다려서 우리 시대의 백성을 잘 다스리겠다고 하는 건, 당장 내 앞에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박태환 선수 같은 수영의 고수를 데려 울 때까지 기다려서 구하겠다는 주장과 같다. 성인이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행운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래서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천재도 아니고,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아닐 것이며, 너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보통사람이다. 그래서 법과 규정, 지침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다시 반대로 국민이 군주라는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를 위임한 정부와 국회, 검찰, 경찰, 법원 등이 서로를 견제하고 국민에게 충성하기를 바라기가 쉽지 않다.   


임금과 신하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신하에게 충성이란 없다. 그러므로 신하의 이익이 이뤄지면 군주의 이익은 사라진다. - 한비자, 내저설 하


사실 충성은 그의 말대로 객관화가 어렵고 모호하며 오래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부하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현실이다. 반대로 신하의 입장에서도 충성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군주는 미흡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규범으로 귀결되고, 부하가 충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군신 간의 윤리는 성스러운 최고 지도자(聖人)와 명재상(賢者)과의 만남에 근거한 것이지만 누가 성인이고 현자인지 모호하다. 그저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설명은 백성들 입장에서는 물음표만 남는 것이지.


해결책은 또 결국 국민들의 정치참여인 것일까. 우리가 바르게 깨어 있고, 열심히 투표하고, 언론을 자극하고, 정당들을 자극해서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야 조금이나마 그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의 '신하'이어야 하는 정부, 검찰, 경찰, 언론, 법원 등등, 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그들 스스로 지혜를 밝히고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감히 정부가, 검찰이, 법원이, 정치가, 언론이 국민을 다스리려 들지 않도록 말이지. 그래서 늘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하다. 법치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법을 만드는 것인데, 이 법을 만드는 자들이 군주인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는 정치인과 검찰, 법원 등 일부를 위한 제도 밖에 되지 않는다.   


뛰어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애정으로 대하지 아니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지, 다른 사람이 애정을 베풀어 나를 위해 일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애정으로써 나를 위해 일하기를 기대하는 자는 위태로우며,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에 기대는 자는 안전하다. -한비자, 간겁시신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여당의 압승. 의외의 결과라고 하지만 사실 당연한 결과였단다. 대부분 국민들의 치부이며 역린인 '부동산'과 '교육'을 정부 여당이 건드렸음에도 압승했다. 코로나19가 역린을 덮고, 야당이 대안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다. 정부 여당이 아무리 모지리 짓을 해도 야당이 더 나쁘니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보수 언론이 그렇게 열심히 보수 야당을 밀어줬는데도 이 모양이다. 선거는 항상 낙선이 안타까운 후보도 있고, 단순히 때를 잘 만났거나,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나 싶은 당선자도 있다. 선거 후 압승한 여당은 선거 결과를 무겁게 받들어 더욱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한다. 말만이 아니길 기대하지만, 권력의 속성 상 다시 오만해지고 분열될 위험은 늘 도사린다.


정부 스스로는 인재를 고름에 있어서 실력이 아닌 작은 충성, 즉 선거에서의 공적에 따라 배분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해야 하며,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재능을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재능을 가진 자 또한 국민이라는 용의 등에 올라타 중심부에서 필요한 개혁을 할 수 있어야겠지. 주변부를 돌면서 말로 변죽만 올리면서 비판만 하지 말고 말이다.


아빠가 법가와 한비자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자백가 쟁명의 시대에 '子' 호칭을 얻은 자가 몇이나 되겠니? 또 법가의 논리를 집대성한 그가 있어서 '법가法家'가 '家'를 이루었으니 '한비'는 실로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공자의 제자였던 순자에게서 수학하고 한나라에서 뜻을 펼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적국이었던 진왕 정(진시황)은 그의 책을 보고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왕 정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을 공격하고, 한비자를 지명하며 진나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한왕은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비자를 사신으로 보냈다. 그러나 말더듬이였던 한비자는 진왕 정 앞에서 유세함에, 큰 감흥을 주지 못했고, 동문수학한 이사는 진왕에게 한비자가 후한이 될 것이라 모함하여 죽게 만들고 만다. 그래서 한비자의 저작들은 저주의 비서라 불리며 왕실에서 권력 행사의 비기로 내려왔으며, 책 <한비자>는 후대에 한비자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엮어 만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비자 자신도 '화씨의 보옥'에 나오는 화씨처럼 제대로 유세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역시 '잘 안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오히려 법률 과잉의 시대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법이 너무 많다. 아빠가 어릴 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요즘은 법이 너무 많아지고 세세한 것까지 다 규정하려고 들다 보니, 법을 어기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인식이 더 많아졌다. 특히 국민들의 역린 중 다른 하나인 부동산 문제나 돈벌이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민주주의를 사는 우리는 법가에서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죄보다 더 큰 벌을 받는 혹형주의도 징벌적 배상금 형태로 기업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권력기관에 속한 자의 그 권력행사와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찬성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 적용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국민이 군주인 동시에 통치의 대상이 국민이기도 한 시대에 맞게 법가의 사상을 가려 읽어야 한단다.  


네가 만약 '그냥 회사원'이 되어 일을 하다 보면 경험이 쌓이고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오른다. 그 와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바꾸고 싶은 것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할 것이고, 네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흘러가 좌절도 하겠지.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의 성사를 위해 조직 내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가끔 줄다리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권력의 자기장 안에 놓여 있게 되면, 그래서 회사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그 날카로움과 평범한 말 뒤에 숨어 있는 맥락을 헤아려야 되는 입장이 된다면 위기가 찾아온다. 그럴 때 한비자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빠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늘 작은 선물이나 특별한 의전(儀典) 같은 것들을 경계하면서 마음에 새겨 두는 이야기가 있다. 아빠가 공직에 있는 친구들한테 가끔 들려주는 이야기지.  


공의휴는 노나라의 재상을 지냈는데, 물고기 먹기를 좋아했다. 그러자 온 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물고기를 사서 그에게 바쳤으나 공의휴는 이를 받지 않았다.... 공의휴가 대답했다. "물고기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물고기를 선물로 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가 물고기를 받는다면 반드시 남에게 자기를 낮추어 대하는 기색을 비추게 마련이다. 남에게 자기를 낮추어 대하면 언젠가는 법을 굽힐 때가 온다. 법을 굽히면 재상 자리에서 면직당하게 된다. 그러면 비록 내가 물고기 먹기를 즐기더라도 그 사람들이 면직당한 내게 다시 물고기를 보내줄 리 없을 것이며, 나 또한 내 봉급으로도 물고기를 구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사람들이 보내주는 물고기를 받지 않아서 재상 자리에서 면직되지 않으면, 내가 물고기 먹기를 즐기더라도 내가 능히 스스로 오랫동안 물고기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남에게 기대는 것이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만 못하다는 도리를 밝힌 것이며,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주는 것이 내가 스스로 나를 위하는 것만 같지 않다는 이치를 밝힌 것이다. - 한비자, 외저설 우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목적도 이런 이유긴 한데, 아쉽게도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기자들은 아예 대놓고 무시하고 말이지. 지위가 올라갔을 때 또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함부로 논쟁에 끼어들어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것이다. 논쟁으로 부하직원들을 굴복시켰다고 웃는 바보 같은 리더가 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오히려 자신보다 똑똑한 부하가 없음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맞다. 또 권력을 쥔 사람이 절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권력과 능력을 구분 못하는 것이다. 권력을 쥐었다고 그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린 어설픈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이것을 착각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리더는 제대로 된 전문가를 알아보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 능해야 한다. 누구나 알지만, 실제 권력을 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경우는 참 드문 건 또 현실이다.


현명한 군주의 길이란 지혜 있는 자로 하여금 생각을 모두 다 짜내게 하여 그것을 근거로 일을 결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로서의 지혜가 막다른 데 이르지 않는다. 그리고 슬기있는 자로 하여금 그 재능을 스스로 알리게 하여 군주가 그것을 근거로 일을 맡기므로 군주로서의 능력이 막다른 데 이르지 않는다. 또 공이 있으면 군주가 슬기롭기 때문이라 하고, 잘못이 있으면 신하에게 그 책임을 지게 하므로 군주로서의 명성이 막다른 데 이르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군주는 슬기롭지 않으면서도 슬기로운 자를 거느리고, 지혜롭지 못하면서도 지혜로운 자의 우두머리가 된다. 신하는 수고를 되풀이하고 군주가 그 성과를 누리는 것을 일컬어 현명한 군주의 상도라 한다. - 한비자, 주도


사실 이 부분은 한비자를 10여 년 전에 읽을 때도 싫어했었다. 그때는 아빠도 그냥 부하직원이었으니까 말이지. 일은 내가 하고, 공은 상사가 가지고, 잘못되면 내 책임이라는 게 말이 돼?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깝지만 약간은 통한다. 소위 말하는 "남의 머리로 일하는" 상사를 두고 있는 부하는 괴롭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남의 머리를 빌리기 위해 군주가 현명해야 됨을 강조한다. 그래야 '좋은' 남의 머리를 빌릴 수 있으니까. 어차피 CEO나 군주나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결국은 부하의 노력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지. 아마 어쩔 수 없는 조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군주가 빌리려는 머리는 '좋은' 머리고, 그 '좋은' 머리 가진 부하는 군주의 의도를 바로 눈치챈다. 그래서 충성은 얄팍한 종이 같은 것이다. 결국 상사와 부하의 지향점이 같을 때에만 시너지가 난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있다.'는 말은 단순히 목욕탕 입구에 붙어 있는 때밀이 아저씨/아줌마들의 가훈은 아니겠지? 사실 이 말은 주로 어른들이 학생들 공부하라고 협박할 때 많이 쓴다. 본인들이 어린 시절 열심히 하지 못한 무언가를 늘 후회하면서 말이다. 조금 더 크면 승진을 못한 후배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선거에서 낙선한 자에게도 이 말을 하겠지. '곧 너의 때가 올 거야'라며 위로하지만 사실 희망사항일 뿐, 그런 때란 쉬이 오지 않는다. 반면, 사람은 누구나 때가 있겠지만(일단 그렇다고 해 두자), 그때를 맞아 용기 내어 나아가는 자 몇이나 될까? 기회가 왔을 때 용의 등에 올라 탈 자 말이다. 너는 준비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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