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의 사회학
넌 어제도 떡볶이를 시켰다. 배달의민족을 통해서. 아빠가 만들어 준 체크카드로 결제하고 말이지. 그렇게 엄마 아빠가 요리해서 냉장고를 채워주고, 밥도 전자레인지에 잠깐 돌려서 먹게 소분해서 담아 뒀는데도 말이다. 유리 찬통에 재워 둔 불고기를 웍에 조금 덜어서 볶는 게 그렇게 귀찮아? 근데, 배달전문 떡볶이 가게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매번 봉지의 가게 이름이 다르더구나. 그래도 떡볶이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할머니가 오뎅국물 부어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어가며 만들어 주는 게 최곤데. 넌 그런 맛을 모르다니 안타깝다.
배달의 민족을 검색하면, "배달의민족은 우아한형제들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배달 주문 서비스 브랜드명이다. 2016년 배달의 민족 브랜딩 과정을 담은 '배민다움'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2019년 12월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합병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라고 위키백과에 나온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아빠에게는 사실 좀 어이없다.
우선, 우린 민족을 뜻하는 배달민족을 어이없게 배달 서비스로 뜻을 바꿔버렸다. 오래된, 그러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중국집 배달원 역을 맡은 배우 김수로가 농담처럼 했던 대사를 '우아한 형제들'이 훔쳐서 실제로 배달 서비스로 둔갑시켰다. 심지어 처음 출시되었을 때 광고에서 영화배우 류승룡이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라고 말하며 대놓고 배달(倍達)민족을 배달(配達)의 민족으로 희화했다. 처음 그 광고가 등장했을 때 교육단체나 정부에서 당연히 징계를, 아니 최소한 항의는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 일 없었다. 아빠만 분노했나 봐. 그 회사는 엄청 잘 나가는 회사가 되었다. 네 또래들은 이제 우리가 배달민족인 이유가 배달을 잘해서로 알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배달민족'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그 본래의 뜻이 나온다.
"배달민족은 곧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배달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나라 이름으로서, 배달국(倍達國)은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에 내려와 세운 나라라고 한다. 옛날에 고조선을 이루고 있는 종족들을 발달족이라고 했는데, ‘발달’에서 ‘발’의 어원은 ‘밝다’이며 이것은 ‘발’ 또는 ‘박’으로 발음된다. ‘달’은 산을 뜻하는 옛말이다. 따라서 ‘배달’은 밝은 산, 큰 산을 뜻하는 ‘박달’의 말소리가 변해서 이루어진 말이다. (다음 백과사전 우리말 1000가지)"
예전에 '동네생활정보'라는 명목으로 자영업자 삥 뜯던 회사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아파트 찌라시 양도 많이 줄었다. 찌라시를 대신해서 앱으로 들어온 음식점 광고가 대세인 건 분명하다. 역시 네트워크를 선점한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배달대행 업종이 자영업자와 고삐리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회사들은 출발할 때부터 수수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20년 4월, 다시 논란이다. 월정액 수수료를 건당 정률의 수수료 체계로 전환하고, 별도의 비용을 추가로 내는 가게 이름을 앞순위로 올리겠다고 한다. 자영업자는 더 힘들어졌다. 알바 뛰는 라이더들의 '빠라바라빠라바'에 의존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제 알바생에게 주는 배달료를 줄이기 위해 가까운 거리는 전동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는 '배민 커넥터'에게 넘긴다. 과거에 음식점에서 직접 배달직원을 관리할 때는 사고가 나면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는데, 앱을 통해서만 배달하는 곳이 늘면서 고용이 아닌 용역으로 처리하며 사고 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어차피 자영업자들도 사람 관리하기 힘들고, 건당 비용처리가 편하긴 하다.
이틀 전 KBS의 김원장 기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배달의민족'의 정책 변화에 대해 중개회사의 역할을 논하며 비난하는 의견을 올렸다.
핵심을 빗겨나가기는 했지만, 수수료 상승에 따른 불편한 심정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아빠는 개인적으로 배달앱을 혐오하지만(배달된 음식보다 그 가게에 가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고 생각한다.) '배달의민족'의 주문이 편하고, 배달을 더 자주 하도록 유혹하며, 결과의 신뢰성도 일정 부분 담보한다고 생각한다. 신생업체의 경우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가능성도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 테이블을 거의 두지 않고 임대료가 저렴한 건물의 지하나 가게에서도 음식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결정적으로 이 회사의 기발한 기획력은 늘 감탄하게 만든다. 민트색을 통한 컬러마케팅, 라이더들에 대한 배려(그들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를 광고하고, 배민서체, 배민폰트를 뿌리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배민백일장도 운영한다. 자신들의 본질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회적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아빠가 대학생 때 광고회사에 가려고 했었다고 했지?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해서는 어설프게나마 나름의 의견을 갖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읽은 책 중에 1994년 출판된 <광고의 사회학>라는 책이 있다. 강준만 교수가 광고의 사회학적 본질에 대해 잘 설명해 준 책이었다. 광고의 순기능은 다 알테니, 그 속에 숨어있는 경제적 함의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렴. 네가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신문을 읽을 때, 유튜브를 볼 때 그리고 무료라고 선전하는 모바일 앱을 이용할 때도 광고를 만난다. 그 미디어나 앱은 어떻게 수익을 얻는 것인지 알지? 바로 너를 팔아서 얻는다. 시청자로서, 청취자로서, 웹 페이지 유저로서, 독자로서, 유튜브 시청자로서, 모바일 네트워크의 제일 끝단에 있는 유저로서 너를 판다. 광고매체 수익의 기본은 광고 노출의 빈도와 시간이다. 너는 무료로 좋은 콘텐츠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너의 노동으로 그 매체가 광고주에게서 돈을 받는 것이고, 그 돈으로 TV 드라마를 만든다. 유튜브의 경우는 콘텐츠를 만든 사람은 노출 빈도와 시간에 따라 수익을 가져간다. 이 역시 네가 광고를 봐주기 때문에 돈을 번다. 사실, 그 콘텐츠도 구글을 비롯한 포털들과 메이저 앱 회사들의 컨트롤 하에 있다. 광고가 싫으면 별도의 비용을 내는 유료 서비스로 가야한다.
평균적으로 광고 영상의 분당 제작비는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의 분당 제작비 대비 8배가 넘는다. 그만큼 유명한 모델을 쓰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는 것이지. 그럼 그 비용은 누가 내는가? 일단은 광고주가 부담하겠지. 그러나 광고주는 네가 사는 물건에 그 비용을 전가한다. 즉, 네가 사는 물건 또는 이용하는 서비스에 그 광고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네가 '배달의민족'을 통해 배달을 시키면 '배달의민족'은 가게 사장님한테서 수수료를 받고 너를 팔았고, 가게 사장님은 또 네가 시킨 떡볶이 가격에 광고료를 포함해서 받는다. 물론, 배달료는 별도다. 이제 감이 잡히니? 일도 네가 하고, 돈도 네가 낸다. 광고의 본질은 그렇다. 네 스스로 광고매체를 위해서 일을 했는데, 오히려 최종적인 비용을 네가 부담하는 것이다. 그것을 극대화한 것이 배달주문 서비스 앱이다.
아빠가 대학생 때는 마케팅 시간에 AIDMA를 배웠다. '소비자 행동 프로세스'로 롤랜드 홀이 제시했던 것인데, Attention(주의) - Interest(흥미) - Desire(욕구) - Memory(기억) - Action(행동)의 단계를 설명한 것이다. 특히 Attention과 Interest를 유발하기 위해 열심히 광고하고, 이것이 Desire로 연결되게 유명인을 쓰는 것이고, 기억되고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마케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배웠다. 세상이 바뀌었다. 최근의 소비자 행동 프로세스는 AISCEAS라고 한다. 모치즈 가즈미씨가 제창한 것인데, Attention(주의), Interest(흥미) 단계는 같지만, 그 다음이 Search(검색)를 하고, Comparison(비교)를 한다. 그 후 Examination(검토) 단계를 거친 후, Action(행동)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Share(정보공유) 과정이 별도로 존재한다. 최근의 구매행태에 딱 맞는 프로세스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응, 당연하지. 아빠도 이런 구매행동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나 다 느끼고는 있는 것을 정제하고 체계화해서 개념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라고 학자들이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배달주문 서비스 앱은 이 프로세스의 규칙을 철저히 따른다. 너의 주목을 끌려고 리스트 상단에 올리는 비용을 별도로 받는다. 가끔은 새로운 가게가 입점했다고 네 폰에 알람 메시지를 보낸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쿠폰을 주기도 하고 이벤트를 실시한다. 비슷한 메뉴를 검색 및 비교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했다. 너는 면밀히 검토한 다음 구매에 나선다. 그리고 넌 'JMT' 또는 '졸라 구리다'는 둥 댓글을 단다. 물론, 그 비용은 네가 지불하면서 말이지.
조금 더 적극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인 '웃는 얼굴의 파괴자', 아마존이다. 스콧 갤러웨이는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 아마존의 전략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아마존은 책과 음반에서 시작했지만, 성장의 비결은 스토리텔링과 자금력이었다. 아무리 적자를 내도 끊임없이 자금을 대고 기다리는 투자자들. 그 이면은 역시 베조스의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이라는 비전이었다. 그래서 '최소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자'가 아니라, 아무리 많은 자금이 들더라도 결국에는 경쟁자들을 다 죽이고, 오프라인 업체들을 발아래 무릎을 꿇게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려줄 것이라는 그 스토리를 엮어 내는 능력이었다. 어느 소매유통 기업이 물류에 50억 불을 손실 보고도 견딜 수 있겠는가. 심지어 구름 위에 창고를 만들고 드론으로 배달하자는 생각은 아마존이니 가능한 전략이다. 실제 실행여부는 상관없다. 다른 경쟁자들이 하지 못하는 스토리만 팔면 된다.
아마존의 마지막 퍼즐은 오프라인 정복이다. 그래서 홀푸드 매장들을 인수했고, 강력한 물류창고를 만들었다. 초기 인터넷 쇼핑몰들은 오프라인 가게들을 입점시켜 판매 플랫폼으로만 기능을 했었던 반면, 아마존은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매장들의 씨를 말릴 예정이다. 그 과정은 사실 예전에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했던 것과 비슷하다. 개별 브랜드가 가진 유통망을 접고 입점하라고 설득한 다음, 빨대 꽂아 피를 빠는 형식이다. 마지막은 직매입 내지는 자체 브랜드로 더 저렴하게 경쟁해서 말려버리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플랫폼 기업들 중 일자리 파괴와 관련해서는 선두이며, CEO인 베조스 역시 결국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니 보편소득을 검토해야 하지 않냐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보편소득은 각 나라의 정부가 세금으로 내고, 그 돈으로 아마존에서 소비하라는 것이다.
"아마존이 아무런 저항(마찰)이 없는 매끄러운 상품구매 진행 부문에 굳건하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과 투자자본의 입장에서 아마존이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점 그리고 아마존이 B2B 영역에(경쟁자들이 아마존 안으로 들어와 영업하도록 플랫폼을 마련하는 데)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을 볼 때, 시가총액 1조 달러 달성 경주에서 아마존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개별 소비자의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아마존은 앞으로 소매유통업계를 독점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존은 당신과 내 정보를 벌써 엄청나게 축적해놓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의 구매 행태를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 물론 우리는 그 사실에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정보를 우리 스스로 기꺼이 내주었으니 말이다."
'배달의민족'도 아마존처럼 'B마켓'을 시작했다. B마켓은 물류창고를 지역별로 만들고, 슈퍼마켓들의 씨를 말리고, 골목 자영업자들을 배민에 예속시키는 전략이다. 막강한 주주를 얻었으니 본격적으로 추진해 보겠지. 여기도 아마존의 스토리를 믿는 사람들은 투자를 할 것이다. 성공을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어쨌거나 출발했다. 비트코인이 혁신인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이 혁신이어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가상화폐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혁신이다.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 즉, 네트워크를 선점한 것이 혁신이고 '배달의민족'의 힘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포맷이 도입되거나 경쟁자들에게 네트워크가 잠식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엄청난 비용을 들이더라도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플랫폼 기업들의 기본 전략이다. 자신들이 구축한 모바일 네트워크에 너를 영원히 메달아 두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사실, 그런 측면에서 '배달의민족'은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동네 자영업자들이 다 사라져 버리기야 하겠냐만은 세상 참 빠르게 변하고 무섭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 골목길을 걷다가 매력적인 가게를 발견하고서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주인장과 농담을 주고 받고, 정성스레 내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장면은 이제 없어지는 거니? 오직 배달만 남을까? 아빠는 그래도 사람들의 힘을 믿는다. 백종원 씨가 하는 골목식당도 좋아한다. (이제는 포맷을 바꿀 때가 되긴 했다.) 너도 알다시피 요즘은 여행이라는 것이 유명한 대형 관광지를 도는 것이 아니다. 데이트 장소도 그런 곳을 가지 않지? 경리단길, 망원시장 골목, 삼청동길, 홍대 앞 골목길, 연남동 철길, 강남역 사거리 뒷길, 이태원 골목, 을지로 3가의 힙지로를 우리는 찾아간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가도 맛집을 찾아 골목을 헤매고 다닌다. 오사카의 도톤보리를 돌아다니고, 호이안의 구시가를 걷고, 런던의 코벤트 가든 근처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어야 하며,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팟타이를 먹고, 뉴욕의 소호 거레에서 브런치를 먹어야 여행이다. 골목의 힘을 믿는다.
모든 게 네 손 안의 핸드폰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다만, 그 네트워크의 끝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면서 동시에 네트워크를 장악한 업체를 위해 일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뒤집어 말하면, 우리 자체가 바로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마음에 안 드는 플랫폼 기업들을 망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우리다. 소셜 네트워크는 거꾸로 우리의 힘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사태가 끝나면 빨리 골목길로 달려가고 싶다.